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느티나무 급식소 출석냥이들의 기록

나는 직장인인가, 길고양이 집사인가?

by 하얀 연

1. 엄마냥이 편 - 엄마냥이는 왜 영하 십도에 꾹꾹이를 했을까?


영하 십도로 뚝 떨어진 밤이었다. 나는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엄마냥이를 만났다. 그녀는 초코딸기 발바닥이 시려서 눈꽃이 맺힌 맨바닥을 꾹꾹이하고 있었다.


눈을 피해 따뜻한 어딘가에 꼭 숨어 있길 바랐지만, 엄마냥이는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 자리에 서서 버티고 있었다.


체감 온도가 더 내려간 날들이 이어졌는데도, 엄마냥이는 며칠 동안 덜덜 떨면서 거리를 나섰다. 겨울바람은 혹독했지만, 그에 반비례해 내 마음은 걱정으로 타들어갔다. 그녀의 속마음이 너무 궁금했다.

사람도 안 나오는 이 추운 거리에 왜 굳이 나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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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직장 동료 A씨가 말을 건넸다. 최근 엄마냥이가 자주 목격된 건물에서 아주 어여쁘고 새침한 고양이를 봤다는 것이다.


눈 윗부분이 부은 것처럼 보여 억울해 보였고, 꼬리는 돌돌 말려 유난히 짧았다고 했다. 설명을 듣는 순간, 지난 가을 홀연히 사라진 억울이가 떠올랐다. 게다가 엄마냥이가 자주 가는 곳에 사는 고양이라니. 혹시...하는 마음이 괜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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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그때 삼십 년째 이 직장에서 쭉 근무 중인 동료가 덧붙였다.

"우리 사무실 뒤에서 울던 젖소 고양이(억울이)는 아닌데요. 생김새는 비슷했고, 체구는 조금 더 작은 삼색 고양이였어요."


이 이야기는 불과 며칠 전에 들은 것이다.


그날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내가 이 동네에 처음 왔을 때, 엄마냥이에게 분명 삼색 딸아이가 있었는데, 내가 입사하기 불과 일주일 전에 고양이 별로 떠났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엄마냥이가 자주 드나드는 그 건물의 작은 삼색 고양이는... 혹시 또 다른 아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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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리 사무실 1층 주차장에서 고양이가 두 번 출산한 적 있어요"라고 말했던 동료 B씨를 찾아갔다. 그는 7~8년 넘게 이곳에 근무하며 고양이들과 자주 마주친 사람이니 뭔가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동료는 흔쾌히 나를 주차장으로 데려가 손으로 위치를 짚어가며 설명했다. 6년 전쯤, 이곳에서 깜장냥이가 네 마리 아이를 낳았고, 제법 쌀쌀한 계절이라 사무실과 이어진 창고 아래에서 아깽이들을 키웠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들을 독립시킨 건지 터를 옮긴 건지 모두 사라졌다고.


그 동료는 변압기 위에 살던 억울이를 볼 때마다 "혹시 그 아이였나" 헷갈리기도 했지만, 억울이는 4년 전부터 변압기에 출석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그때 이미 꽤 통통했단다. 엄마냥이가 억울이를 유독 좋아했던 것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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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루나 편 - 루나의 땅콩 하나로 무너진 고양이 세계관, 그녀를 향한 건 사랑이었을지도...


직장에서는 내가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꽤 유명하다. 누군가 고양이를 발견하면 사진을 찍어 보내주고, 내 방에 들어와 한참 고양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오늘 어디서 어떤 고양이를 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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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나는 이 동네뿐 아니라 옆동네, 윗마을 고양이들까지 비교적 빠르게 파악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구축된 고양이 정보망이다.


루나는 이미 온 동네가 아는 미술관냥이다. 사람을 경계하기는커녕, 관심을 즐긴다. 사진을 찍으면 배를 보여주고, 가끔은 똥꼬쇼까지 선보인다. 요즘 부쩍 늘어난 24시 경찰관들에게도 애교를 부리며 마음을 훔쳤다. 궁디팡팡을 받는 장면을 목격한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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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밭 고양이와 언덕의 뚱냥이를 보고 나면 루나가 작아 보이긴 하지만, 결코 작은 편은 아니다. 심심하면 감나무를 단숨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앞다리에는 근육도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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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루나를 여자라고 믿었다. 아주 확고하게. 그러다 어느 날, 한 봉사자님이 "땅콩 있던데요?"라고 말하는 바람에 의심이 시작됐다. 이후 땅콩을 확인하려고 노력했고, 마침내... 보았다!


수컷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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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엄마냥이를 챙기는 건 의리라기보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혼자 이런저런 소설을 써본다. 그래도 루나 덕분에 엄마냥이가 편히 쉬고, 의지하고, 외롭지 않아 보이는 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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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귤밤이 편 - 마음의 상처가 깊은 통통한 형제의 서사


다만 루나 때문에 긴장하는 이들도 있다. 오렌지 고양이 귤이, 밤색 젖소 고양이 밤이, 그리고 느티나무를 몰래 방문하는 마고까지. 루나가 있는 날엔 모두가 바짝 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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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귤이와 밤이, 일명 '귤밤이'는 동네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사랑과 닭가슴살을 한 몸에 받는다. 사진보다 실물이 몇 배는 더 귀엽다. 너무 잘 먹어서 둘 다 통통... 아니, 솔직히 말하면 뚱뚱하다. 털에는 윤기가 흐른다. 그럼에도 경계심은 상당해서, 밥만 잽싸게 먹고 바로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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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밤이는 마음의 상처가 큰 아이들이라고 들었다.


어느 날 밤, 골목에서 만난 주민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윗마을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던 두 남자 아이. 형제라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가 많던 윗마을에서 영역 전쟁이 벌어졌고, 어린 귤밤이는 어미 없이 굶주리며 떠돌게 되었다. 중성화 이후 더 심해진 괴롭힘 속에서, 결국 귤이가 떠나기로 결심했고, 밤이는 그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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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마을 주차장을 거쳐, 또 밀려나고, 더 내려와 결국 공방 골목에 자리를 잡았다. 공방 사장님은 고양이를 잘 모르던 분이었지만, 귤밤이를 보고 단번에 반하셨다. 조용하고 예쁜 아이들이라 주변 사람들도 더 신경 쓰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처럼 오래도록 건강하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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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고 편 - 하루에 네 끼 먹고도 우는 마고


마고는 느티나무뿐 아니라 작은 갤러리, 주택가, 가게 마당까지 출석한다. 갤러리스트는 마고가 자기와 차를 알아본다고 했다. 출근하면 어디선가 뿅! 나타나 문 앞에서 기다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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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 건, 마고가 하루에 네 끼는 먹는 것 같다는 점이다. 느티나무, 공방, 갤러리, 인근 가게까지. 같은 고양이 맞나 싶어 사진을 찍어 대조해 보지만 전부 마고다. 특유의 억울한 울음소리 덕분에 확신한다. 잘 먹고 다닌다는 걸 알아서 안심이다. 루나가 무서우면 돌아가긴 하지만, 나는 안다. 마고는 굶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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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동네 고양이들은, 내가 아는 다른 동네 아이들보다 삶의 질이 꽤 높은 편이다.

공존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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