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루루야 사랑해 - 길고양이 루루를 기억하며...

by 하얀 연
IMG%EF%BC%BF8744.jpg?type=w1600
SE-d6b30804-855f-4933-bba0-22410cd66363.jpg?type=w1600


달빛에도 반짝이지 않던, 텅 빈 눈빛. 울음 한 번 내지 않으려 긴 숨을 삼키던 그 아이는 엄마 고양이였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떠돌다 머무른 곳은, 얼어붙은 꽃잎들이 바람에 뒹굴다 지저분하게 널려 있는 흙바닥. 내가 처음 본 엄마냥이는 그렇게 외로운 존재였다.


가끔 간식을 내미는 사람을 만나도, 그녀는 자리를 억울이에게 양보하곤 했다. 자신은 뒤로 물러서며, 아이에게만 먹이려는 듯. 그 모습에서 참 엄마라는 이름이 어울린다고 느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아이가 가장 애틋하고 늘 궁금했다.


SE-b479a093-ad61-4099-aa65-8f02d98cbb96.jpg?type=w1600


도시는 잔인하게도 고양이들에게 계절이 바뀌는 법이 없다. 봄이 와도 따스한 건 사람들뿐이고, 여름이 찾아와도 그늘은 드물다. 엄마냥이는 오래도록 이 도시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왔다. 고양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조용하고, 느리게 움직였다. 그리고 눈에는 언제나 오래된 기억이 담겨 있었다.


그녀에게는 딸이 있었다. 사람들은 삼색이라고 불렀다. 세 가지 빛깔을 품은 고양이였다.


삼색이가 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미 버거움의 끝에 서 있던 엄마냥이의 삶은 가늠조차 어려워졌다. 억울이를 더 챙기려는 이유도, 그 사랑의 깊이도, 그제야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삼색이가 있을 때까지, 억울이와 엄마냥이는 함께 기대며 소소하지만 분명 행복한 나날을 살아갔다. 하지만 삼색이를 떠나보낸 뒤의 슬픔은 함께한 시간만큼이나 깊고 무거웠다.


SE-b751e378-59e4-4ca8-9ef2-cc00d0f725df.jpg?type=w1600
SE-6fa83917-aa5f-422f-885d-fc8971b38c6f.jpg?type=w1600


그런 엄마냥이에게도 어느 날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봄 햇살이 무르익을 무렵, 흰 양말을 신은 루루가 엄마냥이를 불렀다. 내가 루루의 쉼터라 부르던 마당으로 와서 놀자고. 루루는 대장냥이의 역할을 하며 엄마냥이와 루나를 이어주었고, 셋은 그렇게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엄마냥이는 오랫동안 잊었던 야옹을 기억해냈다. 루루를 따라 작은 소리로 노래를 흉내 내던 날, 하늘은 푸르고 꽃은 만개해 있었다. 루루가 앞서면, 뒤따르는 루나와 엄마냥이가 함께 골목을 걸었다. 그들의 하루는 마치 짧은 동화 같았다.


SE-987e0950-19aa-4c10-8542-0e0e8dd69468.jpg?type=w1600
SE-e2dce575-8c6d-483b-a957-2b94428f35b6.jpg?type=w1600
SE-A371111A-AEC5-4AB7-8119-5B0B5CA3F120.jpg?type=w1600
SE-4FE2A1C3-268E-497F-9031-24D3885086B2.jpg?type=w1600


루나도 엄마냥이를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느티나무 길 산책을 함께하자며 먼저 불러주고, 급식소에 도착하면 양보하며 지켜봐주었다. 엄마냥이가 억울이를 향해 사랑을 건네듯, 루나는 우정을 나누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SE-298bfe95-4bc3-4f31-a507-0ae0b728d786.jpg?type=w1600
SE-01ab03ec-1a73-48d5-b87f-fd0292496c4c.jpg?type=w1600
SE-1A399923-F2AD-411F-8C01-0CEE3A4723DB.jpg?type=w1600
SE-8AB2EDD3-1B48-43C1-A81D-87354902C81B.jpg?type=w1600


그러던 어느 날, 루루가 사라졌다.


엄마냥이는 새벽녘, 홀로 남은 루나를 보았다. 어디에도 루루의 냄새는 남지 않았고, 루나는 말이 없어졌다. 엄마냥이는 그날부터 루나 곁에 머물기로 했다. 어쩌면 잃어버린 딸 삼색이가 자꾸 겹쳐 보였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상실을 감당하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었으리라.


SE-01BED58A-3400-4154-8A54-EBA0F3BAEF02.jpg?type=w1600
SE-AC8E14E9-F14E-4F6B-B666-8E0223C2F9A4.jpg?type=w1600
SE-8A99D3C3-78AC-4875-93E2-DA49711AE853.jpg?type=w1600


오늘도 해가 기울 무렵, 두 마리는 갤러리 앞 조명 아래 나란히 앉아 있었다. 예전엔 루루가 즐겨 앉던 자리다. 야옹 소리를 내는 루나, 그 곁에서 고개를 돌려 이마를 살며시 부비는 엄마냥이. 둘은 그렇게 마음을 전하는 듯 보였다.


"우리도 괜찮아질까?" 루나가 물으면, 엄마냥이는 숨처럼 대답했을 것이다.


"조금은."


밤의 도시는 낮보다 더 고요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 그림자만이 바닥에 붙어 흔들렸고, 골목에는 환풍기 모터 소리만이 맴돌았다. 그 속에서 루나는 홀로 걷기로 했다. 길은 정하지 않았다. 이미 걸었던 길을 또 걷고, 맡았던 벽을 다시 맡았다. 희미한 기대감이 발걸음을 이끌었다.


루루도 자주 그랬다.


루나는 쉼 없이 떠돌았다. 쓰레기봉투 위에 몸을 얹어보고, 버려진 가구 밑에서 풀을 뜯어보다가도 결국 발길이 멈추는 곳이 있었다. 환풍구 뒷편, 루루가 비를 피하기 위해 찾았던 자리. 거기엔 온기도 냄새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기억만은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SE-6C9958E4-917B-4B51-AF68-CEC453AE382E.jpg?type=w1600
SE-5B8B051F-456B-4921-90DB-2E1FF53F048D.jpg?type=w1600
SE-A6173FE5-1424-48F5-A893-96BD7FBB49DA.jpg?type=w1600
IMG%EF%BC%BF5799.jpg?type=w1600
IMG%EF%BC%BF5796.jpg?type=w1600


밤이 깊어 돌아온 루나는 엄마냥이가 있는 마당에 앉았다. 엄마냥이는 작은 목소리로 야옹했다.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루루는 최고의 친구였어."


루나는 가만히 엄마냥이를 바라보았다. 그 말에 꼭 공감했을 것이다.

잃어가는 과정에 놓여진 우리들이여, 이 세상 어디에도 영원한 것은 결코 없습디다.

그리고 잃은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분명 사랑한 것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어떤 마음은 남는 법이다. 루루는 루나와 엄마냥이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 기억에, 마음에.


루루가 이 동네 고양이들에게 가르쳐준 사랑과 우정은, 그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살아 있으리라.


SE-FABF0251-6231-45BF-BBBC-BE4C3F5A704B.jpg?type=w1600
SE-4147CFBF-0C42-4F49-9D44-C75D5D157B52.jpg?type=w1600
IMG%EF%BC%BF4634.jpg?type=w1600
IMG%EF%BC%BF4904.jpg?type=w1600
IMG%EF%BC%BF5110.jpg?type=w1600
keyword
작가의 이전글71 오늘의 골목 인사: 못생긴 삼색이 냥이와 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