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함
손에서 땀이 많이 나네요? 발에도 나세요?
-네.
안 불편하세요?
-아 뭐... 어릴 때부터 그래서요...
....
경추통을 치료받기 위해 간 한의원에서 의사와 나눈 짧은 대화의 마무리가 시원찮았다. 발에서 땀이 나는 건 확실히 불편하긴 하다 여름에는. 맨발로 다닐 때 발에서 땀이 나는 건 좀 고역이다. 그렇다고 양말을 신을 수도 없고. 끝에 ‘여름에는 좀 불편하긴 해요’를 덧붙일걸 그랬나? 마침 겨울이라 발까지 생각 못하고 살고 있었는데 찜질하면서 생각했다. 너는 안 불편한데 주변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을까요?라는 말을 돌려서 물어본 걸까? 너무 소심해지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다한증이라는 단어를 알기 오래오래 전부터 나는 그 증상과 함께였다. 기억하는 최초의 나부터 내 손바닥엔 땀이 났다. 선천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당연한 듯 살고 있다가 처음으로 불편하게 느꼈던 건 피아노를 칠 때였다. 손가락이 땀 때문에 건반에서 미끄러지는 경우가 많았고, 내가 치고 난 건반에는 내 땀과 먼지가 섞인 누런색 땀방울이 맺혀 있곤 했다. 조금 창피하긴 했지만 그냥 옷으로 쓰윽 닦고 말았다. 좀 더 자라서 학교에 다닐 때 불편했던 점은 필기를 많이 할 때 펜이 손에서 자꾸 미끄러져서 힘이 많이 들어갔던 것과, 어느 날부턴가 시험지 답안이 컴퓨터 카드로 교체되어서 그 카드는 손상이 되면 안 되었는데 땀으로 카드가 젖은 적이 많았던 것이다. 체력장 같은 것을 할 때면 철봉에 오래 매달리기는 1초를 넘기지 못했다. 거의 매달림과 동시에 미끄러지는 것인데 아마도 체육선생님들은 내가 허약해서 그랬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서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불편한 것 말고 '남'이 불편할 수도 있겠구나를 최초로 느낀 것은 누군가와 손을 잡기 시작할 때부터였으니 꽤 늦었다.
대학 내내 취미로 쳤던 클래식기타도 내 땀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기타를 치면 칠수록 기타 줄은 땀을 흡수해서 금세 녹이 슬고 소리가 먹먹해졌다. 기타 줄을 가는 일도 번거로웠지만 갈았다고 해도 바로 땀이 묻어버려서 소리가 좋게 나지 않았다. 연주회를 앞두고는 이틀 전에 새로 낀 기타 줄이 심하게 먹먹해져서 (아마 연습량이 많아서 줄이 금세 망가졌을 것이다) 줄을 빨래처럼 비누에 빨고 다시 끼었던 적이 있다. 좀 웃기긴 하지만 이 작업은 효과가 있다. 일단 비누로 씻기면서 줄에 들러붙어 있던 땀이 씻겨 소리가 좀 나아지고, 완전히 새 줄이 아니라서 연주 중에 줄이 늘어날 걱정도 없다. 그리고 덕분에 나는 ‘기타’라는 악기 자체에 대해 욕심이 생기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기타를 친다 해도 한 달만 치면 소리가 먹먹해지기 때문에 어떤 기타라도 상관없었다. 그 당시 좋고 비싼 기타에 대한 로망이 다들 있을 때였다. 확실히 차이가 났으니까.
손바닥엔 가끔 땀이 안 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그걸 인지하는 순간 땀이 난다. 어릴 때는 내가 ‘땀’ 생각을 하면 ‘땀’이 나는 신기한 재주를 부린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마른 손바닥을 보여주고 이제 ‘땀’ 이 생길 거야-라고 말하면 손가락 끝에서부터 땀이 몽글몽글 맺힌다. 땀이 맺히기 몇 초 전부터 안다. 피부 밑에서부터 땀이 올라오고 있는 느낌을. 뭔가 손바닥 -내 몸의 어느 끝 부분-에서 보이지 않게 일어나는 일을 모든 중간 마디를 건너뛰고 뇌에서 바로 캐치해서 아는 이 현상이 신기하다. 그리고 이 느낌은 나만, 혹은 나와 같은 증상의 예민한 다한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만 아는 그런 특별한 느낌이겠지. 뭔가 속에 있던 것이 나오는 느낌, 약간의 긴장감과 바로 이어지는 약간의 후련함?
사람들은 매우 불편할 거라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수술을 한다고 들었다. 부작용 얘기도 듣기는 했다. 그러나 부작용 때문이 아니라 나는 이대로가 괜찮으며 심지어 땀이 나는 상황이 더 좋게 느껴진다. 컴퓨터 타자를 칠 때 느껴지는 찰진 타격감, 종이를 넘길 때 침을 묻힐 필요가 없는 것, 머리카락 정전기를 없앨 때, 그리고 늘 촉촉함을 머금은 덕분에 손과 발의 피부가 아직도 뽀송뽀송한 것.
그리고 설명하긴 어렵지만 땀이 나와 있어야 손바닥의 모든 감각이 살아나서 뭐든 할 수 있다. 보들보들 마른 손으로는 자꾸 물건을 놓치고 실수를 한다. 땀이 만들어내는 적당한 마찰력에 내 손의 모든 신경과 움직임이 적응한 것 같다. 그래서 여름이든 겨울이든 손과 발이 무언가로 감싸져 있거나 막혀 있으면 답답함을 느낀다. 겨울에 집에 와서 반드시 할 일은 장갑과 양말을 벗는 일이다. 그래야 내 몸은 휴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