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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 Mar 26. 2022

죽음의 서사

슈베르트. 현악 4중주 제14번 라단조, D. 810 '죽음과 소녀

프란츠 슈베르트(F. Schubert, 1797-1828)는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일을 예견이라도 하듯이 《현악 4중주 제14번 라단조, 도이치번호.810》 ‘죽음과 소녀’(String Quartet No.14 in d minor, D. 810 Death and the Maiden, 1824)를 작곡했다. 죽음을 예견하고 곡을 썼다는 것이 신빙성을 떨어지지만, 이후 슈베르트는 장티푸스로 인해 31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사실 이 작품의 제목은 1817년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M. Claudius, 1740-1815)의 시 「죽음과 소녀」에 곡을 붙여 작곡한 가곡 〈죽음과 소녀〉(Der Tod und das Mädchen. D.531)에서 선율을 차용한 데서 유래했다.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M. Claudius, 1740-1815)


작곡가는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선율과 리듬을 창안하고, 조성과 화성을 고르고, 전개 방식을 구상하고, 악기는 이야기의 전달자가 된다. 그래서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를 구성하는 모든 음악적 소재는 죽음과 소녀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 강렬한 표제는 감상자에게 감상의  틀(frame)이 된다.


《현악 4중주 제14번 라단조, 도이치번호.810》 ‘죽음과 소녀’


1악장 빠르게(Allegro)는 ‘죽음의 서막’이다. 악장의 첫 시작 14마디는 1악장 전체를 함축하는 두 개의 악상을 제시한다. 즉, 강력한 죽음의 악상과 죽음을 대하는 슬픔의 악상이 제시된다. 1악장 전체를 관통하는 불안과 초조, 슬픔의 추상적인 감정은 이 두 악상을 통해 구현된다. 죽음의 서막은 소나타 형식에 힘입어 전개된다. 그러나 이 형식은 작곡가가 표현하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방식일 뿐, 작곡과 감상의 주체가 아니다. 


2악장 느리고 활기 있게(Andante con moto)는 ‘죽음의 사신’이라고 붙였다. 가곡 〈죽음과 소녀〉는 소녀와 죽음의 대화로 진행된다. ‘소녀’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죽음’은 소녀를 죽음의 안락함을 말하며 유혹한다. 슈베르트는 현악 4중주 2악장에 가곡의 피아노 반주와 죽음이 부르는 노래 선율을 차용했다. 음악은 장례 행렬이 연상된다. 2악장은 주제와 변주(Theme & Variation)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주제(Theme)는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 부분은 가곡의 피아노 반주인 장례 행렬 리듬과 우울한 선율을 인용한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은 장례 행렬 리듬을 그대로 차용하지만, 선율은 밝다. 두 개의 주선율을 기초해서 5번을 변주한다(Variations). 2악장의 악상 기호 중 ‘활기 있게’(con moto)라는 나타냄말이 적용되는 부분이다. 제1변주는 바이올린이 주제 선율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제2변주는 첼로에서 주선율을 노래한다. 제3변주는 말 달리는 리듬(갤럽, gallop)이 전체를 이끈다. 마치 죽음의 사신이 말을 타고 맹렬하게 달려오는 것 같다. 제4변주는 5개의 변주 중 가장 밝고 화려하다.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에서 주제 선율을 연주하지만, 음악적으로 깊은 인상을 주는 악기는 제1바이올린이다. 마지막 제5변주는 제2바이올린에서 주제가 제시되고, 제1바이올린은 트레몰로 주법으로 선율을 변주한다. 그리고 다시 주제 선율이 제시되면서 악장이 마무리된다.


3악장 스케르초, 몹시 빠르게(Scherzo. Allegro molto)는 ‘죽음의 유회’다. 악장은 스케르초-트리오-스케르초의 구조로 짜였다. 스케르초는 돌발적인 리듬(당김음)과 강세(fz, 스포르찬도), 레가토와 스타카토 연주 기법의 대비, 크고 작은 소리의 대비가 두드려진다. 트리오는 서정적이지만, 냉소적이다. 


4악장 매우 빠르게(Presto)는 죽음의 춤판과 줄행랑이다. 죽음의 사신이 타란텔라의 강렬한 리듬을 타고 죽음의 춤판을 벌인다. 그러나 타란텔라의 춤은 죽음을 물리치기 위한 춤이다. 악장의 후반부에 갑자기 빨라지는 부분, 프레스토보다 더 빠르게(prestissimo, 프레스티시모)에서 죽음의 사신은 결국 줄행랑을 친다. 




슈베르트의 음악적 묘사, 죽음의 서사의 끝은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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