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집

by 혜희

산골의 봄은 걸음이 더디다. 장지문을 열어젖히니 아직 겨울의 냉기가 가시지 않은 바람이 뺨을 식힌다. 어느 집에서 저녁밥을 짓는지 바람 안에 구수한 냄새가 묻어왔다. 코를 킁킁대며 툇마루에 나가 앉았다. 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마루를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할매는 매일같이 마루를 걸레로 훔쳤는데. 갓 피어난 초록들이 봄 햇살 속에서 눈부시다. 왜인지 콧등이 시큰거린다. 마당 한 켠 구석에 자리한 감나무에도 연한 새순이 올라오고 있다. 할매가 만들어준 감말랭이가 참 맛있었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정지에는 살림의 흔적이 없다. 냉장고도 텅 비어 있다. 늘 반질반질했던 까만 가마솥은 윤기를 잃고 테석테석하다. 할매는 어디로 갔을까. 넋을 놓고 타다 만 아궁이의 재를 보고 있는데 으앙 하는 울음소리가 울렸다. 뒤꿈치가 찢어져 성글게 바느질한 고무신을 질질 끌고 안채로 향한다. 아기가 잠에서 깼다. 아직 이름이 없어서 무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태열이 울긋불긋 올라온 얼굴에 악까지 써대니 아기의 얼굴은 곧 터질 듯이 붉게 타오른다. 가방에서 젖병을 꺼내 분유를 탄다. 생수에 분유가 잘 녹지 않아 팔이 빠져라 젖병을 흔들어야 했다.


야, 까놓고 말해서 그 애가 내 앤지 어떻게 아냐. 남자는 그렇게 말했지만 세상에 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 아이는 남자와 똑같이 생겼다. 짙은 쌍꺼풀에 뭉툭하게 복스러운 코, 착하게 처진 눈썹까지. 오픈 채팅에서 그를 만나 그의 원룸으로 굴러 들어가기까지 다섯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어쩌면 남자의 부정에도 일리가 있다. 납득된 나는 외진 공원 화장실에서 혼자 아이를 낳았다.


배가 부른 지 아기는 조용해졌다. 그제야 지난밤 대충 봐 넘긴 방안의 모습을 찬찬히 훑는다. 가출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이 낡은 집에서는 낡은 것들이 서로의 낡음을 위로하며 더욱더 낡아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낡은 할매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하나, 둘, 셋, 넷, 다섯 송이의 카네이션 조화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매년 어버이날에 할매에게 선물한 것이다. 다섯 번째 카네이션을 선물하고 석 달 후에 나는 집을 나갔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풍겨오는 문설주의 낡은 나무 냄새, 물을 마실 때마다 느껴지는 양은 주전자의 낡은 구리 냄새, 잠을 잘 때마다 훅 끼쳐오는 무명 이불의 낡은 솜 냄새, 무엇보다 할매 몸에서 흐릿하게 배어 나오는 낡은 삶의 냄새가 싫었다.


아기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몸을 일으켰다.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을 것 같다. 거의 이틀 동안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사실 어제 할매에게 저녁밥을 얻어먹고 할매가 잠이 들면 아기를 맡겨 놓고 달아나려 했다. 17년 전 내 엄마라는 여자가 그렇게 했듯이. 하지만 할매는 집에 없었고 할매의 2G 핸드폰만이 방전된 채 낡은 텔레비전 옆에 놓여있었다. 집에서 오백 미터쯤 걸어 나가면 평소 할매와 친하게 지냈던 영산댁 할매집이 있다. 가서 할매의 소식도 묻고 요기 거리라도 좀 얻어올 요량으로 발길을 뗀다.


어느덧 해가 기울었다. 산 그림자가 어둠을 내리덮으며 산골 마을은 더욱 괴괴해졌다. 핸드폰의 플래시를 켜고 조심해서 걸음을 옮긴다. 이 어둠과 적막이 얼마나 싫었던지. 밤이 되어도 불이 꺼지지 않는 환한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3년 동안 도시의 불빛은 야금야금 내 영혼에 화상을 입히더니 지울 수 없는 켈로이드를 남겨주었다. 어둠을 헤집어 가는 길에 당산나무를 만났다. 둘레만 2미터가 넘는 300년은 족히 살았을 회화나무이다. 어린 시절, 할매는 당산나무 아래 평상에 나를 앉혀놓고 치성을 드리곤 했다. 무엇을 그리도 간절히 비는지 무서워 물어볼 수 없었다. 할매의 소원은 단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할매는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첫째 아들은 뱃속에서 죽었고 둘째 아들은 태어난 지 3일 만에 죽었고 셋째 아들은 죽은 채로 나왔다. 그리고 엄마를 낳았지만, 이후로는 더 이상 아이를 품지 못했다. 할매는 아들 못 낳은 죄인으로 평생 구박받았고 엄마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둘만 남게 된 모녀는 원망할 대상을 찾아 서로를 할퀴고 꼬집다 결국 지쳐버렸고 엄마는 열일곱에 집을 나갔다.


영산댁 할매집은 불이 꺼져 있다. 벌써 잠들었나.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 대문을 밀어보았다. 너무나 무방비하게 열리는 문에 도리어 주춤거리게 된다. 할매, 할매, 영산댁 할매. 안방 앞에서 나직하게 불러보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멍하니 서 있다 툇마루를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손끝을 마주 대고 비비니 먼지 알갱이들이 뭉쳐진다. 대체 다들 어디로 가버린 거야. 덜컥 무섬증이 일어 빠른 걸음으로 집을 빠져나왔다.


가는 길에 다시 당산나무를 만났다. 온몸에 힘이 풀리며 무기력해진다. 평상에 철퍽 몸을 부리고 눈을 감는다. 낡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낡은 집에 낡은 냄새로 흡수되어 버린 걸까. 하늘에 촘촘하게 박힌 별 하나와 눈싸움을 하는데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벌떡 일어나 신발을 아무렇게나 꿰어 신고 달린다. 달리며 당산나무에 소원을 빌었다.


집에 도착하니 아기의 빼액대는 소리와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오버랩되고 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전화다. 집 전화야. 평생을 기다려온 전화인 마냥 급하게 뛰어 들어가 수화기를 낚아챘다. 할매, 할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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