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귤이와 밤이, 계절을 함께 걷는 고양이들
귤이, 밤이
귤이와 밤이, 계절을 함께 걷는 고양이들
귤이와 밤이. 밤이든 낮이든 꼭 붙어 다니는, 이 동네의 단짝 고양이 두 마리.
이곳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부터 가장 궁금했던 건, 이 둘이 언제부터 함께였을까 하는 것이었다.
서로를 닮은 구석은 별로 없었다. 남매라기엔 외모도, 성격도 많이 달랐으니까. 하지만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둘은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서로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사이라는 걸.
이른 아침, 햇살 가득한 거리를 누비며 신나게 뛰어놀 때도, 늦은 오후, 어둑해진 골목 귀퉁이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을 때도 둘은 늘 함께였다.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주고, 여름날엔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며,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 어쩌면 서로에게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의미일지도 모른다.
귤이는 활발하고 당찬 성격이다. 가볍고 빠른 몸놀림으로 이곳저곳을 누비고, 사람들 앞에도 스스럼없이 나타난다. 하악질도 하고, 밥자리에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원하는 만큼 먹고, 또 원하는 자리에 드러누워 쉬곤 한다.
그에 비해 밤이는 조금 소심한 아이. 귤이보다 훨씬 큰 덩치에 통통한 뱃살, 큼지막한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을 무서워하고 낯선 것들엔 늘 한 발 물러서 있다. 늘 숨어 다니고, 혼자서는 밥도 잘 못 먹는다. 귤이가 뒤를 지켜주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용기를 내어 밥자리에 다가간다.
그런 귤이와 밤이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자연스럽게 채워주며,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환상의 짝꿍이 되어 살아간다. 이 둘을 볼 때마다 늘 같은 생각이 든다. 만약 나에게도 저런 친구가 있다면, 함께 계절을 건너고, 그림자가 되어주고, 그늘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다면... 그 어떤 계절도 두렵지 않겠다고.
밤이는 겁이 많다. 다만, 귤이와 함께일 때는 다르다.
귤이가 앞장서서 밥을 먹기 시작하면, 밤이도 그제야 안심한 듯 뒤따라온다. 귤이가 낯선 사람 곁에서 느긋하게 앉아 있으면, 밤이도 멀찍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금씩 가까이 다가온다. 마치 ‘괜찮아, 내가 옆에 있어’라고 말해주는 듯한 귤이의 존재 덕분에, 밤이는 매일의 작은 용기를 배워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종종, 이 둘을 보며 나의 삶을 돌아본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되어주는 일.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주는 일. 상대가 완벽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라, 함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마음의 평온.
사람 사이에서도 이런 관계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서로를 오랫동안 이해하고, 맞춰가고, 다치지 않도록 애써야 하니까. 하지만 이 고양이 두 마리는 말 없이 그런 사이가 되어 있었다. 대단한 사건이 있어서도, 특별한 약속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저 함께 있는 시간이 쌓이고, 서로를 향한 작은 신뢰가 쌓인 결과일 것이다.
여름의 햇살이 점점 짙어지는 오후, 귤이와 밤이는 나무 그늘 아래 나란히 누워 있다. 귤이는 여전히 밤이를 지키기 위해 주변을 살피며 귀를 바짝 세우고 있고, 밤이는 그 옆에서 느긋하게 눈을 감고 있다.
서로의 온기와 숨결에 익숙해진 두 존재. 아무 말도 없지만, 누구보다 확실한 연대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 둘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우리 모두도 이런 존재 하나쯤 곁에 있다면 사계절이 조금은 덜 외롭고, 삶이 조금은 더 따뜻할 수 있지 않을까. 귤이와 밤이처럼, 말 없이 곁을 지켜주고, 서로의 계절을 함께 건너가는 그런 친구 하나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