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믿고 싶은 것만 믿자
새벽 두 시였다.
당뇨 때문인지 갈증이
심했다.
침실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는 중간에
문이 활짝 열린 화장실 안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안에서 무언가 쑤욱하고
밀려 나오는 것을 보았을 때
머리털이 쭈뼛하고 서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모자를 쓴 키 큰 사내가 내 앞에
서있는 것을
몇 초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지?
중절모를 쓴 남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까맣다 하는 것과 현무암처럼
구멍이 있는 질감이었다.
키가 큰 남자는 화장실바로옆에
붙어있는 피아노방으로
들어간 뒤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나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어린이집으로 등원시켰다.
쉬어야겠다 헛것이 보인다.
다크서클이 충만한 얼굴로 나는 다짐했다.
요즘 들어 다크서클이 심해서
지금 당장 귀신을 만난다 해도
귀신 또한 적잖이 놀랄 것 같은
나의 비주얼을 떠올린다면
한 시간이라도 푹 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린이집은 동네에서 보육
잘하기로 소문난 어린이집이므로
안심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귀신? 저승사자?
저승사자를 보내줄 거면 이왕 보내는 거
이동욱으로 보내주시지. 하하.
하기사 검은 것. 그게 무엇이었든 간에
내가 이동욱이라고 믿으면 이동욱이요.
수호천사라고 믿으면 또 그리 생각될 터
나는 믿고 싶은 걸 믿으면 되는 것이다.
나도 그렇고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 한다.
예쁜 사람은 한없이 예쁘고
미운 사람은 미운털이 콕 박혀서
뭘 해도 밉다.
굳이 예쁜 사람을 객관적으로
보려 하지 않고
미운 사람을 덜 미워하려 애쓰지 않을 테다
난 편하게 살고 싶으니까.
나한테 제일 미운 사람은 남편이다.
바람둥이 남편을 만난 덕에 속이
새까맣게 타버렸다.
그러고 보니
어제 만난 검은 사내는 어쩌면
새까맣게 타버린 내 마음속에
숯검댕이 요정일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누구냐 넌.
바람둥이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도 해보았다.
내가 남편의 엄마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불쌍하고
측은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니 배신자가 불쌍해봤자지.
유책배우자일 뿐 내가
해탈하지 않는 이상 더는 이해할 수 없었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이해하고 살련다.
그게 내 방식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인터넷으로 <귀신>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여태까지는 이해가 안 되고
믿어지지도 않는 귀신이었지만
내가 뭔가를 본이상 그게 무언지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