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초코는 따뜻하고 달지만...

아이 마음까지 데우기엔 부족한 것들

by 향작


며칠 전부터 하원길이 많이 힘들다.

품에는 작은 아이가 있고, 겨울 외투까지 입은 터라 내 몸은 더없이 굼뜨다. 그 상태로는 이제 간신히 내 허벅지 정도나 될법한 키의 큰 아이를 쫓는 시야도 여의치가 않다. 하지만 이건 어떻게든 걷고, 보고, 안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해온 일이고, 길이 도롯가인 것만 빼면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다. 잠깐만 견디면 육체적으로 버겁고 힘든 건 금방 지나간다.


길은,

신호등이 큰 거 하나, 작은 거 하나, 그 외에 차가 오나 봐야 하는 길도 있다. 나는 매번 신경이 곤두서는데 아이는 차가 와도 괜찮다고 무적처럼 앞장서 걸어간다. 멀리서 차가 오는 것만 봐도 머리가 삐쭉 서고, 아이의 점퍼 모자를 잡아챈다. 아이는 덥석 잡힌 목덜미에서부터 기분이 상한다. 다짜고짜 짜증부터 내는 아이를 잡아 세우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차가 쌩하니 지나간다. 심호흡을 하고 무릎까지 꿇고 설명한다.


“차가 오면 위험해. 00이는 아직 엄마가 보호해 줘야 할 것들이 많아. 차가 오는 거리에선 엄마가 손을 잡거나 안아줄게.”


대체로 잘 수긍하는 편이지만 행동은 또 다르다. 그렇게 엇나가는 행동이 큰 도로에서까지 이어지면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나고 만다.

요 며칠, 아이는 하원 길마다 울었다. 길지 않은 거리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버겁게 안아 들고 걷는 일은 나도 울고 싶게 만든다.




오늘은 하원을 하며 아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밖으로 나온 아이는 많이 침울해 보였다.


‘오늘은 절대 언성을 높이지 말아야지. 가는 길이 더뎌지더라도 기분 좋게 가야지. 차가 올 것 같은 거리에선 엄마가 너를 안을 거라고, 어린이집을 나서면서 미리, 알려줘야지.‘


잔뜩 긴장한 채로 아이를 맞이했는데 침울한 얼굴을 보니 더 마음이 쓰이면서, 다짐은 독해졌다.

화내지 않으리라, 한숨도 삼키리라.

한 번을 제대로 웃어주지 않는 아이에게 나는, 평소에 잘 사주지 않는 간식들이라도 잔뜩 사주고 싶었다. 고민을 하다가 한 마디 건넸다.


집에 가서 핫초코 만들어줄까?


집에는 미떼 같은 제품이 없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핫초코를 만들어 주겠다고 아이에게 약속하는 무모한 엄마도 아니다.

나는 찬장에서 누텔라를 꺼냈다. 엄마아빠가 빵에 발라 먹는 거라고 아이가 알은체를 한다. 젓가락에 초코를 살짝 찍어 아이가 내민 혀에 묻힌다. 맛있단 말을 들으니 마음이 조금 들뜬다.

인덕션 앞으로 의자를 가져와 아이를 올려두고 조심시키며 함께했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요리 놀이.


냄비에 우유를 붓고, 약불에 끓이다가 누텔라를 조금 넣었다. 진한 초코 색이 나오려면 굉장히 많은 양의 누텔라를 넣어야 하는구나... 깨달으며 조금만 넣는다. 휘휘 저어도, 누텔라가 모조리 녹아도, 우유는 그냥 우유에서 약간 벗어난 느낌이다.

만들어지는 대로 호로록 마시고, 맛있다 방긋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컵에서는 연기가, 입을 가져다 대면 코까지 데일 것처럼 피어오른다. 겁이 많은 아이는 쉽게 입을 가져다대지 못하고 치즈를 먹으며 일명, 핫초코가 식는 시간을 견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알맞게 식은 핫초코를 맛본다.


맛있다..!!


아이에게 화를 낼까 봐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그 한 마디에 사르르 녹는다. 웃음이 난다. 이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는 아이가 마냥 귀엽다. 집에 오는 길에 누텔라를 떠올린 나 자신이 마냥 대견하다. 언제고 길게 가지 않는 게 문제지만.


핫초코의 온도는 알맞았고 적당히 달달했지만 다 마신 뒤의 아이와 나를 뜨겁게 데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저녁을 게을리 먹는 아이에게 나는 여러 번 엄해졌고 이번 주부터 언니 옆에서 이유식을 먹는 작은 아이에게까지 너그럽지 못했다.


밥 대충 먹고 스스로 찍어 놓은 사진...


어질러진 부엌을 치우고, 엉망이 된 작은 아이를 욕실로 데려가 씻기며 말했다.


“아이 키우는 거 정말 쉽지 않다.

하하. 정말 어렵다 이거... “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아이에게 하는 말 치고는 너무 배려가 없어서, 적어도 웃으면서 말하면 좋은 뜻으로 알겠지 싶어 웃는 낯으로 말한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정말로 피식 웃고 말았다.

고마운 거라면, 작은 아이도 함께 웃었다는 것.


다짐하고 깨지고 사과하고, 또 다짐하기를 반복한다. 오늘은, 또 내일은 어떤 것으로 아이와 내가 따뜻할 수 있을지 궁리한다. 아니.. 내가 얼마나 더 뜨거워질 수 있을지 고민한다. 매번.. 비슷하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화내지 않으리라, 한숨도 삼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