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을 향하여 먀-아
오전 아홉 시와 열 시 사이 어느 때
거세게 불던 그날의 무더운 여름바람은
털복숭이들에게는 몹시 모집고 가혹하였다.
사람에게만 다정한 이 도시의 사계절이
길 위 고양이들에겐 어떤 의미였을지는,
동네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오늘은 여름이었다.
햇빛에 말라서든, 장맛비에 떠내려가서든 죽음의 문턱을 건널까 말까 하는 계절.
마음 속 계절만큼은 결코 바뀔 법이 없는 도시 한 가운데
억울이가 눈을 떴다. 새로운 아침이다.
지난 밤, 무서운 폭우를 겨우 겨우 살아낸 기특한 억울이.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을 보고서는 관목 나뭇가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다가올 땡볓을 미리 피하기로 했다.
억울이는 사람을 보면 무척 반가워한다. 꼭 인사를 건넨다. 먀-아.
반가운 사람이면 가까이 다가가기도 한다.
오늘도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고, 우린 서로를 한참 지긋이 바라보았다.
- 어젯밤엔, 폭우가 심해서 무서웠어. 그 차갑고 굵은 빗방울들도, 물소리도.
빈 집 현관 앞에 누가 버리고 간 박스 안에 들어가서 겨우 비를 피했는데,
이미 물웅덩이와 진흙을 번갈아 밟은 나의 더러운 발을 보니
엄마가 생각났어. 엄마는 비를 피하지 못했을 거야.
배고프다며, 먼 급식소로 가는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는데,
얼마 안 지나 천둥번개 치며 비가 막 쏟아졌거든. 엄마는 비를 맞았겠지.
비를 맞았겠지.
비를 맞았겠지.
비는 참 무서워. 내 동생 삼색이가 떠난 날도 이렇게 비가 내렸었거든.
- 억울이는 말한다.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을 보며, 억울이는 큰 소리로 울었다. 야옹.
그러자 멀리서 메아리처럼, 조금 더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먀-아.
억울이의 울부짖음을 들은 엄마냥이의 대답이었다.
억울이와는 거리가 조금 먼 곳,
엄마냥이는 평소에도 사람들을 피해 숨는 마당에서
젖은 털을 잘 말리고 있었다.
그녀 곁에는, 요즘 가장 친하게 지내는 루나가 있었다.
루나도 한 달 전쯤 남자친구를 잃었다. 그날도 비가 왔었다.
상실을 견뎌낸 고양이들은 오늘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며,
살아갈 계절이 되어준다.
여름은 아프도록 뜨겁기만 하지만, 고양이들의 마음은 언제나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