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가성비 갑
회사에 취직하고 내가 모시던 상사는 이전 직장에서 영업으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평사원이 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라갔고 영업으로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상은 다 휩쓰셨다. 그분은 부하직원들과의 소통을 위하여 1주일에 한 번씩은 밥이나 술을 꼭 사주셨고 메뉴 선정에 있어서 확고한 기준이 있으셨다.
그분은 30년 넘게 영업을 하시면서 고객을 상대함에 있어서 본인만의 철학과 전문성을 가지고 계셨는데 식당을 가더라도 예사로 가지 않으셨다. 그분 왈 '회사에 예산이라는 것은 아무리 많더라도 한정적이고 비싼 것을 산다 하더라도 고객은 그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하셨다. 모름지기 식당은 값이 저렴하여 고객이 맘 편히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지만 마냥 저렴하기만 해서는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없으니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맛있고 푸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단 세 글자로 함축하면 ‘가성비’. 이 가성비가 갑인 곳이 좋은 식당이고 좋은 음식이라는 것이다.
그분이 영업을 할 때 많은 음식점들을 알아보고 다니셨고 나와 같이 일하실 때도 주변에 물어보기와 찾아보기를 멈추지 않으셨다. 그 결과 인당 단돈 만원 이내의 식당들을 많이 알고 계셨고 그곳은 맛과 양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곳이었다. 예를 들자면 멸치쌈밥, 뒷고기 구이 등 이색적이고 흥미가 당기는 식당이었다.
여기서 또 가성비라고 하면 빠질 수 없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국밥이다. 이 분께서도 국밥을 좋아하셨는데 그 분과 먹었던 국밥집은 초기, 중기, 말기로 나눌 수 있었다.
초기에는 내가 흔히 먹어왔던 일반적인 국밥에 가까웠다. 회사사람들에게 유명했던 그곳은 차별화된 진한 국물과 깔끔한 반찬이 인상적인 식당이었다. 상사가 “친절하지 않은 곳은 결국 아무리 맛있어도 고객은 가지 않게 된다.”라고 친절에 대해 말씀하실 정도로 주인아주머니의 친절한 서비스가 있는 곳이었다. 친절함 덕분인지 그 진한 국밥맛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그 가게는 번창해서 확장 이전을 했다. 장사를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잘되는 가게를 이전하는 결단을 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과감히 시도하셔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고 우리도 갔다. 하도 많이 가서 그런지 주인아주머니께서는 예의 그 친절한 멘트와 미소로 우리에게 각각 수건과 떡을 하나도 아닌 2개씩 주셨었다.
중기에는 군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항상 가기만 하면 군인들이 많은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국밥집은 생소한 웨이팅이 있는 곳이었다. 최대한 빨리 출발하여 12시 정각에 가더라도 가게에서 준비한 호패 같은 큰 대기번호를 받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가게 옆의 기차 철로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맛있는 국밥을 기다리곤 했다. 짧지만 배고픔에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흐르고 아주머니의 경쾌한 목소리로 내가 손에 쥔 호패의 번호를 부르면 잽싸게 가게로 들어가 주문을 했다. 기다림 속에 내 앞으로 다가온 그 국밥의 특징은 잘게 썬 돼지고기와 내장들이다. 국밥을 한 숟가락 뜨면 그 작은 조각들과 밥알들이 입안에서 모두 버무려져 풍부한 맛이 우러났다. 또한 가성비라면 꼭 갖춰야 할 양이 그 한 그릇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난 항상 국물까지 다 마시며 마지막까지 국밥의 맛을 즐겼다.
마지막 말기에는 찾기도 어려운 곳에 있는 국밥집이었는데 뭐 이런 곳의 음식점이 있지 할 정도였다. 운전초보였던 나는 거기 주차장에 가기까지 길이 너무 좁아 밥 먹기 전에 스트레스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험난한 산을 고생스럽게 등반하여 산 정상에서 느끼는 뿌듯함을 그 식당에서 느꼈다. 난 솔직히 처음 가는 국밥집에서 첫 국밥을 맞이하면 국물의 본연의 맛을 느껴보기 위하여 밥뿐만 아니라 양념을 아무것도 넣지 않고 국물 한 숟갈을 먹어보고 고기와 함께 한 숟갈 이렇게 순차적으로 먹어본다. 하지만 이 식당은 고객의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고 된장과 마늘 다진 것들이 국밥 안에 들어 있는 채로 나온다. 불만스럽기 그지없는 옵션이 하나도 없는 자동차를 강요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뭐 어떻게 하겠냐는 심정으로 양념을 마구 섞어서 한 숟갈 먹었을 때는 내 기분은 180도 확 바뀌었다. 와 이건 가장 맛있는 조합을 미리 갖춰 놓은 풀옵션의 승용차였다. 이게 제일 맛있으니 이렇게 먹으라는 장인 정신의 맛이라고 할까?
침이 꿀꺽 넘어갈 거 같은 이 국밥들이 바로 8천원이다. 가성비 갑이지만 매력적인 국밥을 과연 거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