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싱크대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나는 택배 박스에서 그림을 꺼내 들었다. 부드러운 발포지에 싸여있는 캔버스는 선녹빛과 다홍빛을 언뜻 내비치며 무심한 척 침묵했고 나는 잠시 그 침묵에 귀를 기울였다. 침묵이 잦아들 즈음 조심스레 발포지를 벗겨내자 프리다 칼로의 유작, ‘인생 만세’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인터넷 쇼핑을 통해 십칠만 오천 원을 주고 구입한 모작이다.
20호짜리 캔버스 왼편 아래쪽에는 잘 익은 반 통짜리 수박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한여름 태양빛을 온전히 빨아들인 듯한 시뻘건 과육이 터질 듯한 생명력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중앙에 자리한 검푸른 껍질의 탱글한 수박 한 통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금방이라도 쩍 갈라질 듯하지만 그 속은 도무지 알 수 없다. 나는 손가락 마디를 구부려 그림 속 수박을 두드려 보았다. 그러자 빈틈이 가득한 둔탁한 소리가 캔버스 주위를 떠다녔다.
인생 만세라니. 느닷없이 아니꼬운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장애로 고통받고 살았으면서, 그래서 윤회의 사슬을 끊어내고 싶다고 했으면서 뭐가 인생 만세야. 위선자. 나는 그림을 내던졌다. 순간 왼쪽 다리에 찢기는 듯한 통증이 밀려와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온몸을 옹송그린 채 죽은 듯 시간과 대치하다 사위가 조금씩 수런대자 그제야 제정신이 들었다.
저기 ‘인생 만세’가 있다. 허벅지 아래로 무릎과 종아리와 발목과 발이 절단된 내 왼쪽 다리 아닌 다리, 그 끝에 인생 만세가 그로테스크한 모양새로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