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오늘을 살아낸다는 것 (feat. 동네 고양이들)

by 하얀 연

매일 우는 억울이


“야아아아아아옹!!!”


사무실 문 앞에서 또 울고 있다. 하얀 몸에 검은 얼룩, 덩치 큰 젖소 고양이 억울이. 맨날 혼자 다니면서도, 늘 이 시간엔 여기에 나타난다. 배고프다고, 지금 당장 밥 달라고, 고양이답지 않게 아주 시끄럽게.


간식 봉지를 꺼내 들자, 억울이 눈이 동그래진다. “야옹옹옹!” 그 크고 둔한 몸으로 후다닥 달려온다.


얼른 털어준 간식을 우걱우걱 먹던 억울이가, 문득 고개를 든다. 저 멀리, 지붕 위에서 엄마 고양이가 걸어 나오고 있다. 방금 전까지 그리도 큰소리로 울던 억울이는 갑자기 조용해진다. 꼬리를 치켜들고, 아기처럼 몸을 낮춘다.

그리고, 아주 작게...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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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 다음 날, 바닥엔 물자국이 남았다. 억울이는 그 사이를 피해서, 사무실 벽돌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도 오지 않았지만, 억울이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은 말했다. “쟨 왜 맨날 저기 앉아 있지?” 모른다. 억울이는 늘 거기 앉아, 똑같은 방향을 본다. 사람이 오고, 문이 열리고, 무언가 손에 들려 있길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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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건, 억울이에게 그저 밥 때문만은 아니다.

비가 그치고 햇살이 들자, 억울이는 몸을 펴고 크게 하품했다.

그리고 한참 뒤, 그 사람이 나타났다. 손에는 조그마한 봉지가 들려 있었다.

억울이는 소리를 질렀다.


“야아아아아아옹!!!”


그제야, 하루가 시작되었다.




엄마냥이, 아기들을 데리고


창고 뒤편, 낡은 파렛트 밑에서 엄마냥이는 두 아이를 끌어안고 있었다.
한 마리는 얼룩무늬에 눈빛이 또렷한 삼색이,
다른 한 마리는 덩치가 일찍부터 컸던, 시끄러운 억울이였다.


밤엔 쥐를 쫓고, 새벽엔 다른 고양이들이 자리잡은 급식소 밥을 훔치며, 엄마냥이는 쉼 없이 움직였다. 아이들 밥이라도 챙기려면 그랬다.


어느 날은 억울이가 “야옹! 야아아아옹!” 소리쳐 사람을 놀라게 했고, 또 어느 날은 삼색이가 몰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가 호되게 쫓겨났다.


“엄마, 나 잘했지?”
“응, 우리 억울이 잘했어.”


언제나 웃으며 말했지만, 그날 밤 엄마냥이는 조용히 눈을 감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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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냥이가 잃어버린 날


억울이는 자랐다. 엄마보다 두 배는 큰 몸집이 되었고, 어느새 혼자 밥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엄마, 나 이 근처서 잘 살고 있어. 걱정 마.” 그 말에 엄마냥이는 작게 웃었지만, 마음속 한켠은 비워지는 기분이었다.


그 무렵, 삼색이는 종종 멍하니 먼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비가 오던 어느 날, 삼색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기다린 끝에, 삼색이의 작은 몸이 조용히 누워 있는 걸 발견했을 때... 엄마냥이는 움직이지 못했다.

울지도 못한 채, 바람 속에 오래 서 있었다. 억울이는 먼발치에서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섰다.



엄마냥이에게 다시 생긴 자리


시간이 흘렀다. 엄마냥이는 여전히 창고 근처를 맴돌았지만, 전처럼 부지런하지도, 경계심도 덜했다. 외로움은 몸보다 마음을 먼저 늙게 만들었다.


그런 엄마냥이 앞에 두 마리의 검정 고양이가 나타났다. 깜장 몸에 노란 눈을 가진 루나, 그리고 턱시도를 입은 흰 양말의 루루.


처음엔 아무 말도, 아무 접근도 없었다. 하지만 며칠 뒤, 루나는 닭가슴살을 엄마냥이 앞에 조용히 두고 갔다. 루루는 햇살이 드는 시간, 엄마냥이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 따뜻한 옆자리에서, 엄마냥이는 문득 삼색이를 떠올렸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고요한 숨을 길게 쉬었다.


지금은 잃은 것보다 남은 것이 많지 않을지 몰라도... 이 작은 옆자리 하나가, 다시 삶을 이어가게 해준다.




루나, 검은 그림자 속에서


한때, 루나는 그림자처럼 조용히 움직이는 고양이였다. 같은 검은빛 털을 가진 루루와 언제나 함께 다녔다.
햇살 좋은 날, 루루가 바닥에 배를 깔면 루나는 그 옆에 꼭 붙어 누웠고, 비 오는 밤이면 둘은 나란히 파렛트 밑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어느 날, 루루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 흔적도 없이.


어떤 울음도 없이.




루나는 며칠을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눈동자는 텅 비었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엄마냥이.


가만히 옆에 앉아, 아무 말도 없이 같은 방향을 바라봐줬다.
그날 밤, 처음으로 루나는 스스로 밥을 조금 먹었다.


그 이후로, 둘은 자주 함께 다녔다. 루나가 먼저 걸으면 엄마냥이가 뒤따랐고, 엄마냥이가 앉으면 루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젠 누가 누구를 챙긴다고 말할 수 없다. 엄마냥이는 가끔 루나의 귀를 핥아주고, 루나는 엄마냥이의 등 뒤에서 졸고 있는다.


누군가는 말한다. “검정 고양이랑 저 젖소무늬 고양이, 무슨 사이야?”


그 둘은 가족이다.


서로의 빈자리에 머물 줄 아는.

조용하고 단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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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고양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
사람들처럼 말이다.
사연 없는 존재가 과연 어디 있을까.


누구나 저마다의 마음을 품고,
삶이 던지는 감정들을 끌어안으며 살아간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외롭거나 그리운 날들을 지나며
우리는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든 견뎌낸다.
세상이 놓아주는 상황들을 감당해가며 말이다.

그렇게 버거운 삶 속에서,
누군가를 위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할 수 있다면...
그 생은 얼마나 더 아름다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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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냥이와 루나처럼.

각자의 상실을 껴안고, 서로의 옆자리를 채워준 두 고양이.

엄마가 되어본 존재와, 연인을 잃은 존재가,

말 없이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함께 하루를 지낸다.


억울이처럼.
크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배고픔을 외치지만,
정작 엄마 앞에선 아기 고양이처럼 눈을 내리감는,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오늘을 사는 고양이.


이 동네에는 그런 삶들이 있다.
고요하지만 깊고, 작지만 단단한 마음들.
그것이 살아간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그들도, 오늘을 그렇게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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