존재는 희소성에 따라 그 가치가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면 금은 인간의 생존에는 필요 없지만 그 희소성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높은 가치를 띄고 있다. 그러나 공기는 없으면 즉시 생존이 불가할 정도로 귀중한 자원이지만 어디에나 있기에 그 가치가 낮다.
코카콜라의 레시피는 1886년 미국 애틀랜타에 살던 약사 존펨버튼이 만들었다. 현재 식품법상 재료 표기의무와 발달한 분석기술로 대부분의 재료가 드러난 상황에서도 특유의 비법을 통해 경쟁사가 따라 하지 못하는 고유한 맛을 유지하며 현재 시가총액 430조 원에 달하는 기업이 되었다. 이러한 코카콜라의 성장 역시 레시피의 희소성이 지켜지고 그 권리가 인정받음으로써 가능했다.
이렇듯 희소성은 물건의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에 현대사회에서는 특허권과 저작권 등을 통해 보호되고 있다. 법으로 보호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복제된다면 그 가치는 바닥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장 혁신이라 불리는 챗지피티 등 ai를 보면 관련 규제법안이 없다고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모든 데이터를 창작자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흡수하여 마치 처음부터 자신이 만든 것처럼 권리를 누린다.
작가가 평생에 걸쳐 노력한 그림의 화풍과 밤을 새 가며 고심하며 작곡한 음악들과 작가들의 필체까지 무단으로 복제해 자신이 창조한 것처럼 사용하며 유저의 요청에 모방한 콘텐츠를 만들어주며 그 대가는 창작자가 아닌 자신이 받아간다.
최근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바꾸는 유행이 돈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카카오톡 프로필사진 등 자신의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바꾸며 즐거워했다. 사실 그 지브리풍이라는 그림체는 1985년 지브리 스튜디오 설립 이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만들어낸 하나의 역사이자 고유한 개성이다.
그뿐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 수많은 애니메이터와 연출가가 자신의 젊음과 인생을 바쳐 하나의 장면을 만들고 미세한 표정과 표현 등 끝없는 야근과 수정 끝에 만들어진 작품들로 구축된 하나의 작은 세계가 지브리풍인 것이다.
그러나 ai는 마치 자신이 이런 지브리의 주인이라도 된 듯 이러한 지브리의 그림체와 연출과 묘사를 모방하여 마치 원래부터 자신의 것인 거처럼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주인 행사를 하며 대가를 요구한다
이것이 올바름인가.
부조리함에 대해 외치면서 정작 현실에서는 대기업이라는 권력이 상대적 약자를 착취하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사회정의와 도덕인가.
존롤스의 정의론에서 정의란 '최소 수혜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것을 전제로 자유로운 논의를 통한 중첩적 합의를 통해 결정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자신의 노력과 열정에 공정하게 보상받는다는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판단의 토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을 지브리화풍으로 만들어 주는 챗지피티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그 화풍과 지브리의 이미지를 만든 원래 회사에 정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일 것이다.
창조와 혁신은 그 가치를 존중하고 보호해야만
그 싹을 피워낼 수 있다. 당장의 편의와 재미를 위해 창작자라는 꽃을 꺾어내 버린다면 앞으로 보게 될 것은 로봇이 만들어낸 진짜 꽃을 본뜬 가짜 조화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