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린 것과 영화의 재미는 별개?
극장에서 잔다는 것
"오펜하이머 너무 잘 봤어. 근데 나 중간에 잤어."
라고 말하면 대부분 웃거나, 무슨 소리냐며 되묻거나, 혹은 감히 네가 그런 대작을 보고 자다니? 라며 눈을 부릅뜬다.
예전에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을 보는데 연극계의 원로나 감독들이 여럿 보였는데 대체로 졸고 있었다. 그러나 연극이 끝나자 엄청난 박수를 쳐 주며 저마다 훈수를 두는 한 마디씩을 했다. 그걸 보고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는지 모른다. 근데 이제 내가 비웃던 그 사람들처럼 영화를 보는 것일까?
이 말을 덧붙이면 이해받을 수 있을까?
"리클라이너 관에서 봤거든."
이것으로 구차하지만 차별화를 하고 싶다. 첫째, 영화이기 때문에 화면 속 배우는 내가 자는지 안 자는지 모르고 나의 행위는 영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둘째, 의자가 너무 편했고 거의 누워서 봤다. (셋째, 영화가 세 시간이었다..)
리클라이너 관은 정말 극장가의 혁명인 것 같다. 동네에 리클라이너 관이 있어서 애용하다 보니 이제 일반관에서는 목이나 허리가 불편할 지경이다. 비행기의 비즈니스석을 타다가 이코노미를 못 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무슨 얘기인지 조금 이해할 것 같다.
어쨌든 영화가 좋았다는 나의 감상평은 진심이다. 주인공의 연기에 무척이나 빠져들었고 이야기의 구성 방식 또한 재미있었고, 좋아하는 배우들이 무더기로 나와서 설레었다. 주연급 배우들이 기꺼이 조연 또는 단역으로 나오는 상황도 신선했다.
내가 영화관에서 잔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심지어 리클라이너 관이 아니더라도 자곤 했는데, 데이터가 쌓이다 보니 어느 지점에서 눈을 감는지 대략 알게 되었다. 나는 주로 액션 장면에서 집중력이 약해진다. 그리고 그 액션이 주고받고 가 반복되면, 즉 상대방과 주인공이 반복해서 주도권을 잡는 장면이 나오면 극도로 졸리다. 또한 그 액션이 화려할수록 졸리다. 오히려 몸을 활용한 액션이나 소박한 액션, 혹은 생활 밀착형 싸움은 재밌게 보는데, 무기를 사용하거나 그 무기가 클수록 그 소리는 내 귀에 들어올 때 자장가로 바뀐다.
그래서 이상했다. 오펜하이머에는 액션 장면이 없다. 어느 지점에서 자장가가 들렸을까? 다시 짚어보건대 법정 공방장면에서 양측의 공방전이 진행될 때, 그것이 마치 둘이 주도권이 번갈아 이동되는 싸움, 마치 액션장면처럼 뇌로 입력되었던 것 같다. 커다란 얼굴이 극장 화면 한가득 채워지며 말을 무기로 싸우는 장면, 커다란 입이 빠르게 움직이며 마치 대포알을 쏘듯 공격적인 말이 튀어나올 때 그것은 나에겐 바주카포나 탱크와 다를 바 없었던 것 같다.
영화는 아이맥스에서 재관람 예정이다. 중간에 놓친 장면 때문이 아니다. 좋아하는 감독과 좋아하는 배우들이 아이맥스용으로 만든 영화니 창작자들의 의도에 맞게 즐기기 위해서이다. 아이맥스 관에서는 넓은 화면 구석구석 챙겨보느라 졸릴 시간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모든 영화를 두 번째 볼 때 더 정신이 또렷해진다. 더 많은 정보와 깨달음, 그리고 처음 볼 때 놓쳤던 새로운 재미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데 정신이 또렷해진다고 표현하는 것이 웃기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