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귤이와 밤이, 사랑이었다.

by 하얀 연


01 햇살이 드는 골목


서울의 오래된 주택가, 골목과 골목이 겹쳐지는 낡은 벽돌 틈 사이. 그곳엔 늘 두 마리 고양이가 있었다. 오렌지색 털에 눈빛이 선명한 귤이, 그리고 하얀 뱃살에 갈색 무늬가 둥글게 번져 있는 커다란 고양이 밤이. 사람들은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게, 그 둘을 항상 함께 봐왔다.


언제나 둘.


추운 겨울에도, 비 오는 장마철에도, 볕이 드는 봄날에도.

귤이는 앞장섰고, 밤이는 뒤를 따랐다. 귤이는 눈앞에 사람이 있어도 주춤하지 않았다. 때로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고, 가끔은 털썩 주저앉아 털을 고르기도 했다. 하지만 밤이는 달랐다. 덩치는 훨씬 크면서도, 사람의 발소리만 들려도 다급히 뒤로 숨었다. 골목 입구의 화분 뒤, 고물상 앞의 박스 아래, 귤이의 꼬리 너머로만 세상을 봤다.


귤이는 항상 밤이를 기다렸다. 밥그릇 앞에서도, 햇살 좋은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도.
귤이는 항상 밤이를 돌아보았다. “이리 와, 괜찮아. 나 여기 있어.” 고양이의 말이 들리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렇게 느꼈다. 둘이 있을 땐, 세상에 무서울 게 없다는 듯.


그날도 그랬다.


동네 밥 주는 아가씨가 참치캔을 따는 소리에 귤이가 먼저 나타났다. 꼬리를 바짝 세우고 사뿐사뿐 다가가 앉더니, 아가씨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밤이가 조심스레 나타났다.


밤이는 귤이 뒤에 서서 조심조심 밥을 먹었다.

그 순간이 그렇게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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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골목 너머, 바람 부는 날


여름 바람이 분다.
이제 장마철이라, 습한 밤이면 한 번씩 진한 바람이 귤이의 수염을 흔들고, 밤이의 긴 몸을 움츠리게 했다. 그래도 그들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좁은 골목 가장 안쪽, 부서진 에어컨 실외기 위. 둘이 나란히 몸을 구부리고, 따뜻했던 낮의 햇살을 품은 쇠판 위에서 졸곤 했다.


어느 날, 밤이가 보이지 않았다.

귤이는 오래도록 골목 입구에서 기다렸다. 밥도 먹지 않았고, 해가 져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가씨가 걱정스레 말했다. “밤이는 어디 갔을까... 설마 다친 건 아니겠지.” 귤이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귤이 혼자 몸을 말고 잤다. 귤이 옆엔 항상 밤이가 있었는데.


이틀 후, 밤이가 돌아왔다. 뒷다리를 절고 있었다. 귤이는 달려갔고, 밤이는 한 걸음 한 걸음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다가왔다. 귤이는 밤이의 얼굴에 코를 대고 몇 번이고 부볐다. 밤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귤이 옆에 조용히 누웠다.

그날 이후, 귤이는 밤이 옆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도, 자리를 옮길 때도, 심지어 밤이 똥을 누러 갈 때까지도. 귤이는 항상 한걸음 앞에서 고개를 돌려 밤이를 확인했다.


밤이는 점점 더 말을 아꼈다. 자주 숨었고, 멀리 나가지 않았다. 귤이는 밤이를 대신해 세상을 향해 몸을 내밀었다. 사람들 앞에 섰고, 밥을 얻었고, 위험한 골목을 먼저 지나갔다. 귤이가 앞장서서 골목을 밝히면, 밤이는 그 빛을 따라 걸었다.


그 여름, 뜨거운 바람은 자주 불었고, 노을은 길게 남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귤이는 아주 잠깐 한눈을 팔았다.


그날, 밤이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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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귤이의 밤


밤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귤이는 밥을 먹지 않았다. 골목 입구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었고, 아무도 오지 않아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가씨가 걱정하며 말했다. “귤아, 너 왜 혼자 있어? 밤이는 어디서 쉬고 있어?” 귤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귤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늘 당당하던 고양이는 이제 조용히 숨어 있는 고양이가 되었다. 밤이처럼.


그러던 어느 새벽이었다. 아가씨는 물 한 컵을 들고 골목을 지나다가 멈춰 섰다. 실외기 위, 그 익숙한 자리. 거기에 귤이가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쉬며. 그 옆에, 아무것도 없던 그 자리에, 작은 갈색 털 한 가닥이 바람에 날려 내려왔다.

귤이의 코끝에 닿았다.


귤이는 눈을 뜨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걸었다. 매일 가던 길, 밤이와 함께 가던 그 좁은 골목을 지나, 그들이 처음 만났던 곳으로. 이제는 좁은 골목도, 젖은 바닥도 상관없었다. 귤이는 밤이를 찾기 위해 걸었다. 어쩌면... 밤이는 항상 귤이 마음속엔 이미 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날 이후, 귤이도 사라졌다.


사람들은 아주 오랫동안 실외기 위에 밥을 놓았다. 아무도 먹지 않았지만, 비 오는 날이면 더 푸짐한 밥을 여전히 그 자리에 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치 기적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 자리에 다시 나타난 귤이와 밤이. 그 둘은 오늘도 변함없이 함께 산다. 귤이는 밤이의 낮이고, 밤이는 영원한 귤이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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