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느티나무 아래, 세 고양이의 자에서

by 하얀 연

가을이 깊어질수록 느티나무 잎은 하나둘 흩날리고,

그 아래 작은 밥그릇엔 오늘도 누군가의 정성이 담겨 있었다.

찬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사료 냄새가 은은히 퍼지고,

가장 먼저 나타난 건 깜장 고양이 루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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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조용히 밥그릇 옆에 앉아 귀를 세웠다.

“엄마냥이, 오늘도 늦네.”

아이의 한숨에는 익숙한 기다림이 담겨 있었다.


잠시 후, 느릿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엄마냥이가 나타났다.

“루나야, 또 먼저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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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바람이 차서 오늘은 밥을 빨리 먹고 가야할 것 같아.”

엄마냥이는 그런 루나 곁에 조용히 몸을 붙였다.

서로의 체온이 닿자 바람의 냉기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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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느티나무 잎사귀가 소리를 내며 떨어질 때,

어디선가 또다른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귤이였다.

오렌지색 털이 단풍 속에서도 또렷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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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이는 급식소로 다가와 코끝을 킁킁댔다.

조심스럽게 다가오면서도 눈길은 루나에게 닿지 않았다.

그 사이의 공기는 싸늘했다.


귤이와 루나는 오랜 전부터 밥보다 싸우는 게 먼저였던 사이였다.

서로의 마음에 생긴 흠집은 시간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 귤이는 왔다. 그리고 루나는 그걸 모르는 척 했다.

엄마냥이가 그들 사이에 앉으며 조용히 말했다.

“싸우지 말자. 그냥 먹자. 배가 고프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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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대꾸하지 않고 한 발 물러섰다.

귤이는 고개를 숙이고 밥그릇 쪽으로 다가갔다.

밥알이 이 사이에서 바스락거릴 때마다

귤이의 꼬리가 살짝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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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그리고 서로의 숨결.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 자리는 참 좋아. 냄새도, 소리도, 다 익숙해서.”

엄마냥이가 살짝 웃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익숙해져간다는 건 멋진 일이야. 살아왔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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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도 조용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별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사라진 친구들, 지나간 계절, 그리고 아직 남은 시간들.

그 모든 게 저 별빛 아래 어딘가에 영원히 머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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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을 했다.

“우리 모두 내일도 여기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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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조용히 눈을 맞춰주고,

엄마냥이는 낮은 소리로 대답해주고,

귤이는 꼬리를 흔들었다.

셋은 마치 인사를 건네주는 것 같았다.

“당연하지. 여긴 우리 자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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