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말먹 vs 따먹
국밥에는 다른 음식과 차별화된 이상한 제도가 있다. 나도 처음엔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왜 가격이 차이가 나지?라는 의문을 항상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사소해서 물어보기도 그랬던 이상한 제도. 그것은 바로 ‘따로’라는 제도이다.
다른 음식에도 ‘따로’라는 옵션이 있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거기에 가격에 차이를 두는 것은 단연코 없다. 하지만 국밥집에서 따로국밥을 시키면 가격 차이가 없는 곳도 있지만 단돈 5백 원에서 천 원까지 차이가 나는 곳도 있다. 궁금하지 않은가? 왜 똑같은 국밥과 밥일 텐데 밥만 따로 나온다고 천 원을 더 받는 것이다. 이 천 원은 공깃밥을 한 그릇 더 먹을 수 있는 금액이고 국밥 전체 금액에 10%를 넘게 차지하는 큰돈이다. 그럼 식당 주인들이 괘씸하게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일까?
이것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나름 해봤다. 따로 줌으로써 식당에서 더 비용이 드는 것이 무엇일까? 밥을 따로 준비하고 밥그릇을 설거지하는 공수가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직접 물어보는 것만큼 정확한 것은 없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사장님께 물어봤다. 생각 외로 아주 명확하게 가격의 차이는 절대적인 국밥의 양의 차이로 인한 것이었다.
밥이 국밥에 말아져서 오면 그 밥 양만큼 국밥이 들어가는 양이 줄어들게 되고 밥이 따로 나오게 되면 그 밥 양만큼 국밥이 더 들어가게 되어서 가격의 차이가 나게 된다. 따라서 공깃밥 그릇만큼의 국밥 가격이 천 원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보면 합리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국밥 국물을 더 달라고 하면 공짜여서 그런지 천 원의 가격보다 국밥양이 적어 보이기도 한다. 중국집의 짬뽕밥 같은 존재라고 할까? 짬뽕밥을 시킬 바에야 짬뽕을 시키고 공깃밥을 시켜 먹는 것이 낫다는 이 미묘함이 따로국밥이다.
이렇게 가격의 뿐만 아니라 다른 논란거리도 있다. 그 유명한 탕수육 논쟁과 유사하다. 당신은 부먹파인가? 찍먹파인가? 부먹을 먼저 적었다고 나를 이런 부먹파라고 비난할지도 몰라 밝히는 바이지만 튀김옷의 바삭함을 좋아하는 나는 찍먹파이다. 부먹의 장점도 이야기하자면 양념이 베이고 촉촉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럼 국밥의 따먹과 말먹도 이런 논란이 있을까?
국밥에도 이런 논쟁이 있다면 재밌겠지만 아쉽게도 들어본 적이 없다. 탕수육은 같이 간 사람과 함께 먹는 메뉴이지만 국밥은 각자 한 그릇씩 먹는 요리로 다른 사람을 간섭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싸울 여지가 없어 아쉽게도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취향대로 먹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국밥의 사소한 것에도 목숨을 걸어 논쟁을 삼아보고 싶어 각 방법의 장점을 살펴보자.
따먹(따로국밥)의 장점은 탕수육의 본연의 튀김옷의 바삭함을 즐기는 것과 같이 국밥 본연의 국물을 즐길 수 있다. 이것에 민감한 사람은 의외로 많다. 이건 내가 회사 임원과 점심을 먹을 때 절실히 느꼈다. 임원을 동반한 많은 회사 사람들과 함께 김치찌개를 먹을 일이 있었다. 당시 신입이던 나는 나와 직급 상 10등급 정도 차이가 나는 사람 앞이라 긴장 속에서 빠릿빠릿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휴지를 깔고 그 위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은 다음 물도 따라놓으며 신입사원의 자세로 임했다. 다행히 반찬도 착착 나오고 드디어 김치찌개도 나오게 되었다. 너무 긴장되었던 당시에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식사를 하고 있다가 김치찌개를 반 정도 먹었을 때 ‘먹을 때 끊기면 안 되지.’라는 평소에 지론으로 성급하게 라면사리를 투하했다. 그때 바로 임원이 “그러면 김치찌개가 탁해지지.”라는 말씀과 함께 인상을 구기셨다. 뭐 지금에서야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하면서 넘어갔겠지만 그때는 넣었던 것을 막 건져 내려고도 할 만큼 엄청 당황했었다. 이렇게 국물의 본연의 맛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그 무서웠던 임원을 포함하여 많다. 나도 그중 한 사람으로서 양념을 넣거나 밥이 들어가면 국물의 섬세한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 있어, 국밥이 나오면 국물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먼저 한 숟갈 떠먹어본다. 이때가 바로 국물의 본연의 구수한 맛, 개운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또한 따먹은 본연의 국물과 양념을 넣었을 때 국물을 비교하여 양념으로 인한 맛의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어, 한 그릇으로 2가지 맛을 느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럼 말먹은 장점이 없느냐?하면 당연히 있다. 여기에도 아주 공감할 수 있는 예시가 있다. 난 대학 시절에 자취를 했다. 자취의 로망도 있겠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만만치 않게 많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밥을 차려먹는 것이다. 집에서야 어머니께서 정성스레 차려주신 밥상이 있었고 기숙사는 제시간에 딱딱 나오는 급식이 있으니 가서 먹으면 됐지만 자취는 귀찮게도 나가서 사 먹거나 자취방에서 차려 먹어야 했다. 특히 아침에 늦게 일어나 학교를 급히 가려고 하면 차려먹기도 힘들고 사서 먹자니 가게들의 오픈 시각도 되지 않아 대안으로 생각했던 것이 바로 시리얼이였다. 우유에 넣어서 먹기만 하면 됐기에 간편함과 신속함이 좋았다. 하지만 대학생이 대개 그렇듯 아침에 숙취로 고생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그때 먹는 딱딱한 시리얼은 고역이었다. 난 그 대안으로 씻기 전에 미리 우유에 말아놓고 10~20분 후 촉촉해진 시리얼을 먹었다. 그 시리얼의 촉촉한 식감이 바로 말먹에 장점이다. 말아서 나와 이미 국밥과 혼연일체가 된 그 맛. 라면에 찬밥이 맛있듯 국밥에 말아져 있는 밥이 제 맛이다.
다른 장점으론 짬뽕의 홍합껍데기를 골라내야 하는 귀찮음처럼 귀차니즘에 절어있는 내가 국밥에 국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스레 말아야 하는 그 귀찮은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 그리고 말먹의 특장점은 바로 가격이 따로국밥보다 싸다. 약 8번만 말먹을 먹으면 한 그릇이 공짜다. 커피는 10번 쿠폰을 찍어야 한 잔이 공짜인데 국밥은 쿠폰을 안 챙겨도 절약할 수 있다.
힘겹게 논란없는 논쟁인 따먹과 말먹의 결론을 낼 시간이다. 이제 국밥집에 갔을 때 메뉴판을 자세히 살펴보고 만약 따로국밥의 가격이 똑같다면 국밥집 주인분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서 우리는 따로국밥을 시키자. 왜냐 당연히 국밥 양이 많다. 그럼 말먹의 장점을 포기할 거냐고? 아니 말먹의 장점은 나의 수고로움과 시간만 투자한다면 실현 가능하다. 따먹의 장점을 십분 즐기고 어느 정도 먹었을 때 말먹으로 넘어가 국밥의 다채로운 맛을 느껴보자. 그럼 당신은 경제학적으로 뿌듯하게도 합리적인 소비를 한 사람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