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느티나무의 기적, 아이들의 지난메리 크리스마스
느티나무 아래에는 공식급식소가 있다. 일주일에 서너번, 같은 시간에 같은 그릇이 채워지고, 바람이 덜 드는 쪽으로 겨울집이 하나, 그리고 또 하나 생겼다. 겨울집이 생기자, 질서도 함께 생겼다.
그리고 질서의 맨 위에는 루나가 있었다.
검은 그림자처럼 조용히 나타났다가, 어느새 느티나무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사라지는 고양이.
루나는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아침 순찰을 하고, 밤에도 순찰을 했다. 마치 이곳이 자신의 나라라도 되는 것처럼.
루나의 뒤에는 늘 엄마냥이가 있었다. 한 박자 늦게, 조금 더 조심스럽게. 엄마냥이는 루나를 믿었다. 루나가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멈추면 멈췄다. 자기 판단보다는, 루나의 등을 보고 사는 고양이였다.
그 변화가 가장 크게 와닿은 건 느티나무 아래에서 햇볕 쬐는 걸 좋아하던 두 고양이, 귤이와 밤이였다.
귤이는 오렌지빛 몸을 동그랗게 말고, 밤이는 하얀 배에 갈색 무늬를 햇살에 내놓고 느티나무 아래서 낮잠을 자던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요즘,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귤이는 겁이 많아졌다. 밤이는 산책을 포기했다.
느티나무 쪽에서 바스락 소리만 나도, 귤이는 귀부터 눕혔고 밤이는 몸을 일으켰다.
귤이는 루나가 잠시 먼 마당으로 나간 틈을 타 숨을 헐떡이며 급식소로 달려왔다. 먹고, 또 먹고, 가능한 한 많이. 마치 오늘이 마지막 식사일지도 모른다는 얼굴로.
밤이도 뒤따라 나오려 했지만 몸집이 크고, 발걸음이 느린 탓에 그릇에 남은 건 이미 얼어버린 사료 몇 알뿐이었다. 밤이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또 한 마리의 배고픈 아이가 있었다. 마고.
마고는 느티나무를 멀리서 바라보았다. 급식소가 보이는 거리에서 멈춰 서서, 루나의 검은 형체가 움직이는 걸 확인한 뒤 발걸음을 돌렸다.
그날도, 급식소는 그림의 떡이었다.
모두가 생각했다. 루나는 강한 고양이라고.
하지만 루나는 태어날 때부터 강한 아이는 아니었다.
아주 작은 깜장 아깽이였을 때, 아장아장 걷다 도착한 곳은 어느 미술관 마당이었다.
풀밭이 있었고, 햇빛이 따뜻했고, 마침, 정말 마침 쉬가 마려웠다.
그 순간 들려온 소리.
“도둑고양이! 여기 오면 어떡해!”
사람의 목소리는 컸고, 아기 루나는 몸을 움츠렸다. 집이 없다는 것도 서러운데 볼일을 보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하다니. 그날 루나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자리는 어디일까?”
그 질문을, 이제는 떠나버린 친구 루루에게 던졌을 것이다. 똑같이 작고, 똑같이 떨고 있던 루루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있는 곳이, 우리 자리야.”
그 말은 바람처럼 약했지만 루나의 가슴 깊은 곳에 남았다. 그날 이후 루나는 크게 싸우지 않았고, 크게 울지도 않았다. 대신, 조용히 강해졌다.
지금의 루나는 세 살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길에서 살아온 동네의 대장 고양이가 되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밤, 눈이 내릴 것처럼 공기가 차가웠다. 귤이는 오늘도 배를 채우지 못했다. 밤이는 배를 핥으며 웅크렸다. 마고는 골목 끝에서 망설였다.
그때, 루나가 느티나무 아래에 멈췄다. 순찰하듯 지나가던 발걸음이 그날은 멈췄다. 루나는 냄새를 맡았다. 배고픔의 냄새. 겁의 냄새. 자기 자신이 아주 어릴 때 풍기던 냄새.
루나는 그날, 자리를 바꿨다. 급식소 옆이 아니라, 느티나무 바깥으로 물러났다. 조금 더 먼 골목 아래 변압기로 떠났다.
엄마냥이는 놀라서 멈췄고, 귤이는 숨을 멈췄고, 밤이는 눈을 크게 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빈 자리만 생겼다.
귤이는 조심스럽게 나왔다. 밤이도 나왔다. 마고는 한 발, 또 한 발 다가왔다. 루나는 그들을 보지 않는 척했다. 하지만 그건 무관심이 아니라 그날의 선택이었다.
그날 밤, 느티나무 아래에서는 모두가 조금씩 배를 채웠다. 귤이의 뱃살은 다시 말랑해졌고 밤이는 천천히 숨을 골랐으며 마고는 처음으로 그릇에 얼굴을 묻었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느티나무 위로, 검은 고양이의 등 위로, 모두의 겨울 위로.
전쟁은 끝났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
크리스마스는,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아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조용히 알려주는 밤이 되었다.
그리고 느티나무는 그날의 모든 걸,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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