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n Mar 16. 2022

수천 번의 입맞춤보다도   더 달콤한 '커피'

요한 세바스찬 바흐. 커피 칸타타

최근 대한민국에 커피 열풍이 거세다. 한 손에 일회용 커피잔을 들고 다니는 모습은 일상이 되었고, 골목골목마다 개성 넘치는 커피숍도 즐비하다. 커피의 종류도 아메리카노·스페셜티 커피·카페라떼·아인슈페너·카페모카 등등 매우 다양하다. 커피 맛 그 자체를 즐기고, 담소를 나누며 여가를 보내기도 하고, 전시와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단순한 음료를 넘어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문화가 되었다.


음악 중에 커피에 관련된 곡들이 있다. 대중음악에서는 미국의 혼성 그룹, 맨해튼 트랜스퍼(Manhattan Transfer)의 Java Jive(자바 자이브)가 있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 작품에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J. C. Bach, 16851750)의 〈커피 칸타타〉(Kaffee Kantate)가 있다. 아마도 이 곡이 커피를 주제로 한 유일한 곡이 아닐까 생각한다.


"잡담은 그만하고, 조용히 해 주세요!"

(Schweigt stille, plaudert nicht BWV 211)


라이프치히, 침머만 카페


〈커피 칸타타〉는 바흐가 라이프치히에서 성 토마스 교회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던, 1732년 침머만 카페 하우스의 오픈 기념 음악으로 작곡되었다. 이 곡의 정식 명칭은 〈잡담은 그만하고, 조용히 해 주세요!〉(Schweigt stille, plaudert nicht BWV 211)이다. 장르는 실내악 편성의 반주와 성악가들로 구성된 실내 칸타타(sonata da camera)다. 일명 〈커피 칸타타〉로 불리는 이 곡은 전체 10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은 오페라의 구성처럼 기악 반주에 말하듯 노래하는 레치타티보와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아리아로 극의 상황을 묘사한다. 노래는 독창과 중창으로 편성되어 있다. 대본은 피칸더(picander) 필명으로 활동한 크리스천 프리드리히 헨리키(C. F. Henrici, 1700-1764)가 맡았다.




〈커피 칸타타〉는 무대의상, 무대 장치 그리고 성악가들이 연기는 하지 않지만, 오페라처럼 배역이 있다. 출연자는 해설자(테너), 딸 리스헨(Liesgen 소프라노)과 아빠 슐레드리안(Schlendrian 베이스), 총 3명이다.〈커피 칸타타〉의 드라마는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하는 아빠와 어떻게든 커피를 마시려는 딸이 옥신각신하는 내용이다. 그럼 이들의 대화를 들어보자.


침머만의 커피하우스에 손님들이 가득하다. 해설자라고 해야 할지, 사회자라고 해야 할지 한 남자(테너)가 등장해서 손님들을 향해 ‘말’(제1곡 레치타티보)을 한다.

 

“자, 잡담은 그만하고, 조용히 해 주세요. 지금부터 어떤 일이 벌어지는 잘 들어보세요. 자, 보기에도 근엄한 슐렌드리안이 나옵니다. 자신의 딸 리스헨의 목덜미를 움켜쥔 그 기세가 마치 벌집을 거머쥔 곰 같네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자 직접 들어보세요.”

 

아빠 슐렌드리안이 말을 듣지 않는 딸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노래’한다(제2곡 아리아).

 

“자식은 근심 덩어리야. 매일 내가 하는 말을 저 애는 한쪽 귀로 듣고 또 한쪽 귀로 흘려버리지” 자식이 머리가 커지면 부모의 말은 안 듣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빠와 딸의 대화 내용은 이렇다(제3곡 레치타티보). 


“이 고약하고 말괄량이야, 언제 철들어 내 말대로 커피를 마시지 않을래.”

“아빠,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저는 하루에 3번 커피를 마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괴로워서 바짝 마른고기처럼 비틀어질 거예요”


딸 리스헨이 자신이 커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노래한다(제4곡 아리아).


“아! 커피 맛은 정말 기막혀요. 수천 번의 입맞춤보다도 더 달콤하고, 맛 좋은 포도주보다도 더 부드러워요. 커피, 커피를 난 마셔야 해요. 내게 즐거움을 주려거든 커피 한 잔을 따라줘요!”


이 정도면 커피 중독 아니 카페인 중독이라고 해야 하나!


아빠는 말이 통하지 않자, 딸을 겁박한다. 그러나 딸도 만만치 않다(제5곡 레치타티보).


“너, 커피 안 끊으면 결혼 축하연이고 산책이고 못 갈 줄 알아!”

“상관없어요. 그럼 커피 마셔도 되죠!”

“말 안 들을래, 요즘 유행하는 스커트도 안 사준다!”

“그것도 참을 수 있어요.”

“그럼 창밖 풍경도 못 보고 한다.”

“커피만 마실 수 있으면 그것도 참을 수 있어요.”

“이제 보석이며 장신구도 모자에 달아주지 않겠어.”

“네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것만 뺏지 마세요.”

“못된 것 같으니,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거냐?”


아빠는 고집스러운 딸에 단단히 화가 나 있다. 한편으로는 딸을 설득하려는 아빠의 모습이 안쓰럽다.  

아빠는 혼잣말로 노래한다(제6곡 아리아).


“고집이 센 여자들은 쉽게 꺾이지 않는 법, 하지만 약점을 알면 어려운 문제도 아니지”


아빠가 딸의 고집을 꺾기 위해 내놓은 해결책이 무엇일까?

아빠와 딸이 대화를 들어보자(제7곡 레치타티보).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무슨 말이든 좋지만 커피 얘기는 하지 마세요.”

“평생 결혼을 못 해도 좋을지 잘 생각해 보렴”

“아! 결혼을 못 한다고요!”

“그래. 허락하지 않겠다.” 아빠의 최후통첩이다.

딸은 말한다. “커피를 끊지 않으면 말인가요. 아아, 그럼 커피하고 이제 이별인가! 아빠, 이제 커피를 마시지 않겠어요.” 딸의 약점이 결혼이었다니 반전이다. 아빠는 “좋은 신랑을 구해주겠다.”라고 말한다.


딸 리스헨은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제8곡 아리아).


“그렇다면 아빠 오늘 당장 그렇게 해 주세요. 아! 신랑을 갖게 되다니! 정말이지. 너무나도 멋진 일이 될 거야! 커피 대신 신랑을 가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아빠의 뜻대로 되는 듯하다. 때마침 해설자가 등장해서 상황을 정리한다(제9곡 레치타티보). 


“이렇게 해서 아빠 슐렌드리안은 딸 리스헨을 위해 지체 없이 신랑감을 구하러 갑니다. 하지만 리스헨은 혼자 중얼중얼거립니다.” 그 혼잣말을 들어보니 이렇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셔도 좋다는 남자에게 다짐을 받은 후에, 결혼 서약서에도 한 구절 써야지.”


어쩐지 딸이 너무 쉽게 물러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신랑을 구하고 있을 아빠의 모습이 웃기면서 슬프다. 만약 〈커피 칸타타〉가 아빠의 뜻대로 끝났다면, 이 작품을 의뢰한 커피 하우스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쾌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커피가 다이어트에 좋고, 항산화 작용·항염·항암 작용에 좋다고 하거나 모든 사람이 커피를 마셔야 한다고 노래해도 부족한 판에 말이다.


커피 하우스 주인장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아빠 슐렌드리안와 딸 리스헨, 해설자가 다 같이 커피를 마시는 것은 자유라고 노래한다(제10곡 3중창). 


“고양이가 어찌 쥐 잡는 일을 그만둘 수 있나요! 아직도 노처녀들은 커피만 보면 사족을 못 쓰고 몰려들지요. 어머니도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고, 할머니도 커피를 마셨었는데 딸이 커피 마신다고 누가 나무랄 수 있을까?”




이렇게 마지막 3중창으로 커피 칸타타는 마친다. 18세기 독일 라이프치히의 커피 열풍(?)은 현재의 대한민국 모습과 닮아 있는 듯하다. 물론 아빠 슐렌드리안처럼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하거나, 리스헨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Dona nobis pac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