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인생사진은 국밥집에서
나의 국밥 사랑은 여자 친구와 있을 때도 주체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 사랑처럼 달랐다. 그녀는 나와 달리 국밥은 물론 한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아이스크림, 케이크, 아이스크림 케이크, 초콜릿 등 그 위험하다는 단 것. 그 밖에 좋아하는 건 더 단 것이었다. 거기서 십분 양보해도 양식, 일식을 조금 더 선호했다.
이런 사람에게 국밥을 같이 가자고 하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식당의 깔끔함이 최우선이었던 그녀에게 국밥집이란 가까이 있지만 데이트 장소로는 어디 판타지 소설 속 한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국밥집이 물론 깔끔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여기서의 깔끔함은 청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카페와 같이 산뜻하고 현대식의 인테리어 그런 미묘한 것을 뜻한다. 여기서 청결도를 떠올린다면 여자친구 공감도 퀴즈에서 낙제점을 받지 않을까?
여자친구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가 좋아하는 국밥집은 점점 멀어져야만 하는 곳이 되었고 혼자만 즐길 수 있는 그 무엇이 되고 말았다. 소심하게 여자친구가 아무거나 먹자고 했을 때 국밥집을 열렬히 주장해 봤자 “그것 말고”라는 새침한 답변만 무수히 받았다. 어쩌다 한번 국밥집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나는 아주 고심해야만 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이 여자와는 내가 좋아하는 국밥을 평생 먹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내 뇌리에 스쳤다.
중대한 기로에서 과연 어떤 국밥집을 가야 하는가? 일단 아재 감성의 흔한 국밥집을 가면 다시는 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분비는 시장도 제외. 향이 강한 찐한 국물보다는 맑은 국물의 국밥으로 반찬은 신선하고 익은 김치보다는 그녀가 좋아하는 겉절이가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내가 선정한 곳은 햇살이 잘 들어오는 길가에 있고 정갈한 반찬과 깔끔한 국밥이 있는 곳. 바로 내 모교 근처에 국밥집을 선정했다.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여자친구와 그 국밥집으로 향했다.
마침내 여러 가지 반찬이 나오고 두 그릇에 국밥이 가지런히 놓였다. 여자친구는 확고한 편식쟁이다. 마늘과 양파는 절대 먹지 않아 그것들은 모두 나의 차지였지만 의외로 부추를 좋아했다. 한 닢 한 닢 젓가락으로 집어 오물거리며 맛있어했고 국밥의 고슬고슬한 밥과 야들야들한 고기보다는 맑고 깔끔한 국물을 좋아했다. 그녀는 국밥에 모든 것을 좋아하기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국밥집을 가자고 했을 때 그 국밥집은 언제나 오케이였다.
나는 예술적 감각이 거의 없는 사람으로 사진을 엄청 못 찍는 사람이다. 식당에서 음식이 나올 때 빨리 먹고 싶어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때는 하늘이 도왔던 것일까? 나의 요청으로 또 국밥을 먹으러 간 날,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국밥집의 창가 자리에서 여자 친구의 인생사진을 건졌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양손에 각기 들고 밝게 웃으며 국밥 앞에서 찍은 사진. 그 사진은 감격스럽게도 그녀의 프사로 선정되었다.
더 놀라운 사실을 말해주자면 그 해 크리스마스 데이트 코스의 식당으로 무수한 곳을 제치고 그 국밥집이 선정되었다. 눈 오는 크리스마스에 먹는 따뜻한 국밥 한 그릇과 여자친구라니 이 얼마나 놀랍고 신비로운 일인가? 국밥은 단거, 더 단거를 외치던 그녀도 한 번쯤 다시 찾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국밥은 당신도 모르게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