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변압기 위의 억울이, 느티나무 아래의 밤이

by 하얀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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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온 듯한 억울이. 얼굴에 검은 먼지를 묻히고 검은 발바닥을 쭉 펴고 변압기 위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억울이를 먼저 발견한 동료가 말했습니다.


“일층을 똥칠하는 녀석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억울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동료들은 억울이를 ‘텃밭 주인’, ‘일층에서 배변하는 아이’ 등 저마다 다양하게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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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억울이라고 들었어요.” 제가 알려드리자, 동료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동네마다 억울이가 있네요.”


“억울이, 예쁘구나!” 목소리가 맑은 동료가 부르니 억울이가 쳐다봅니다. 그리고 일어나 쫓아옵니다. 달려오는 억울이를 보고 놀란 동료는 사무실로 후다닥 들어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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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이는 문 앞까지 다가와 알 수 없는 간절한 눈빛을 보냈습니다.


점심시간부터 바람이 솔솔 불더니 오후에는 비가 올 듯 하늘이 어두워졌습니다. 저는 억울이에게 말했습니다. “억울아, 밤에는 비 온대. 지붕 있는 곳에서 안전하게 잘 있어야 돼!” 그렇게 말하고 저도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요. 잠시 일이 있어 일층에 내려갔는데, 세상에... 억울이가 여전히 그 문 앞에 앉아 있는 겁니다. 아니기를 바랐지만, 계속 기다린 듯한 모습에 마음이 참 이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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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할 수 없는 저는 일층 일을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오 분인가 십 분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가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좋아하는 조공스틱을 들고 다시 내려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억울이는 또다시 그 자리에, 문 앞에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온 힘을 다해 야옹야옹 사이렌을 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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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스틱을 보자 억울이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억울이는 먹성이 무척 좋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쉽게 믿는 고양이는 아닙니다. 먹을 것만 받아먹고, 너무 다가가면 도망가 버립니다. 오늘은 제가 짜주는 조공스틱을 아주 맛있게 다 먹었습니다. 다 먹고서는 한 번 째려보고, 뒤돌아서 후다닥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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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억울이를 만나기 전, 루나와 엄마냥이도 일찍 보았습니다.


루나는 마치 제가 아침에 출근하려고 일어날 때의 모습 같았습니다. 지난 날 야근한 사람처럼 푹 자고 있었지요. 사람들이 지나가며 “어머, 저기 고양이가 있어!”하고 외쳐도 아랑곳없이, 숲속에서 졸고 있던 루나 공주님. 잠깐 눈을 뜨고 몸을 뒤척이다 다시 잠드는 모습을 반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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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우리들의 엄마냥이는 오늘도 부지런했습니다. 억울이 영역 근처에서 루나가 있는 곳까지, 뜨거운 초코딸기 발바닥으로 바쁘게 뛰어다녔습니다. 하지만 더웠는지 평소처럼 크게 울지 않고, 조용히 눈인사만 건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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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모든 아이들의 눈동자가 커집니다. 동글동글한 우리들의 짠한노랑이도 그래서 더 동글동글해 보입니다. 낮에는 옆 골목에서 낮잠도 자고 밥도 먹으며 지내다가, 밤이면 느티나무로 와서 또 밥을 먹습니다. 억울이만큼 먹성이 좋은 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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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한노랑이가 오면 다른 아이들이 조금 긴장합니다. 사실 생긴 것과는 달리 무서운 아이가 아닌데 말이죠. 덩치는 크지만 루나에게도 져서 피해 다니는 겁많은 고양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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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한노랑이만큼 덩치가 큰 우리들의 뚱냥이 밤이도 사실은 겁쟁이입니다. 언제나 자기보다 작은 귤이 뒤에 숨어 세상을 봅니다. 오늘도 귤이를 의지한 채 느티나무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짠한노랑이가 떠나야 밥을 먹을 수 있기에, 동네 주민이 마련해준 집에서 용기 내어 나와 기회를 노리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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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도 어김없이 마주한 루나와 엄마냥이는, 갑자기 내린 비에 쫄딱 젖으면서도 서로를 지켜주는 사이인지라 한결 든든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비가 점점 세게 내려 급식소에도, 집에도 가지 못하는 두 아이. 혹시 오늘 밤은 굶는 건 아닐까 걱정됐습니다. 급히 사무실에 두었던 습식 사료를 그릇에 담아 경계심 많은 엄마냥이에게 건네고, 요즘 부쩍 애교가 늘어 밥보다 사람을 먼저 찾는 루나에게는 조공스틱을 챙겨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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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이렇게 변덕스러운 하루도 잘 살아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기록한 뒤, 저는 동네를 떠났습니다. 주말에도 무사히 잘 지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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