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마리아〉로 알려진 이 곡은 본래 바흐(J. S. Bach 1685~1750)의 《클라비어 평균율 곡집》(The Well-Tempered Clavier) 중 〈전주곡 1번 다장조〉(Prelude No. 1 in C major, BWV 846, 1722)에 구노가 선율을 붙여 만든 기악곡이다. ♫
바흐, 《클라비어 평균율 곡집》전주곡 1번
그러나 정작 이 곡이 세상에 빛을 보게 한 인물은 구노의 장인, 피에르 치머만(P. Zimmermann, 1785~1853)이었다. 멘델스존(1809~1847)의 누나, 파니 멘델스존(F. Mendelssohn, 1805~1847)을 통해 바흐의 건반 음악 작품을 알게 된 구노는 바흐의 건반 음악 중 《클라비어 평균율 곡집》 1권의 〈전주곡 1번〉에 즉흥적으로 곡을 붙였다. 구노의 이 즉흥적인 선율을 당시 음악 교사이자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던 치머만이 받아 적었다. 그리고 1853년 치머만은 《선택적 오르간 혹은 제2 첼로로 반주 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독주 혹은 첼로를 위한 바흐의 제1번 피아노 전주곡에 의한 명상곡》(Méditation sur le 1er prélude de piano de S. Bach, composée pour piano et violon solo ou violoncelle avec acc. d’orgue ou d’un 2d violoncelle adlib.)이라는 기악곡으로 파리에서 출판했다. ♫
바흐의 제1번 피아노 전주곡에 의한 명상곡
이 《명상곡》을 출판한 그해, 구노는 이 기악곡에 알퐁스 드 라마르틴(Alphonse de Lamartine 1790~1869)의 시, <인생이라는 책>(Le livre de la vie, 영, The Book of Life)의 노랫말을 붙여 출판하였다. 시는 인생을 은유적으로 책과 비유한다. 시의 내용은 우울하다. 이 시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찾으려 애써 보지만, 그러기에는 구노의 선율이 너무 슬프다.♡
Le livre de la vie est le livre suprême
인생은 궁극의 책과 같아서
Qu'on ne peut ni fermer, ni ouvrir à son choix;
원한다고 닫을 수도 열 수도 없네;
Le passage attachant ne š'y lit pas deux fois,
즐거웠던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Mais le feuillet fatal se tourne de lui-même;
치명적인 운명은 반복되네;
On voudrait revenir à la page où l’on aime,
당신은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Et la page où l'on meurt est déjà sous vos doigts
이미 지나간 그 시절은 영영 돌아오지 않네.
조만간 “아베 마리아” 기도문을 대신해서 라마르틴의 “인생이라는 책”의 노랫말 버전의 음악을 다시 복원하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라마르틴의 시는 현재, 프랑스계 벨기에 출신의 아리얀(Marc Aryan, 1926~1985)의 샹송 〈인생이라는 책〉(Le livre de la vie)으로 들을 수 있다. 이 곡은 첫 4행은 ‘낭송’하고 마지막 2행 “On voudrait revenir à la page où l’on aime, Et la page où l'on meurt est déjà sous vos doigts”(당신은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이미 지나 간 그 시절은 영영 돌아오지 않네.)은 ‘노래’한다. 후렴구와 같은 이 짧은 선율은 구노의 것보다 더 애절하다. ♫
가사의 우울함 때문이었을까! 구노는 1859년 성모 마리아 기도문으로 가사를 바꾼다. 이로써 세속적인 곡이 졸지에 기독교 성가곡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아베 마리아」로 가사가 바뀌면서 이 곡은 이전보다 더 유명세를 탔다.
샤를-프랑수아 구노, 1818~1893
1829년 멘델스존의 지휘로 바흐의 〈마태 수난곡〉(1727)이 다시 연주되면서, 잊혀졌던 바흐가 19세기 서유럽 음악계에 다시 조명을 받게 된다. 그의 작품과 작곡 방식은 당대의 음악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바흐의 《클라비어 평균율 곡집》 1권의 〈전주곡 1번〉에 대선율을 작곡해 만든 구노의 〈명상곡〉 역시 19세기 바흐 열풍의 소산이었다. 그렇지만 현재, 구노의 <아베 마리아>는 ‘위대한 바흐’를 찬양하기보다는 성가로써 그 위용(威容)을 떨치고 있다. 사제가 되고 싶어 했던 구노의 절절한 기도가 마치 이뤄진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