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에 대하여

거절에 쌍방이 있다면

by 향작

두어 달 전쯤부터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온다.

그것도 자주.

나는 언제고 봐 온 번호이면서 곧잘 잊고 택배인가, 하는 생각에 매번 받는다. 후회는, 전화를 받자마자 찾아온다.



첫 아이가 28개월 즈음부터 감기에 덜 걸리기 시작했다. 세 살은 자주 아프고 네 살이 되면 조금은 덜 아프다더니 정말 그런 걸까?

이런 생각은 대체로 엄마의 부질없는 바람 같은 거라서 쉽게 기대를 저버리곤 한다. 그럼 그렇지.. 쌓인 젖병에 이어 다시 약병까지 씻을 날이 온다. 지금도 아이는 고작 30개월이라 나의 판단은 많이 섣부르다.

이전까진 왕왕 병원을 다녔다. 2주 약을 먹으면 1주는 괜찮고, 다시 2주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병원에서 나의 아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아이도 병원이 편한지 들어가면 이제 외투와 신발부터 벗으려고 든다. 양말은 겨우겨우 설득해서 신겨두는 식이다.


모르는 번호는 그 단골 소아과 1층에서 만난 누군가로부터 비롯된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하원길에 들른 소아과에서 ‘어머니, 어머니~’ 하는 소리가 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품에 둘째를 안고 있는 걸 발견하곤 힘들겠다며 내 손을 붙잡고 위로 아닌 위로도 해주었다. 내가 멋쩍게 웃으며 언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나 허공을 올려보는 사이, 아이는 이미 여자가 가리키는 곳에서 재생되고 있는 영상에 눈이 가있었다. 아마 알파벳 교육용 영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이가 옷깃을 당기는 대로 끌려가서는, 몇 마디의 설명도 듣다가, 내려오지 않는 엘리베이터의 번호판도 봤다가, 칭얼거리는 품의 아이를 토닥이기도 했다가, 여자가 건네는 태블릿 PC 속 상품 룰렛까지 돌렸다. 평소 당첨운이라고는 꿈에서도 가져본 적이 없는데, 룰렛은 뱅뱅 돌다가 텀블러에서 멈췄다.



“땡”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여자에게서 반쯤 몸을 돌렸다. 텀블러는 안 받아도 그만이었고 엘리베이터는 타야 했다. 여자가 빠르게 핸드폰 번호를 물었다. 선물을 집으로 가져다주겠다며.


평소 낯선 이를 집에 들이지 않지만,

여자가 소속된 곳이 누구나가 알만한 교육회사거니와 책을 읽어주고 만들기도 같이 하자며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요구했기에 망설이다 받아들였다. 하원 후 심심해하는 아이라면 도리어 즐거워할 것 같았다.

그날 나는 아이가 제법 ‘남’이 읽어주는 책에 집중하고, 귀 기울여 듣고, ‘ant’ 영어발음까지 곧잘 따라는 걸 보곤 눈이 돌아가고 마음이 혹했다.

이래서 사교육을 하고,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거구나!


체험이벤트까지 신청하면서 나는 여자에게 곧 회원이 될 것 같은 여지를 많이 줬을 것이다. 여자는 여러 의미로 내게 전화를 걸 이유가 많았을 것이다.

나는 열 번이면 아홉 번의 전화를 받았다. 주로 하원 길이었고, 둘째 아이까지 띠를 하고 있어 버거웠다. 대체로 바빴고, 통화할 여력이 안 됐으며, 나중에 걸겠단 말은 사실이었다. 재차 전화를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매번 잊어버릴 때 즈음, 내가 실은, 이 교육을 아이한테 시키지 않을 거란 생각이 확고하단 걸 깨달았을 즈음, 명확하게 거절을 했다.


지금 시킬 생각이 없어요. 아이에게 뭐라도 해줘야겠다 싶으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이제 그만 전화 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거절을 했지만 모르는 번호는 계속해서 부재중을 남긴다. 부담이라고까지 얘기했지만 여자는 정보라고 얘기하며 내게 불편을 안긴다.


오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메시지에 답도 하지 않고, 읽지도 않은 채로 채팅방을 나간다. 이렇게 ‘무시’라고 느껴질 만한 행동을 해야 하는 게 불편하다. 그럼에도 그 불편을 애써 ‘무시’한다. 편한 거절이란 없는 거라고, 거절이란 본디 기대와 상처를 한 몸에 가지고 있는 거라고, 합리화한다.


언제고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 마지막 거절이 되겠지. 몇 마디 사절의 말보다 이 편이 더 내 뜻을 강력하게 어필하는 방법이 될 테지.


나는 여자가 가져다준 룰렛 상품 텀블러에 아이스커피를 담아 마시며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