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세상을 거닐며 여러 나라들의 다양한 사람들을 보았다. 그 과정 속에서 외국인들이 가득한 유명한 여행지이자 그들의 역사가 담긴 매력적인 도시 뒤에 숨겨진 소시민들의 삶을 짧게라도 엿볼 수 있었다.
야생원숭이들이 서식하는 빽빽한 정글과 맹그로브숲이 우거진 인도네시아, 그곳에서 근육질의 서양인들이 자주 이용하던 작은 헬스장을 관리하던 인상 좋으신 아주머니 두 분은 창고를 개조한 듯한 고시원방만 곳에 이층 침대 하나를 간신히 놓고 낡은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지내고 있었다.
필리핀 에메랄드 빛의 태초의 모습을 닮은 바다, 마치 천국 같아 보이는 그 섬 보이지 않는 곳에는 현지분들의 삶이 있었다. 오토바이 택시를 몰던 동네 아저씨는 비가 오면 빗물이 틈사이로 그대로 들어오던 집이라고 불리기도 뭐 한 낡고 곰팡이핀 작은 판잣집에서 살고 있었다. 바닷가 습기로 인해 옷이 마르지 않아 모기와 씨름하며 불을 피워 그 열기로 빨랫감을 말려야만 했다. 그곳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병원은 차마 병원이라 불리기 어려울 정도로 낡고 작은 1층 개인주택사이즈의 무너져가는 야전병원 같았으나 그 지역의 유일한 의료기관이었다.
태국의 아름다운 섬에서 수상보트를 모는 사람들은 작은 배에서 작은 전구 하나를 켜놓고 딱딱한 나무바닥에서 잠을 청했으며 부둣가 일꾼들은 가림막 하나 없는 사방이 뚫린 오두막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모기에 물린 곳들이 간지러운지 몸을 긁으며 별빛이 주는 안식 속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습도가 상상이상으로 매우 높던 베트남은 에어컨이 비싸 대부분의 가정집에 에어컨이 없었다. 그래서 밤에 길거리를 거닐면 문과 창문을 그대로 다 열어두고 잠을 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돗자리를 깔아놓고 마당과 길거리에서 나와 자는 모습을 보면 과거 우리 90년대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저녁만 되면 밥을 하고 빨랫감을 말리기 위해 모닥불을 지피느냐 매캐한 연기가 온 동네에 가득했다.
태국에 있는 작은 섬에서 만난 챙은 미얀마 내전으로 집과 재산을 잃고 온 가족이 몸만 간신히 탈출하여 태국 작은 식당에서 일하며 근방 작은 오두막에 온 가족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 식당에 들를 때마다 자주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던 그는 나에게 미얀마 전통식사를 대접해주었다. 그러한 상황속에서도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으려는 그 친절과 미소 뒤에서 인류애를 느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그곳을 떠나기 전 식당에서 일하는 챙의 친구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며 선물을 몰래 건네주고 와야만 했다.
이렇듯 보이는 것과 실제 삶은 다르다. 그늘과 어두움이 없어 보이는 환상과도 같은 겉모습과 달리 현실은 묵직하고 그늘져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자신의 삶을 타인과 비교하며 삶을 비관하며 찌푸리지 않았다. 물론 속마음을 들여다볼 순 없기에 그런 마음이 아예 하나도 없다고는 하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곳을 다니는 여유로운 관광객들을 수도 없이 보고 만나지만 그들은 내가 아닌 타인일 뿐이다라는 생각은 확고한 듯 보였다.
타인은 그저 타인일 뿐이고 내 삶이야말로 불가침의 성역 같은 유일한 존재인 것이었다. 그들의 얼굴에 담긴 자부심과 미소 그리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여유로움이 그들의 마음가짐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열등감의 근원에는 비교와 실현해내지 못한 우월감이 숨어있다. 언론과 인터넷에서 내뱉는 평균과 비교에 삶의 존엄성과 행복이 다치게 두지 말자. 당신의 삶은 타인이 정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감이 담긴 미소를 짓는 것은 당신의 권리니, 그 행복을 그 당당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