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권 사람들의 두 가지 유형
순전한 개인적 경험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사랑만 받은 듯 한,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일하다가 만난 어느 캐나다인들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친절하고 맑은 사람들이었으나 나는 그 와중에도 약간의 불편함과 묘한 질투를 느꼈다.
우리는 영어를 쓴다. 영어가 왜 세계 공용어가 되었는지부터 파고든다면 그건 지금의 캐나다와는 관련이 적을 수 있다. 어쨌든 그들은 우리처럼 남의 나라 언어를 배우려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 프랑스어는 배우겠지만 그것 또한 그 나라 공식 언어니 엄밀하게 남의 언어라고 하기 애매하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영어가 통용되는 세상이니 자기가 집에서 쓰는 말로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사람들이라면 약간의 우월감과 높은 자존심 정도가 같이 묻어있을 수 있다. 본인들이 만든 언어, 또는 본인들의 나라가 강대국이라 모두가 그 언어로 얘기해야 하는 이 현상을 충분히 즐기고 또 느끼게 해 준다. 주목할 만한 건 그 문화적 우월감 속에는 약간의 동정심이 가미된 '배려'도 같이 묶여있다.
'내 영어(=내 나라의 문화와 힘)가 너보다 나으니 내가 너를 배려한다.'
'네가 영어를 하느라 고생이 많다. 내가 천천히 쉽게 말해줄게.' 정도 되는 마음이랄까.
그것도 썩 기분 좋진 않으나 기술적으로는 좀 더 수월하다. 그렇게 배려를 받으며 마치 선생님이 아이한테 말하듯 또박또박 쉬운 단어로 말해주는 것을 나는 덜 수고롭게 듣는다.
그러나 이 캐나다 분들은 그런 우월감이 없다. 세상에서 나이스하기로 소문난 민족답게 그저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 마치 옆집에 사는 친구한테 말하듯 끝없이 조잘조잘 얘기한다. 마음은 훨씬 편안하고 좀 더 친근감이 가긴 하지만, 그 모든 말과 단어를 캐치하다 보면 뇌 뒤쪽에 구멍이 나는 느낌이다. 알아듣고 못 알아듣고의 문제가 아닌 머리가 얼마나 지끈거리느냐의 문제다. 나의 고통의 십 분의 일이라도 알아차려주면 좋으련만 이 맑은 눈의 친절한 아가씨들은 전혀 그럴 기미가 없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해봤을 리도 없어 보인다.
나의 부족함을 배려한다고 쉬운 단어를 일부러 구사해 주지만 '우월감'을 내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나의 상황과 능력을 크게 개의치 않고 편하게 대해 주는 '순수한' 사람들... 일로 만날 때 어느 쪽이 더 나을까.
(물론 '우월감'만 남고 배려와 친절 따위는 없는 사람들도 가끔 있지만 그런 그룹은 선택지에 둘 필요도 없겠다.)
그리고 반대의 상황이라면? 정말 세상이 달리 보일 것 같다. 만약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라면?
가슴이 벅차겠지만 그것도 지금 시점의 감정이지 오래되고 익숙해졌다면 어떨지 모른다.
그럼 나는 어떤 태도로 다른 나라 사람들을 대하게 될까? 그들이 우리말을 써주는 것을 고마워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