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바로크 시대의 헨리 퍼셀 이후 프랑스나 독일, 이탈리아에 비해 음악 문화를 주도하지 못했다. 19세기 말, 본 윌리엄스(R. V. Williams, 1872-1958)를 비롯한 동시대의 영국 작곡가들이 과거의 영광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이들은 영국 민요나 기독교 성가집을 다시 편찬하고, 작곡의 소재로 사용하였다.
본 윌리엄스의 〈토머스 탤리스의 주제에 의한 환상곡〉(Fantasia on a Theme by Thomas Tallis)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기인한다. 토머스 탤리스(Thomas Tallis, 1510–1585)는 영국 출신 중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평가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 합창곡의 부흥을 이끌었던 뛰어난 작곡가였다. 윌리엄스는 탤리스의 9개의 시편송으로 구성된 《영국 성가집》(English Psalter, 1567) 중 세 번째 시편송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Why fum'th in sight: the Gentiles spite, In fury raging stout?)의 선율을 차용해서 1910년에 〈토머스 탤리스의 주제에 의한 환상곡〉을 작곡했다. 이 작품으로 윌리엄스는 영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다.♫
토머스 탤리스, 1510–1585 본 윌리엄스, 1872-1958
〈토머스 탤리스의 주제에 의한 환상곡〉은 고요하고 경건하다. 마치 현악 오케스트라로 노래하는 성가처럼 말이다. 차용한 탤리스의 시편송은 전체 악곡에 넓게 펼쳐져 있다. 서주 후, 첼로 파트에서 연주하는 선율이 탤리스의 것이다. 탤리스의 주제 선율은 계속해서 변주된다. 그러나 원곡의 빠르고 장중한 분위기는 느리고 서정적인 분위기로 바꿔서 곡을 구성했다. 윌리엄스는 르네상스 시대 합창의 특성을 실연하기 위해 복합창(poly chorale) 기법을 활용한다. 복합창은 합창단을 두 그룹으로 나눠서 노래하는 르네상스 방식으로, 오디오 개념으로 말하면 입체적으로 들리는 서라운드 방식과 같다. 윌리엄스의 〈토머스 탤리스의 주제에 의한 환상곡〉의 구성은 8중주의 작은 현악 앙상블과 두 그룹의 현악 오케스트라로 나뉘었다. 그래서 음악은 성당의 음향을 재현한 듯 풍부하고 밀도 있는 울림이 지배적이다. 간헐적으로 출현하는 독주와 중주 역시 음악의 흐름을 깨지 않는다. 또한, 현악기의 하모닉스와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을 함께 연주해 성당의 오르간 소리를 만들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