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화 탈출 시도

by 동상

나는 첫나들이의 충격에서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알기 전에는 바라지 않았지만 알고 난 후는 나의 바람을 막을 수 없었다. 조금만 더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하고 싶었으며, 조금만 더 싱그러운 바람을 느끼고 싶었다. 첫나들이 이후에도 종종 흑막들은 나를 데리고 산책을 했지만 흑막들과 함께하는 나들이는 유모차에 묶인 나처럼 갑갑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자리에 앉아 이렇게 생각해 보고 저렇게 생각해 봐도 결국 답은 탈출 밖에 없었다. 아 맞다. 나는 드디어 나 혼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이때까지는 여러 도구에 의지해 앉아 있을 수 있었지만 나의 부단한 노력으로 지금은 다른 어떤 도움도 없이 스스로 앉을 수 있다. 나 자신도 뿌듯하고 자랑스러워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궁극적으로 일어서기란 목표의 거쳐가는 단계라는 생각과 오만함을 경계하기 위해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나에 대한 칭찬과 대견함은 잠시 미뤄두고 다시 탈출에 대해 고민을 하다 눈앞에 종이벽이 보였다. 이 종이벽은 여리여리한 여흑막도 번쩍번쩍 들 정도로 가볍고 얇아 부실해 보였다. 알록달록한 무늬가 맘에 들었지만 나를 가로막는 괘씸한 벽이란 점은 틀림없었다. '그래 한번에 탈출하긴 어려워. 만만한 이 종이벽부터 빠져나가보자.' 나는 첫 장애물을 이 만만한 종이벽으로 정했다.


나의 첫 번째 계획은 과감히 이 부실한 종이벽을 쓰러트리고 당당히 빠져나가기. 이 힘없어 보이는 종이벽이 나의 큰 머리의 진군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먼저 시야를 확보하고 종이벽에 머리를 가져다 대기 위해 이때까지 연습했던 뒤집기를 시도했다. 뭐 이제 뒤집기는 식은 음료 먹기보다 쉬웠다. 그리고는 팔과 다리를 힘껏 파닥파닥 거렸다. 뒤집기와는 달리 조금 힘들었지만 나의 굳건한 팔다리는 임무를 완수하여 나의 머리와 종이벽이 맞닿았다. 나는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종이벽을 힘껏 밀기 시작했다. 머리 힘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종이벽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난 팔다리를 더 격렬히 파닥거리며 종이벽을 밀었지만 이 부실해 보이는 종이벽은 나의 공격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의 첫 번째 시도는 이렇게 허무하게 실패했다.


난 첫 계획의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두 번째 계획을 야심 차게 준비했다. 흑막들은 모르겠지만 난 종이벽 중 한 면이 방을 드나들 수 있는 나무문과 같이 열리고 닫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면은 나와 같이 감금된 사람이 보이는 면이었다. 흑막들이 나에게 열리는 것을 숨기려고 만든 장치임이 분명했다. '내가 이런 것에 속을 거라 생각했겠지?' 난 순진한 흑막들을 속으로 비웃었다. '방긋 방긋'


난 첫 번째 계획에서 소진했던 체력들을 어느덧 회복하고 다시 한번 힘차게 내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흑막들이 숨기려 했던 종이벽의 문을 향해 나아갔다. '파닥 파닥' 체력을 회복했지만 역시 두 번째라 그런지 힘에 부쳤지만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결국 난 목표했던 면에 머리가 닿았다. 다른 면과 달리 딱딱하고 차가운 기운에 소름이 끼쳐 불길한 기분이 느껴졌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순 없었다. 난 온 힘을 짜네 종이벽을 힘껏 밀쳤다.


나의 힘겨웠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결국 버티던 종이벽은 활짝 열렸다. '드디어 종이벽 너머의 세상으로 갈 수 있어.' 난 흥분에 휩싸여 나의 큰 머리를 종이벽 너머로 밀어 넣었다. 나의 머리는 쉽사리 종이벽을 통과했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나의 몸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문에는 나의 몸 두께의 절반 정도되는 높이의 턱이 존재했다. 그 턱은 보기에는 아주 낮아 쉽게 넘어갈 수 있어 보였지만 그보다 더 연약하고 비루한 나의 팔에게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난 계속해서 시도했지만 이 낮디 낮은 턱을 넘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난 흑막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다시 종이벽 안으로 들어오려 했지만 실패했다. '아차! 난 뒤로 오는 걸 해본 적이 없구나.' 난 머리와 몸 사이에 종이벽을 두고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결국 난 부끄럽게도 흑막들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응애 응애" 나의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온 여흑막은 이런 나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얼른 꺼내주기는 커녕 웃기 시작했다. "오빠 이거 봐" 다른 일을 하던 남흑막도 찾아와 신나게 웃었다. "하하하하" 이렇게 나의 야심 찬 탈출 시도는 흑막의 비웃음으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언젠가는 반드시 탈출하고야 말겠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