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이 늘었다고, 나는 혼잣말을 했다.
후쿠오카에 가기로 한 건 늘어난 혼잣말 뒤에 온 결심이다. 보내지도 않을 문자메시지를 쓰다 말고 나는 혼잣말을 하곤 했다. 멍하니 허공을 보거나 하얀 벽을 보면서 그렇게 했다. 책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옷을 입어도 발가벗은 기분이었다.
이별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얼마나 오래 만나도 결코 무뎌지지 않았다. 이별은 닥쳐오는 순간마다 송두리째 나를 뒤흔들었고 이번에도 그 위세는 다르지 않았다. 거대한 파도가 머리꼭대기까지 잠겼다가 온몸을 쓸어내며 멀어져 갔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랬다. 의미도 없고 연결되지도 않는 말들을 문득문득 중얼거렸다. 혼잣말이 늘었다고, 나는 또 혼잣말을 했다.
순서를 기다리는 비행기들 아래로 아지랑이가 어른거렸다. 저걸 한 시간만 타고 있으면 말이 안 통하는 이국에 도착한다니, 도통 실감이 되지 않았다.
창밖에 서 있는 비행기와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를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갈 거대한 금속과 그녀가 사랑했던 작은 육체가 창문에 겹쳐있었다. 비행기와 나를 보며 조금씩 물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을 느꼈다. 그곳에 가도, 어디를 가도, 달라지는 게 있을까.
스피커에서 탑승 시간을 알리는 안내가 나올 때까지 나는 창문 저쪽과 이쪽을 쳐다보았다. 흐릿한 눈빛이 유리 속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반드시 후쿠오카일 필요는 없었다. 꼭 일본일 필요도 없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어디라도 상관없었다. 평소와 어긋난 환경이 매 순간 무의식에 간섭하고, 그 간섭을 교정하기 위해 생각이 바빠진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걷기 좋아 보여서.
후쿠오카를 선택한 건 그 이유였다.
싹싹 빗질해 놓은 절간 마당처럼 반드러운 거리 위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햇살에 반사된 건물 유리와 간판들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날씨가 너무나 화창해서, 나는 그곳이 외국임을 새삼 실감했다. 뜻 모를 간판이나 의미만 짐작되는 말들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많이 보았던 화창한 날씨가, 그 흔해빠진 평범함이 내 의식을 두드려 깨워주었다. 의외의 장소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내가 낯선 곳에 있음을 더 깊이 자각하듯이.
한 블록 지나니 밤을 지새운 듯한 젊은 무리가 찌푸린 얼굴로 오가는 행인들을 보고 있었다. 한 블록 더 지나니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양산을 들고 어디론가 바삐 걸었다. 인도와 차도는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지만 자전거만은 둘 중 한가해 보이는 쪽을 골라 휙휙 달렸다. 자전거는 종을 울리거나 속도를 늦추지 않았지만 누구도 위협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도시를 가르는 나카스 강 다리 위를 걸을 때 바람이 셔츠를 파고들었다. 나카스 강은 유속이 느리고 색이 탁했지만 악취는 전혀 나지 않았다. 7월에서 8월로 넘어가는 여름 꼭대기에 있으면서도 강은 계절을 초월한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칼바람이 불어대는 한겨울에도 이 강은 얼지 않고 느리고 탁하게 흐를 것만 같다고, 난간에 기대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강을 건너자 오른쪽엔 새롭게 짓고 있는 건물이, 왼쪽엔 철거를 기다리는 낡은 건물이 각각 안전가림막을 두른 채 버티고 서 있었다.
크로스백을 열어 선글라스를 꺼내고 모자를 고쳐 썼다. 구글맵에 스미요시 신사를 입력했다. 후쿠오카를 선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조용해 보였고, 적당히 멀었고, 그래서 걷기 좋아 보였다.
오전 10시 32분의 후쿠오카는 온도가 35도를 넘나들고 있었다. 해풍도 멎어버린 규슈지방의 항구도시를 걷기엔 좋은 시간도 좋은 기온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거리는 한산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괴팍한 날씨라도 상관없었다. 한산한 외국 거리를 걸으며 생각을 비우거나 채울 시간이 내겐 절실했다. 비가 내리면 그 이유로, 바람이 불면 그 이유로 나는 그곳으로 향했을 것이다.
외곽 방향으로 걸은 지 이십 분도 되지 않아 거리는 급격히 한산해졌다. 비좁은 문이 달린 약국 앞을 빨간 자전거가 무심히 지나고 있었다. 조금 더 걸으니 비슷한 크기의 우체국이 나왔다. 생김새도 비슷해 둘은 꼭 의젓한 쌍둥이 아이 같았다. 약국은 녹색 간판이, 우체국은 빨간 간판이 달려 있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였다. 어느 곳을 바라보아도 위압적인 건물은 없었다.
길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아무리 짧은 건널목이라도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있었고 누구도 빨간 불에는 건너지 않았다.
각기 다른 시대에 건설되었음이 분명한 건물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전통문화를 전시한 작은 체험관 주위엔 비교적 현대 건물들이, 새로 지은 빌딩 주차장엔 승합차 크기만 한 초소형 신사가 능청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저 멀리 도심지의 우뚝한 빌딩들을 배경으로 한 그런 모습들은 거리 자체를 '시대변화'가 주제인 커다란 테마파크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솜사탕 가게와 시끄러운 음악이 얼씬도 못할 분위기일 뿐.
무더운 날씨는 동일했지만 한국만큼 햇볕이 사납진 않았다.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 크로스백에 집어넣었다. 한국의 햇볕이 불어오는 열풍 같다면 후쿠오카의 햇볕은 차오르는 습기 같았다. 사우나에 들어선 듯 줄줄 땀이 났지만 피부를 상하게 하진 못했다.
몇몇 사람이 드문드문 거리를 걷고 있었다. 멀리 있어도, 언어를 듣지 않아도 한국 사람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서로를 스쳐갔다. 여행지 특유의, 이방인이 서로를 발견했을 때 지어 보이는 다정한 미소와 함께였다.
명소에 가면 저들을 몇 번 더 마주칠 수도 있을 것이다. 주말을 통과하는 여행이라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일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 도착하면 저들을 다시 마주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기이한 인연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함께 비행기를 타고, 며칠 동안 같은 공기와 물, 비슷한 음식을 먹고, 눈이 마주치면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지만 정해진 며칠이 지나면 반드시 헤어진 뒤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 아주 짧은 기간 사랑하고 이별하는 사람처럼.
한산한 거리, 무더운 날씨, 이따금 마주치는 이방인을 관통하며 나는 후쿠오카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등과 얼굴에 쉴 새 없이 땀이 흐르고 종아리가 뻣뻣해져 왔지만 생각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나는 폐허를 생각했다. 일렁이는 수면아래 잠겨있는 회색 폐허를, 사방이 암흑으로 둘러싸인 허무의 공간을 생각했다.
거대한 파도가 덮칠 때마다 나는 그곳으로 떠밀려갔다. 무기력하게 부유하다 차갑고 어두컴컴한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가라앉은 바닥에는 커다란 유리가 서 있었다. 희뿌옇게 흐려져 반대편이 보이지 않는 유리였다. 폐허에서, 나는 유리를 들여다보았다. 텅 빈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습한 공기가 제법 호흡을 괴롭힐 때쯤 스미요시 신사의 정문에 도착했다. 나무숲 아래로 길게 펼쳐진 길 끝에 이승과 저승을 가른다는 석재 토리이とりい가 위풍당당히 서 있었다. 그 뒤로 어제 새로 칠한 듯 붉은색이 선명한 신사 정문이 있었다. 그늘 길로 들어서자 몇 발자국만에 공기가 선선해졌다. 토리이 너머와 붉은 정문 안으로 나는 걸음을 옮겼다. 방금 전에 지나온 거리와 토리이 저쪽, 정문 밖이 선명한 과거로 변했다.
하얀 상의와 붉은 하카마를 단정히 차려입은 무녀가 경내를 걷고 있었다.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시선은 아래를 향한 채 무녀는 성큼성큼 본전으로 향했다. 머리를 묶은 분홍 천이 걸음에 맞춰 떠오르고 가라앉았다.
푸른색 기와지붕과 그보다 더 푸른 소나무 사이로 뙤약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송골송골 땀이 나는 무더운 날씨였다. 그러나 무녀는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인 듯 평온한 얼굴로 본전을 둘러싼 울타리로 향했다.
무녀는 울타리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다시 닫았다. 무녀는 본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다시 닫았다. 무녀는 본전 내부 여기저기를 돌본 뒤 밖으로 나와 배전으로 향했다.
매일, 어쩌면 매시간 하는 행동인지 걸음이나 동작에 군더더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배전으로 향하는 무녀의 봉긋한 이마와 오똑한 콧날이 투명하게 햇살을 머금고 있었다.
푸른 기와지붕, 붉은 토리이, 바람을 따라 춤추는 풍경風磬처럼 그녀 역시 이 신사를 구성하는 하나의 장면으로 보였다.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방문객이 너무 많거나 적더라도, 혹여 마음속 깊은 곳을 채웠던 존재가 사라져 버리더라도, 그녀는 정해진 시간에 처소에서 나와 방금 했던 행위를 묵묵히 해내리라. 수없이 반복될 그 장면을,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고 다졌다.
풍경이 노래하는 경내를 이리저리 산책했다. 진흙처럼 엉겨 붙은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려 헐거워진 자리에 다른 생각이 스며들었다.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식욕이라니, 꼭 세 달 만이었다.
유명한 식당에서 줄 서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없었다. 어디를 가도 그랬다. 경험상 그런 식당 주변엔 언제나 자웅을 겨룰만한 식당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처럼 그 식당들 역시 운이 부족했을 뿐이다.
기름향에 이끌려 들어간 식당은 할머니가 서빙을, 할아버지가 요리를 맡은 덮밥집이었다. 적당한 분주함과 여유로운 공기가 가게를 채우고 있었다.
"스미마센."
구석 자리에 앉아 물을 마신 뒤 손을 들었다.
"튀김덮밥과 된장국, 장아찌와 산토리 생맥주 주시겠어요? (天丼と味噌汁、漬物とサントリーの生ビールをいただけますか?)"
장아찌와 된장국은 평범했지만 튀김덮밥만은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어서, 나는 추가로 맥주를 더 주문했다. 연거푸 맥주를 마시자 나른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장소를 옮겨가며 오후 내내 술을 마실 작정이었다. 산토리가 배부르면 미타케 소주를, 취기가 오른다 싶으면 다시 산토리를 주문했다.
깨끗한 길, 친절한 사람들, 외우기 쉬운 거리 구조. 후쿠오카는 이별한 사람이 술 마시며 오후를 보내기에 좋은 도시다.
('후쿠오카, 밤'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