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장미꽃을 보내줘요

이토록 아름다운, 당신의 그늘 #1

by 디더블유비


죽음에 대해 가끔 생각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은연중에 한 번씩.


내 죽음은 어떤 형태일까. 삶의 끝이란 무슨 기분일까. 언제나처럼 배경은 장례식장. 울거나 무표정으로 나를 애도하는 사람들. 흰 국화와 검은 조의. 염을 치른 후 장막 뒤에 가만히 누워있는 나. 그러고 보면 난 국화꽃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사방을 둘러봐도 흰 꽃뿐이다.


아끼는 이들에게 그래서 한 번씩, 잘 씹어 삼킨 밥을 목구멍으로 넘기듯 쉬이 말했었다. 나는 장미꽃을 좋아해. 이왕이면 붉은색. 내가 죽는다면 흰 국화가 아닌 붉은 장미가 가득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해줄 거지?


당시 나는 이게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슬픔과 상처를 일으키는지 몰랐다. 내게 있어 죽음은 뭐랄까, 로또에 당첨되면 무얼 할 거야?라고 묻는 정도의 일상 같은 상상이었기에. 그다지 심각하지도 않은, 미지근한 물 정도의 감정.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친구는 화를 냈고, 어떤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때면 나는 상대에 맞춰 반응을 달리했다. 화를 내는 친구에겐 슬쩍 웃으며 장난이라 얼버무렸고, 고개를 끄덕여준 친구들은 가만히 바라봤다. 기억하려는 듯 좁아지는 미간이 좋아서, 슬쩍 웃었다.


구태여 생각해 보면 화를 내든, 웃어넘기든 뭐든 좋았다. 사실 어떤 반응을 보이든 나는 계속해서 그들을 사랑했을 테니까. 그 반응들 하나하나를 나는 눈에, 몸에, 기억에 천천히 새겼다. 언젠가 정말 그날이 온다면, 기꺼이 나를 위해 국화가 아닌 장미꽃을 가져다줄 사람들. 그들이 나를 위해 울지 않았으면. 내 장례식장은 붉은 장미에 둘러싸여 눈물 한 방울 없이 지나갔으면.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건, 사실 이 생각조차 남들과 다르고 싶은 갈망이 저 밑바닥에 찰랑거렸다는 걸 분명히 하고 싶어서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꽤나 어릴 적부터, 나는 내가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예체능에 한해서였으나 이에 꽤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 있었다.


초등학교 무렵 나갔던 사생 대회였다. 아마 유채꽃 사생대회였던 걸로 기억한다. 시간이 꽤나 길었던 대회(를 빙자한 나들이 사생대회)였고 그다지 그리고 싶은 게 없었다. 친구들이나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유채꽃을 그리거나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다. 당시 나는 그들과 똑같은 걸 그리는 게 아주 지루한 일이라 생각했기에, 비누 방울 놀이를 하는 아이들만 하염없이 구경했었다. 그러다 문득, 비누 방울에 비친 유채꽃을 그리면 재미있겠다, 싶어 열심히 스케치를 했다.


이때 돌아다니던 대회 관계자들이 내 스케치를 굉장히 흥미로워했는데, 학교와 이름을 묻고, 보는 시선이 남다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을 심사위원이자 화가라 소개한 사람들은 나를 영재 보듯 바라봤다.


그 시선에 나는 우쭐해져서, 거봐. 나는 저런 평범한 애들과는 다르다고. 하며 속으로 한참을 웃었다. 옆에 앉아 나를 대견스러워하는 엄마의 얼굴도 좋았다. 그 특별함에 대한 만족감, 열망. 나를 바라보는 관계자들의 눈빛, 기대감. 그게 그리도 기뻐 더 열심히 그렸다.


우습게도 당시 미술을 제대로 배워본 적 없는 나는 채색엔 별다른 재능이 없었다. 대회가 끝날 때쯤 다시 나를 찾은 관계자들은 내 그림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기죽지 않았다. 채색 정도야 지금은 서툴러도 배우면 금방 그들을 뛰어넘을 거란 확신이 있어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과 당당함인지. 삶에 치이고 깎여온 나는 그때의 내가 조금은 그리워진다.


그림은 운 좋게 작은 상을 탔던 것 같다. 비슷한 일로 중학교 때 수업 농땡이를 부리고 싶은 마음에 도서관에서 개최한 백일장을 나갔었다. 조용한 곳에 학생들이 쪼르륵 모여 쓰느라 여념이 없을 때 나는 구석에서 연필만 굴렸다. 주제가 세 가지 정도 되었는데, 쓰고 싶은 것도 없고 글 감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대충 끄적이는 건 성미에 맞지도 않았고, 그저 책상에 엎어져 시간만 보냈다. 변명하자면 노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뭐랄까, 나는 그림에서와 마찬가지로 팟, 하고 떠오르는 일종의 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익숙한 방식이기도 했고, 그렇게 진행된 일이 나를 실망시킨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여유로웠다.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드디어 그분(?)이 내게 강림했고, 나는 그대로 시 한 편을 뚝딱 완성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고, 후회도 없었다. 내 시에 내가 만족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렇게 탄생한 내 시는 장원이라는, 1등의 영광을 얻었다. 내 시가 3절 종이에 프린트되어 액자에 걸렸다. 나는 수시로 도서관을 드나들며 전시된 내 시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면서 또 혼자 만족해했다. 그것 보라고. 나는 남들과 다른 어떤 감각이 있다고. 영감이 있다고.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고. 특별하다고.


돌이켜보면, 나는 이때 쓴 맛을 봤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조금이라도 배웠어야 했다. 환상에 사로잡힌 어린아이. 몸만 자란 어른아이. 돌고 돌아 나는 미대 진학에 성공했지만, 그쯤부터 부서지는 환상을 어떻게든 잡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다. 고통의 시작이었다.


나는 작은 소도시에서 자라왔고, 그 너머에 늘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예쁜 조경 수조 같은 고향을 떠나 더 넓은 세상을 열망했다. 그곳에 가면 나를 알아봐 주는 이들이 더 많으리. 나는 분명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거야.


내 환상과 달리, 세상은 넓었고 서울은 컸다. 사람도 무지하게 많았고 모두가 치열했다. 보고 있으면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나는 순풍 속을 항해하는 배처럼 나를 칭찬해 주는 사람들 속에 둘러 쌓여 살다가, 처음으로 호되게 혼났다. 고3 현역 미술 입시에서 다 떨어진 것도 충격이었지만, 서울에 상경해 재수를 하는 동안 선생님으로부터 찢기고 밟히는 내 그림이 나처럼 느껴졌다.


이제 갓 입시를 시작한 친구가 나보다 잘 그렸다. 담당 선생님은 그 친구를 시종일관 칭찬했다. 색도 잘 쓰고, 음영도 잘 깔고. 마치 천재라도 보는 양 그 친구를 추켜세웠다. 그럴 때면 나는, 혀를 콱 씹어버리고 싶어졌다. 분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 꼭 그만큼 초라해졌다.


하나 둘이 아니었다. 잘 그리는 친구들이 정말, 정말이지 까무러치도록 많았다. 나는 그쯤 내가 작은 섬에서 살다 온 건 아닐까 싶었다. 내가 만든 섬. 내가 만든 환상. 정말이지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특별함을 평생 갈망하고 원하고 받아왔다. 그런 내가 평범한 축에 속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환상이란 그래서 무섭다.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걸 받아들이는데 자그마치 10년이 걸렸다.


고통이 더 이상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 나는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무기력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 무엇이든 결과물을 내면 환호와 사랑이 쏟아져 내릴 거라 생각했던 순수한 나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어서, 볕 좋은 어느 날 나는 아이 같은 나를 죽였다.


눈물도 안 났다. 매일 같이 느껴지던 이질감이 더욱 실감 날 뿐. 나는 한 번도 세상에 발붙여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내 몸엔 늘 풍선이 여러 개 묶여 있었고, 언제나 바닥에서 한 발 위 허공에 둥둥 떠다녔다. 그 끈이 다 잘리고 나서야, 나는 쓰러지듯 찬 바닥에 떨어져 몸을 웅크렸다.


제대로 바라본 현실은 내게 너무나 썼다. 쓰기만 할까, 나는 커다란 수조에 호흡기 없이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차갑고 시렸다. 내가 벌어야 하는 돈, 내가 써왔던 돈, 현실적으로 내가 살아가기 위해 해내야 하는 일들이 파도처럼 나를 집어삼켰다. 정말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편으론 이런 현실에서 계속 눈을 돌릴 수 있게 해 준 이들에게 가슴이 저리도록 감사했다. 그들이 나 대신 짊어진 현실의 쓴맛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그제야 한참을 울었다. 그 사랑과 애정이 숨 쉴 틈 없이 내게 몰아쳤다. 나는 허둥거렸다. 갚아내야 한다는 부채감과, 평생 갚지 못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자꾸만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그 사랑의 바다에 익사할 것 같았다.


친구들은 내게 배부른 소리라 했다. 다 여력이 되니까 도와주는 거고, 그러니 받을 수 있을 때 받아 두라고. 천천히 갚아 나가면 된다고. 근데 나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나는 그 끝없는 사랑의 바다에 계속해서 가라앉고 있었다. 끝도 없고, 넘을 수도 없고, 퍼낼 수도 없는, 그 폭풍우 같은 사랑이 숨찼다. 정확히 그쯤, 나는 나를 아는 모두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한 달만. 딱, 한 달만.


그럼에도 나는 도망칠 수가 없었다. 기르는 강아지가 제 주인을 닮아 예민했고, 연락 두절이 되면 놀랄 사람이 태반이며, 일일이 설명하자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상담을 받으며 선생님에게 도망가고 싶어요.라고 웅얼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그것밖에 없었다. 나는, 자꾸만 도망치고 싶었다. 이 현실로부터, 이 사랑으로부터, 이 막연한 믿음과 기대, 그리고 아직도 내 안의 특별함을 믿는 나로부터.


선생님은 내게 무엇을 가장 하고 싶냐 물었다. 나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앞인지 뒤인지 옆인지, 분간이 하나도 되질 않아서 그저 바닥만 바라봤다. 지금껏 오롯이 제 힘으로 이뤄온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밧줄처럼 꼬여 목을 졸랐다. 그럼 나는 더듬더듬, 아무것도 없는 목만 매만지는 것이다.


자꾸만 숨이 찼다. 가슴이 쿵쿵 뛰어 대면 불안감에 나는 몸을 웅크려 바닥에 납작하게 붙였다. 작은 거북이처럼 엎드려있다 보면 진정되는 마음과는 별개로 눈물이 줄줄 흘러 바닥에 고였다. 그게 또 스스로 혐오스럽고 한심해서, 질질 짜고 훌쩍거리는 내가 꼴 보기 싫어서 또 울었다.


돌이켜보니 참으로 지난하고도 꼭 안아주고 싶었던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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