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향이 서둘러 휘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 말론은 적합하지 않다. 지인은 저녁에나 올 테고 오늘 특별히 갈 곳은 없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손목에 향수를 뿌리고 문질렀다. 목덜미와 공중에도 두 번. 이마와 볼에 내려앉는 감촉이 산뜻하다.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향은 금세 사라질 테지. 괜찮다. 지금 뿌린 조 말론은 온전히 날 위해서다.
블라인드를 열자 창에 쌓이던 햇볕이 거실로 쏟아진다. 빛을 빠는 몬스테라 잎사귀가 탐스럽다. 선반에 놓인 TV와 스피커가 차례로 잠에서 깨어난다. 거실 끝을 가로지르는 플로어스탠드 갓을 빛이 타고 흐르면 휴일 아침을 맞을 준비는 끝난다. 이사 온 지 이 년이 넘었지만 고요한 거실을 빛으로 채우는 기분은 언제나 새롭다.
찻물을 올려두고 휴대전화를 연다. 두 개의 문자메시지. 하나는 저녁에 오기로 한 지인으로부터. 하나는 얼마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던 병원으로부터다.
- 오빠, 진짜 그냥 가도 돼요? 빈손으로 가요 정말?
- 검진결과 특별한 소견 없이 양호합니다. 향후 정밀검사가 필요할 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두 메시지에 같은 대답을 남긴다. 그렇게 해주세요.
거실 한켠에서 밤을 보낸 책상에 앉아 의자를 당긴다. 쓰지도 않을 화장실이 하나 더 있는 집을 계약한 뒤에야 마련한 공간. 긴 글을 읽고. 짧은 글을 쓰고. 차를 마시고. 창밖을 내다보고. 주로는 멍하니 있는 공간이다.
메일함을 열고 어제 받은 편지에 답장한다.
... 산책로가 둘러가는 마을엔 집집마다 감나무가 탐스럽습니다. 그러려니 하다가도 신기합니다. 제가 일하는 회사 뒷산엔 밤나무들이 모여 살거든요. 여유 부릴 들녘 하나 없이 바다와 산만 있는 동네라서 나무도 사람도 벗들하고만 다정한가 봅니다. 감나무처럼 둥글고 말랑한 사람들, 밤나무처럼 뾰족하고 단단한 사람들을 생각하니 주변인이 동동 떠올라 속으로 웃습니다. 속으로 웃으면서 저는 걷습니다. 매일 한 시간 걷고 매일 한 시간 읽거나 씁니다...
매일 한 시간 걷고 매일 한 시간 읽거나 쓴다. 이런 하루하루가 잠잠히 쌓여 몇 달이 되고 몇 년이 되고 몇십 년이 될 테지.
나에겐 난로 같은 거리를 유지해 주는 지인들이 있고 비교적 먼 곳을 계획할 수 있는 고정수입이 있다. 의도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어 건강도 생활도 잘 정돈되어 있다. 올해부터 인상된 급여로 개인연금 비중을 늘릴 수 있으리라. 55세에 은퇴하는 게 목표지만 조금 늦어져도 상관없다.
은퇴 후에는 아버지가 사는 집을 허물고 모듈식 주택을 얹을 계획이다. 한쪽 벽을 통유리로 설계하면 탁 트인 언덕 너머로 자그마한 항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부지다.
... 눈여겨보는 이가 적어 땅값도 눅은 곳이지요. 집은 작게 얹고 마당은 넓게 다질 생각입니다. 손님이 많아도 불편하지 않도록요. 춥고 좁은 집에 살던 십 대 시절엔 어른이 되면 넓은 집을 가지겠다고 다짐했지만 이젠 번거롭고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실현할 능력을 가지면 흥미가 옅어지니 사람 욕망이란 얄궂기만 합니다...
답장을 멈추고 차가 밀어 올리는 수증기를 바라본다. 창밖으로 걸어가는 꼬마아이를 바라본다. 파랗게 깜빡이는 무선공유기 불빛을 바라본다. 선반 위에 나란히 놓인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 닌텐도 스위치를 바라본다. 불 꺼진 뱅커스 램프를 바라본다. 램프 갓에 옅게 내려앉은 먼지를 바라본다. 닦아내고 또 닦아내도 이내 그 자리로 돌아오는 먼지... 춥고 좁은 집에 살던 십 대 시절을 바라본다. 그날 밤을 바라본다. 내가 죽으려던 날을.
열여덟 살이었다. 동네 약국들을 돌며 사 모은 수면제를 옆에 두고 아버지에게 남길 유서를 적었다.
그날 방 안에서 무겁게 움직이던 시계 초침 소리가 기억난다. 창밖으로 넘어오던 옆집 부부싸움 소리가 기억난다. 안개처럼 내려앉아 목을 조르던 공기 밀도가 기억난다. 나는 왜 죽으려고 했을까. 늘어난 속옷, 빛바랜 장판, 재떨이로 변한 츄파츕스 깡통이 기억난다. 책상 서랍에 던져둔 오토바이 벌금딱지, 절반쯤 남은 됫병 소주, 가늘게 연명하다 죽은 엄마가 기억난다. 앙상한 팔에 직접 주사기를 꽃았지. 인슐린이었던가. 나는 왜 죽으려고 했을까.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다.
여름이면 바닷가를 찾았다. 작은 칼을 들고 물속에 들어가 전복은 뜯고 성게를 건졌다. 모래사장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으면 지나가던 주정뱅이가 합석을 요청했다. 나는 그 아저씨가 싫지 않았지만 그 동네 사람들은 그를 경계했다. 그는 예측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주정뱅이가 전복과 성게를 다 먹으면 나는 칼을 들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술과 태양이 끓인 몸을 차가운 바닷물이 식혀 주었다. 전복 몇 개를 들고 물 밖으로 나왔지만 주정뱅이는 보이지 않았다. 느린 걸음임에도 그는 해변 끝 절벽에 드리운 그림자 속으로 곧잘 사라지곤 했다.
가가 아직도... 그 동네에서 유년을 보낸 아버지는 말끝을 흐렸다. 가가 아직도... 아직도 주정뱅이냐는 뜻일까. 아직도 살아있냐는 뜻일까. 가까이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을까. 가가 아직도. 아직도. 마을 사람들이 한 얘기는 틀렸다. 주정뱅이는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주정뱅이로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리라. 나는 그가 싫지 않았다. 느릿느릿한 다리근육이 흩어져 새까만 목구멍이 모래사장에 처박히기 전에. 나는 그에게 더 많은 전복과 성게를 먹이고 싶었다.
겨울이면 산에 올랐다. 바늘 같은 공기를 폐 깊숙이 빨아들이고 목적지도 없이 눈 덮인 길을 더듬었다. 나지막한 나무 그늘에 숨어 있던 장끼가 인기척에 놀라 날아올랐다. 돌멩이만 던져도 맞고 떨어질 만큼 낮고 느리게 날면서, 장끼는 필사적이었다.
올무꾼들은 치밀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동물이 다니는 길냄새를 맡는 동시에 사람이 품은 몸내는 철저하게 지웠다. 그늘진 도랑, 얼음이 얕게 어는 가장자리, 눈 속에서도 잡초를 피워내는 겨울 땅을 그들은 놓치지 않았다.
올무에 걸린 토끼가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발버둥을 칠수록 철끈은 더 깊게 토끼 다리를 파고들었다. 덫에 걸린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운이 있는 녀석이었다. 다행이었다. 손을 뻗어 귀를 움켜쥐었다. 사력을 다한 토끼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 조심해야 했다. 올무를 느슨하게 풀고 토끼를 풀어주었다. 귀가 뽑혀나갈 기세로 몸을 뒤흔들던 녀석은 조금 절뚝이더니 산 위쪽으로 사라졌다. 올무를 멀리 내던지고 녀석과 다른 방향으로 산을 계속 올랐다.
검게 늙은 감이 가지 끝에 매달려 바람을 맞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술을 꺼내고 감을 따 뜯어물었다. 차가운 술과 차가운 열매가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비탈진 산길에 서서 나는 꿀꺽. 꿀꺽. 술을 마셨다. 퍽. 근처 어딘가에서 나뭇가지에 쌓이던 눈이 땅에 떨어졌다.
... 장례는 짧고 조용하게 치러지길 원합니다.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지만 기어이 찾아오는 이가 있다면 좋은 음식을 대접해 주세요. 삶이 단단하지 못해 의지가 아닌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향할 뿐입니다. 제 선택이 당신의 실패를 뜻하지 않음을 부디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유서를 다 적은 뒤 수면제 한 주먹을 삼켰다. 마지막 일기를 쓰고 한 주먹을 더 삼켰다. 일기장을 꼼꼼히 찢은 뒤 한 주먹을 더 삼켰다. 찢은 일기장을 츄파츕스 깡통에 넣고 물을 부었다. 남아있는 한 주먹을 마저 삼키고 잠들었지만 죽지 않았다. 불분명한 소문을 믿는 게 아니었다. 괜찮다. 죽는 건 몇 번이고 할 수 있다.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왜 죽지 않았을까. 그건 똑똑히 기억한다.
티본스테이크를 처음 먹었던 날이었다. 아르바이트하던 레스토랑에 젊은 남녀가 들어와 티본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음식이 앞에 놓이는 순간에도 말 한마디 나누지 않던 둘은 지글거리는 받침 철이 요란을 멈추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다투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딱 한입만큼만 칼로 썰린 스테이크를 보며 주방장은 자존심이 상한 얼굴이었다. 먹어볼래. 주방장은 나를 불렀다. 먹어봐 이거 비싼 거야. 주방장은 손님이 썬 부위를 카빙 나이프로 도려내고 나머지를 토치로 데워주었다. 소 한 마리에 하나밖에 안 나오는 거야 먹어봐 귀한 거야. 소 한 마리에 하나밖에 안 나오는 걸 두고 나가려면 얼마나 심하게 다퉈야 할까. 나는 티본스테이크를 손으로 집어 베어 먹었다. 설거지거리를 늘리고 싶지 않았다. 맛있어? 주방장이 물었다. 죽이네요. 나는 대답했다. 주방장이 찌푸린 표정을 거두었다. 천천히 먹어라. 주방장은 주방으로 돌아갔고 나는 씹던 티본스테이크를 접시에 뱉은 뒤 쓰레기통에 쓸어 넣었다. 질기기만 한 고기가 왜 이렇게 비쌀까. 젊은 남녀는 다퉜기 때문이 아니라 앞에 놓인 요리가 맛없어서 나간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앉아 있을 기분이 아니면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죽이네요. 비싼 값을 지불했어도 맛없으면 삼키지 않는다. 죽이네요. 심플한 원칙 안에서 원하는 경험만 하면서 살겠구나 저런 사람들은.
누군가 남기고 간 티본스테이크를 맛보며 그날 나는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식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평온히 식은 차를 마시며 선반 위에 놓인 월-E 피규어를 바라본다. 작동도 기능도 없는 녀석임에도 터무니없는 가격과 제작기간이 주문서에 적혀 있었지. 괜찮다. 유일한 고려조건은 '갖고 싶은가' 뿐이었다.
노트북을 덮고 주방으로 향한다. 냉장고를 연다. 샴페인 옆에 놓인 우유를 꺼낸다. 유리잔을 가득 채운 우유가 거품 내려앉는 소리로 주방을 채운다. 차가운 우유를 마시며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공간을 바라본다. 어떤 형태로 가구를 배치해도 어둠을 걷어내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거실에 차오른 빛이 밝히지 못하는 곳들을 보며 나는 죽으려던 날을 생각한다. 바위에 눌린 사람처럼 간신히 숨만 붙어 있던 그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떠오른다.
너는 믿지 못하겠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너를 기다리는 좋은 날들이 있다. 그 짙은 해무를 떨쳐내게 되고 경계를 견디는 삶을 벗어나게 된다. 남들과 다른 속도를 가졌다는 사실이, 길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너를 수렁으로 끌고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너를 떠난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아도 됨을, 더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 너를 사랑할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살아서 누리라고 얘기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