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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잠 May 18. 2023

2. 지렁이 가족

한때 가수 신해철을 사이에 두고 옥신각신 했던 이웃동생 현주가 있었다. 


내방 벽에 붙은 신해철 브로마이드를 보며 함께 눈으로 하트 뿅 뿅을 쏘는 동지였고 때론 경쟁자이기도 했다. 

현주는 어릴 적 낙상으로 오랜 기간 혼수상태였었다. 기적적으로 깨어났지만  지적능력이 조금 떨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예쁘고 착한 이웃동생이었다. 


그 무렵. 옆집이 집을 부수고 다시 짓게 되었다. 땅이 우리 집 쪽으로 더 들어왔으니  담을 더 넓혀서 쌓겠다는 말에 확인을 해보니 오히려 우리 집 땅이 옆집으로 더 들어가 있었다. 그 이후로 옆집과 전쟁 아닌 전쟁이 시작됐고 그 집 할머니가 우리 집 안방에 누워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우리 집 대문 앞에서 옆집아줌마가 큰소리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들리는 내용에 이 집 큰 딸이 정신분열병(지금의 조현병)이라며 조심하라고 동네사람들에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정신분열이라는 개인의 병이 어떻게 욕이 되고   흠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큰언니는 원래부터 심성이 곱고 내성적이며 조용한 성격을 가졌다. 착한 언니가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병을 얻었는데 아픈 언니와 가족을 두 번 죽이는 사람들이었다. 가정이 무너지려 하고 있었고 옆집과의 싸움으로 가족들은 정신적으로 지쳐갔다. 


그래도 신해철의 노래는 나에게 그 어두운 터널을 견디게 해 준 고마운 음악이었다. 지나치게 밝았던 나는 지나치게 다크 한 여자가 되었지만 현주와 난 여전히 신해철 브로마이드를 보며 서로 내 거라고 싸우곤 했다.

마왕은 내게, 그래도 나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일깨워준 가수였다.  


의지가 되었던  현주네가 이사를 간다고 했다. 옆집은  일사천리로  집의 형태를 드러내고 있던 중이었는데  현주네가 이사를 가면서 밤에 아저씨가 벽돌하나를 들어 그 집 정화조에 던져버리셨다고 했다. 분노였다. 

그깟 벽돌하나.  청와대에 아는 사람이 있다며 공무원인 아버지를 자르겠다고 협박하던 옆집사람들에게 보내는 '지렁이 꿈틀'이었다. 나의 사춘기는 그렇게 지렁이처럼 지나갔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나는 대답할 것이다. 지나간 세월에 후횐없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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