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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 Apr 01. 2022

왜 그랬을까?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9번

왜 그랬을까? 교향곡 9번의 저주에서 벗어나려 했다면 끝까지 쓰지 말지! 베토벤, 브루크너, 드보르자크처럼 말러(G. Mahler, 1860-1911) 역시 〈교향곡 9번 라장조〉(Symphony No. 9 in D Major)가 최후의 작품이 되었다. 9번째 교향곡 작곡을 앞두고 있던 말러에게 평생 따라다녔던 죽음의 트라우마가 더욱 강하게 다가왔을 던 모양이다. 말러는 교향적 성악곡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 1909)를 작곡하고도 교향곡 9번이라고 명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명이었을까, 말러는 다시 펜을 잡았고, 1910년에 〈교향곡 9번 라장조〉를 완성했다. 그리고 1년 후 말러는 지상의 비극적인 삶에서 벗어나 천상으로 돌아갔다. 초연은 보지 못했다. 알반 베르크(1885-1935)는 교향곡 9번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죽음에 대한 예언에 근거한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당시 심장병을 앓고 있었던 말러에서 쇠약해져 가는 자신을 보며 죽음을 예견했을지도 모르겠다.  


〈교향곡 9번〉은 4관의 오케스트라 편성이 말해 주듯이 장대한 곡이다. 연주 시간은 대략 80여분 된다. 악장 구성은 4악장의 전통적인 교향곡 양식을 따른다. 그러나 빠른 템포의 1악장과 4악장을 느린 템포로 작곡함으로써 관습을 깼다.


전통적으로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1악장은 교향곡 전체의 성격을 좌우하거나 청중을 음악회에 집중하게 한다. 그러나 말러는 이러한 1악장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자신의 서술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1악장 보통 느리게(Andante comodo)의 음악은 웅장하지만 무겁다. 현대음악의 창시자 아르놀트 쇤베르크(1874-1951)가 〈교향곡 9번〉은 인간의 삶,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 내세에 대한 가능성에 대한 사고에서 기원한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초연함과 숭고함이라는 단어가 머리에서 맴돈다. 죽음을 예견하는 상징적인 장치는 충분해 보인다. 예를 들어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은 주저하는 첼로 연주에서 말러의 불규칙한 심장박동을 표현한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1악장의 시작, 베토벤(1770-1827)의 〈피아노 소나타 26번 내림마장조〉 “고별” 1악장 서주(Adagio)와 닮았다. 그리고 곡 중 승리의 세리머니와 같은 금관악기와 타악기의 팡파르는 번번이 크라이맥스에 도달하지 못한다. 1악장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말러의 사고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주시하게 한다.   


2악장 여유 있는 렌틀러의 속도로. 약간 걷는 속도로 아주 거칠게(Im Tempo eines gemächlichen Ländlers. Etwas täppisch und sehr derb)에서 말러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어린 시절에 광장과 거리에서 듣던 음악들은 말러의 음악을 특징짓는 중요한 소재였다. 2악장은 기억의 조각을 펼쳐 놓듯이 단편적인 악상들이 연속된다. 음악의 흐름에 오스트리아의 민속춤, 렌틀러가 중심에 있다. 작품 전체에서 렌틀러는 속도의 변화와 분위기를 바꿔가며 기억의 퍼즐을 맞춰나간다. 마치 거리에서 본 다양한 광경을 표현하듯 말이다. 악곡에서 왈츠는 빈 스타일의 유희적 성격이라기보다는 풍자의 대상이다. 2악장은 휘파람을 연상시키는 피콜로의 짧은 연주로 끝난다.


3악장 론도-부를레스케. 아주 빠르게. 매우 고집스럽게(Rondo-Burleske. Allegro assai. Sehr trozig)는 주고받는 방식의 푸가 기법으로 인해 강력한 긴장감을 준다. ‘익살스럽게’를 의미하는 부를레스케의 음악적 표현은 유머러스한 짧은 선율과 그 조합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독특한 음향’(Burleske), 피콜로 클라리넷(E-flat)의 ‘돌발적인 출현’(Burleske) 그리고 악곡의 중간 부분의 서정적인 분위기로 ‘갑작스러운 전환’(Burleske)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Burleske) 2악장의 끝마침에서 그렇다.  


4악장 매우 느리게, 주저하듯이(Adagio. Sehr langsam und noch zurückhaltend)는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슬픔의 노래다.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첫 두 마디의 슬픈 선율은 4악장 전체를 응축한 것처럼 강렬하다. 이 짧은 선율은 곡 전체에 넓게 펼쳐져 장식되고 확장된다. 4악장은 3악장 론도-부를레스케의 서정적인 중간 단락을 인용했다. 4악장은 현악기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즉, 현악기들의 촘촘한 구성에서 발산되는 깊고 풍부한 울림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바이올린과 독주 바이올린의 고음은 슬픔의 끝에 서 있는 듯하다. 그리고 잔잔한 물결처럼 시작한 현악기들은 거대한 파도가 된다.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목관악기와 금관악기는 또 다른 애가이다. 죽음을 예견한 1악장, 어린 시절의 회상한 2악장, 풍자적인 블랙코미디와 같은 부를레스케의 3악장과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슬픔의 노래 4악장! 〈교향곡 9번〉 전체는 마지막 4악장 종결부와 함께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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