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오늘도 주차장을 지키는 망고, 그 아이의 겨울은
우리 동네 어느 주차장에는 네 아이가 산다. 온기를 나누는 치즈냥이 세 마리와, 일 년 전쯤 윗마을에서 내려온 겁 많은 고등어냥이 한 마리.
오늘은 그중에서도 가장 애교가 많고, 가장 오래 아픈 아이에 대해 쓰려 한다.
망고.
주차장 한쪽에 비닐집과 사료, 물그릇을 놓고 매일같이 채워주시는 분이 있다. 그분은 이 아이를 망고라고 불렀다. 그래서 나도 그 이름으로 이 아이를 기억하게 되었다.
근처에 사시는 다른 분의 말로는, 망고가 아마 일곱 살쯤 되었을 거라고 했다. 물론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고, 그분 역시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라 했다. 하지만 길 위의 나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누구도 확실히 세어주지 않는 시간이다.
망고는 구내염을 앓고 있다.
지난여름 어느 날, 약을 따로 챙겨주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그런데도 망고는 너무 오래 아프다. 밥을 앞에 두고도 오래 망설이고, 침을 흘리며 삼키는 그 시간이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아프게 한다.
가끔 생각해본다.
망고가 처음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본 얼굴은 어떤 얼굴이었을까. 자신과 닮은 노란 털의 엄마였을까. 계절을 오래 버티지 못했을 형제들, 엄마가 굶어 낳아 유난히 작았을 또 다른 형제, 끝내 눈조차 뜨지 못했을 형제도 있었을까.
망고는 아파 울고, 배고파 울던 엄마의 몸 안에서 간신히 태어난 아이였을 것이다. 수많은 길 위의 고양이들처럼, 너무도 초라한 환경에서 말이다.
망고에게는 엄마가 없다. 형제도 없다. 오래도록 주차장에서 혼자였다고 한다.
망고는 어떤 외로움을 안고 살까.
단단히 얼어붙은 물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망고가 엄마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 얼굴이다.”
제대로 그루밍을 하지 못해 더러운 얼굴,
차량 사이를 피해 숨느라 묻은 검은 먼지,
구내염으로 흘러내린 침 때문에 여기저기 뭉쳐버린 털들.
그 모습은 마치 엄마 같았을지도 모른다.
엄마와 닮은 고단한 얼굴, 길 생활이 남긴 잔인한 흔적들.
망고 곁에 남은 건, 주차장 생활을 더 오래 버틴 어르신과, 다른 영역에서 살다 어느 날 이곳으로 쫓겨온 무명이였다. 열세 살에서 열다섯 살쯤으로 추정되는 어르신과, 이름조차 없던 무명이는 모두 노란색 털코트를 입고 있다. 빛깔은 조금씩 다르지만, 만나고 나서는 식구처럼 줄곧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망고가 침을 흘리고, 때로는 피까지 흘려도 여름에는 물을 나눠 마시고, 겨울에는 몸을 붙여 온기를 나눈다.
다른 고양이들은 구내염 앓는 아이에게서 나는 냄새를 피해 다닌다는데, 어르신과 무명이는 망고를 한 가족처럼, 한 몸처럼 대한다.
가끔 건강한 무명이와, 구내염 초기증상을 보이는 어르신은 동네 안쪽 골목까지 나들이를 간다. 사실 이 둘은 다른 집에서도 밥을 얻어먹는다. 그 집에서는 또 다른 몇 마리에게도 밥을 챙겨준다고 했다.
아픈 망고는 그들이 나갈 때도 주차장에 남아 있곤 했다. 그래서 망고가 주차장을 벗어난 모습을 본 건, 며칠 전이 처음이었다.
퇴근길, 느티나무를 지나는데 갑자기 들려온 야옹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느티나무 옆, 누군가 두고 간 접시 앞에서 망고가 밥을 먹고 있었다.
망고는 말을 잘 건다.
잘 울고, 잘 다가온다.
요즘은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가만히 자세를 잡으면, 다가와 머리로 툭 하고 박치기를 한다. 손을 탄 아이란 게 금방 느껴진다.
그날, 이 동네의 새로운 대장으로 떠오르는 루나가 순찰을 도는 것도 보았다. 느티나무 급식소에 오는 고양이들을 쫓아내는 게 일상이고, 한 번은 다른 고양이를 물었다는 소문도 있는 아이다.
그런데 루나는 망고를 보고도 모르는 척 지나쳤다.
그들의 세계에는 어떤 규칙이 있는 걸까. 유독 약해 보이는 엄마냥이처럼, 아픈 망고를 루나가 배려해주는 이유를 나는 모른다. 다만 그 사실이 참 고마웠다.
이번 겨울, 망고가 어떻게 지낼지 걱정이다.
날이 좋아도 밥을 잘 먹지 못하는 아픈 아이니까.
그래도 꾸준히 밥과 물을 채워주는 사람이 있고,
비와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있고,
몸을 맞댈 친구들이 있으니 다행이다.
오늘도 망고를 마주치며, 나는 그저 이렇게 말한다.
“망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
그 말이, 이 겨울을 건너는 작은 기도가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