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돌부리가 즐비한 어두컴컴한 골목 같기도 야자수가 늘어진 푸른 해변가 같기도 하다.
이러한 삶의 산책로 속에서 마주치는 인간관계는 놓을 수 없는 본능적인 엮임과 욕구이다. 이 인간관계를 통해 사람은 화내고 슬퍼하고 고통받기도 하나 치유받고 물질의 소유로써는 감히 느낄 수 없는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인터넷과 유튜브 등에서 흔히 행복은 돈이 결정한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연구에서 돈이 아닌 사람이 행복의 주된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조사 결과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5명 이상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60퍼센트 이상 행복했다.(David G. Myers, The Pursuit of Happiness)
많은 책들에서도 인용되었던 하버드대학교의 연구가 있다. 이 연구는 1938년부터 10대 724명을 80년 넘게 추적하여 무엇이 사람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지 조사한 연구에서도 답은 같았다. 부와 명예가 아닌 '좋은 관계'였다. 친구와 가족 공동체와 사회적 연결이 긴밀할수록 더 행복할 뿐 아니라 건강하고 수명도 길었다.
우리가 문뜩 90년대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단지 그 당시 경기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정이 있었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지금 시대에 가장 좋은 이웃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몇 년간 살아도 잘 안 보이는 이웃이라는 말을 듣고 뭔가 씁쓸하면서도 공감이 되는 나 자신이 안타까웠다.
누군가를 대할 때 마음을 열기보다는 잔뜩 털을 부풀린 고양이처럼 경계하며 대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살면서 대부분의 상처는 믿었던 타인에서 받았기에 삶에 새겨진 흉터에서 나오는 뒷걸음질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고슴도치가 되어가는 모습에 문뜩 다들 비슷한 마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리고 그들도 믿었던 누군가에게 마음을 다치고 그저 자신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시 속에 숨어 서로를 찌르며 현재의 안전함을 위안하며 정작 외로움이라는 그늘 속에 마음을 감추었다.
서로 타고난 환경도 사건도 가치관도 경험도 다르기에 온전히 맞기는 참으로도 어렵다. 드물게 그게 맞다면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다'라고 말했던 관포지교의 고사처럼 그건 인연이고 운명이며 삶을 함께할 기연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드물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로 간 날카로운 가시 같은 경계감을 줄여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눈을 마주치는 인사와 미소다. 해외에 나갔을 때마다 부러움을 느끼는 건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라는 것이다.
위선적인 짧은 모습이더라도 어차피 찰나의 관계이기에 진심이 뭐가 중요할까. 그저 순간의 인연에 진심까지 담는 건 무리더라도 그것이 두섬을 연결할 계기가 되어 자그마한 다리가 된다.
각자도생과 자살률 1위라는 오명으로 얼룩진 사회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인사와 미소가 아닐까. 경제만큼 중요한 건 얼어붙은 세상을 녹여줄 인사와 미소라 생각한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 또한 사람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