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는 프랜차이즈만 넘쳐나는 세상
신도시의 좋은 점은 거리가 깨끗하고 조경이 좋으며 자전거도로가 잘 되어 있다는 점이다. 신도시가 나쁜 점은 맛집이 없다는 것이다. 오래된 가게에서만 나오는 내공 있는 찐맛집은 없고 인스타에 올리기 좋게 인테리어를 잘해 둔 그저 그런 카페와 프랜차이즈 식당은 많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사이에도 개업했다가 폐업한 곳이 꽤 된다. 마치 시장이 완전히 형성되기 전 실험적으로 운영하던 가게인 것처럼. 자영업자가 얼마나 힘들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집 근처에 하향평준화된 카페들이 많아서 아쉬운 대로 커피를 마시러는 스***로, 토피넛라테를 먹으려는 이**를 가곤 했다. 그것도 자주 가진 않았다. 그러다가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된 진짜 커피 맛집을 발견했다. 최근 들어 가끔 산책 가는 공원 초입 한 빌라건물 1층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카페는 지나다닐 때마다 기웃거리긴 했다. 조용할 것 같고 손님이 많지 않고 책장이 있고 조명이 은은해서 뭔가 편안해 보였다. 궁금하긴 해도 산책 가던 길이라 들어가서 마시게 되지는 않았다. 산책메이트와 함께 두 명이 들어가서 한 잔만 시킬 수는 없고, 테이크아웃 하기엔 컵이 낭비되고 들어가서 두 잔을 마실 만큼 커피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집과의 거리는 꽤 멀어서 카페만을 가기에는 애매할 때가 많았다. 나는 무척 게으르고 현관문을 열기 위해선 조금 큰 이유가 늘 필요하다.
어느 날 ‘그 카페 가서 커피 마시자. 늘 궁금하던 곳이야’ 라며 마음을 먹고 집에서부터 목표지향적으로 드디어 그곳에 갔다. 그리고 맛집인 걸 알았다. 커피 맛집은 첫 모금에 바로 알 수 있다. 이 맛의 근원이 시럽이나 우유가 아닌 에스프레소에 있다는 것을. 물론 우유도 거품을 잘 내야 훨씬 맛이 좋아지기는 하나 커피의 기본은 에스프레소에 있으니까. 몇 천 원이 아깝지 않은 최초의 카페를 내가 이사 온 동네에서 5년 만에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거긴 주인이 시끄럽지 않고(=과하게 친절하거나 손님에게 부담스러울 정도의 친밀감을 표시하지 않는) 손님들이 많지 않고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이 흥미로웠다. 가끔 카페에 있는 책들의 제목만 보고도 주인의 취향과 공간의 분위기를 알 것 같을 때가 있는데 여기도 그렇다. 그리고 조용한 공원 초입이라 주변에 다른 건물도 없고 창가로는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와서 추운 날 가도 햇빛에 노곤노곤 해지는 기분이 포근했다. 이제 도서관에 가는 대신 이 카페로 와서 저 책장의 책들을 읽어도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일을 그만두고 심플해진 내 하루에 큰 기쁨이 될 것 같아 설레었다.
그 이후에 한두 번쯤 더 갔을까. 오랜만에 아점을 먹고 맛있는 커피가 먹고 싶어 맑은 바람을 쐬며 그곳까지 걸어갔다. 이상하게도 메뉴 중에 많은 메뉴가 검정 사인펜으로 그어져 있었다. 가끔 계절메뉴가 그런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많아 보였다. 아인슈페너가 먹고 싶었는데 주인이 그 메뉴는 없다고 한다. 며칠 전에도 아인슈페너가 없다고 했다. 이상했다. 주인이 정확하게는 ‘이제 안 해요~.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아 그 메뉴는 이제 안 하세요?’라고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청천벽력 같은 대답은 ‘아 카페를 이제 그만해요. 이번주까지만 하고요.’라는 것이다....! (티는 안 냈지만 이 순간 내 마음이 무너졌다.)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나는 다시 ‘아 혹시 가게를 옮기시나요?’라고 물었더니 주인은 그건 아니라고 말하며 더 이상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아 보였다.
아... 도대체 왜요?? 제발 계속해주세요 여기가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어요. 아마 도시에서 베스트일 거예요. 저는 커피 맛을 잘 알아요. 제가 호주에서 커피학교도 다녔고요. 지금도 맛있는 커피 아니면 잘 안 마시거든요. 장사가 잘 안 돼서 그러시는 거예요? 제가 자주 오면 어때요? 홍보도 해드릴까요?......
내가 조금이라도 이 카페를 일찍 발견해서 주인과 안면이 튼 상태였으면 내뱉었을 많은 말들이 마음속에서 메아리쳤다.
아인슈페너가 없다고 해서 시킨 아포가토를 먹는데 마음이 울적했다. 얼마 전에 앉았던 자리는 여전히 햇살이 따뜻하게 비춰줬지만 따뜻한 느낌은 덜했다. 콧물이 나와서 냅킨을 얻으러 갔는데 냅킨이 없다고 키친타월을 줬다. 냅킨을 주문할 필요가 없겠지 4일 뒷면 장사가 끝나니까. 원두는 남을까? 콩이 남는다면 좀 산다고 해볼까? 키친타월을 받아오면서 마치 마지막 만찬을 하는 느낌으로 경건하게 아포가토의 아이스크림을 숟가락으로 떴다. 마음은 울적해도 커피는 여전히 맛있었다.
맛집은 자꾸 없어지고 그저 그런, 아니면 인테리어로만 승부하는 가게들만 살아남는 것 같다. 이것도 사회현상일까? 지금 시대의 트렌드일까? 가수가 노래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카페도 커피만 맛있으면 되는 것이 아닌 현실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