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삼분 더 걸었더니, 다섯 마리 고양이가...
사계절을 보낸 동네이다.
옆동네도 아니고 윗마을도 아닌
느티나무와 공식 급식소가 있는 아주 작은 이 동네에서
지난 봄·여름·가을·겨울 동안 만난 고양이가 무려 스물여섯 마리이다.
(루루, 루나, 엄마냥이, 억울이, 귤이, 밤이, 짠한 노랑이, 마고, 카오스 일호,
못생긴 삼색이, 주차장 망고, 어르신, 무명이, 수호, 미스 테리, 아픈 고등어냥이,
삼계탕집 사남매, 동그란 꼬리 삼색이, 밤에만 보이는 갤러리 삼남매,
배추밭 대장이, 장난감집 체다냥이 등...)
이쯤 되면 그래, 이 동네 고양이는 내가 다 파악했다라고 생각해도 될 법했다.
그런데 바로 오늘,
저 멀리서 처음 보는 잘 익은 당근색 고양이가 달리는 것이 보였다.
저런 진한 당근색 털은 처음이라 순간 멈춰 섰다.
이 동네에 내가 모르는 고양이가 있다니...!
멀리 있었지만 분명 고양이였다. 그래서 무작정 따라갔다.
하지만 아까 봤던 자리로 가 보니 고양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처음 와보는 언덕길이었다. 지도를 켜 보니 이 동네의 끝자락쯤이었다.
설마 여기까지 와서 못 보는 건 아니겠지하는 마음으로 둘러보다가
앞에 보이는 흙길 언덕을 조금 올라가 보았는데,
그곳은 놀랍게도 고양이 겨울집 천국이었다.
서로 조금씩 떨어진 겨울집과 비닐집들이 줄지어 있었고,
세어 보니 열 개는 훌쩍 넘어 보였다.
곳곳에는 급식소가 있었고, 깨끗한 물과 가득 찬 사료,
건조 간식이 담긴 그릇들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사계절 내내 이 동네를 그렇게 산책했는데도,
골목이란 골목은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도,
흙길밖에 없는 언덕에도 고양이가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이 정도 흔적이라면 한두 마리가 아니다.
체감상 열 마리는 족히 살고 있을 양이었다.
미리 말하자면,
처음 따라갔던 당근색 고양이는 결국 다시 만나지 못했다.
대신 새로운 고양이 네 마리와 배추밭 대장이를 만났다.
모두 귀 컷팅이 되어 있었고, 중성화수술을 마친 아이들이었다.
밥과 물이 있었고, 집과 담요, 스크래쳐까지 갖춘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다.
모두 덩치가 아주 컸다.
그중 한 마리는 내가 지금까지 본 길고양이 중
가장 크고, 가장 뚱뚱한 고양이였다.
언덕을 오르는 길에
넓은 비닐집 안에서 사는 파워 E 치즈 고양이가 있었고,
그 옆에는 닭가슴살을 먹다 만 채
치즈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올블랙냥이가 있었다.
무슨 관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치즈는 매우 아늑하고 따뜻해 보였고,
블랙이는 조금 더 소심하고 야생성이 강해 보였다.
그리고 문제의 뚱뚱이 젖소냥이.
사진으로는 덜해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헉! 소리가 절로 난다.
인형처럼 가까이 가도 가만히 있고,
사람이 있어도 태연하게 앞을 지나 갈 길 가다 밥을 아주 당당하게 먹는다.
멘탈이 상당하다.
그 옆에는 서로 머리쿵을 하는 체다치즈냥이 있었다.
그가 내게 자연스럽게 다가와 가늘게 애옹!하고 울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알아차렸다.
지지난 주 처음 만났던 배추밭 대장냥이였다.
덩치는 대장인데 목소리는 유난히 애잔한 아이이다.
배추밭이랑은 좀 먼데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사진을 대조해보니 확실했다.
그의 영역은 언덕까지 이어져 있었다.
적잖이 놀란 채 내려오는 길에 하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예민한 기색을 드러내는 턱시도냥이가 있었다.
산고양이처럼 행동하는 아주 잘 차려입은 통통한 고양이였다.
내가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 한참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곳을 누가 관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작은 등산 코스처럼 흙길을 올라야 하는 곳이라
돌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 보였다.
비가 오면 청결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고,
눈이 오면 미끄러울 것이고,
낙엽이 쌓여도 관리하기 쉽지 않을 텐데
비닐집과 겨울집은 놀랄 만큼 잘 케어되어 있었다.
감동이었다.
아이들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마음을 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공존은 언제나 이런 다정함 위에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