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기특한 너희들

by 향작

새해가 되고 첫 째는 졸업을, 둘 째는 어린이집 1년을 수료했다. 나는 이제 5살과 3살 두 아이의 엄마로서 조금 더 이 삶에 적응해가고 있다. 아직 온전히 엄마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진 않지만, 여전히 벗어나고 싶은 날들도 많지만, 자유를 갈망하지만 그럼에도 꽤, 제법 엄마 같고 아줌마 티를 내며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큰 아이가 유치원에 첫 등원을 하는 날이었다. 유치원에 보내는 일이 어린이집에 처음 보냈을 때보다 어째서 마음이 이토록 뭉클해지는지, 어리둥절한 채로 버스에 올라 내게 손을 흔드는 아이를 보면서 하마터면 울 뻔했다. 목구멍에서부터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울음이 파도처럼 넘실댔다. 내가 조금이라도 울면, 그 울음이 무슨 의미이든 아이에겐 불안으로 닿을 것 같아 이를 악물고 입꼬리를 찢어가며 과히 환하게 웃었다. 날 대신해서 울어준 건, 유모차에서 저도 언니 따라 버스를 타겠다고 고래고래 악을 쓴 작은 아이뿐, 오늘 큰 아이의 첫 등원은 다행스럽게도 무사했다.




내가 바라보는 큰 아이는 활발하고 개구쟁이 기질도 있지만 커가면서 수줍음도 많아지며 감성이 예민해 유리알 같은 구석이 있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깊이 마음을 주기까진 시간이 걸리고 헤어짐에 아쉬움이 없으며 조금은 냉정하고 쿨하다. 어린이집을 좋아하면서도 잠들기 전엔 항상 ‘자고 일어나면 어린이집을 가냐’고 질문하고 ‘간다’고 하면 실망을 했다. 엄마와 헤어지기 싫다면서. 이 아이에겐 어린이집에서 자는 낮잠이 하루를 꼬박 새우는 것처럼 길게만 느껴졌는지, ‘자고 일어나야 엄마를 만날 수 있는 게 싫어서 어린이집엔 가기 싫다’고 했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곧잘 내 말을 따라 씻고 밥을 먹고 옷을 입고, 보통의 아이들만큼만 속을 썩이며 어린이집을 다녔다. 졸업을 한 뒤엔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을 보고 싶어 하면서도 다시 가고 싶어 하진 않았다. 졸업 이후로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 나와 둘이 보내는 10일이 마냥 행복한 듯 보였다. 그런 아이가, 오늘 유치원으로 처음 등원을 한 것이다.


큰 아이가 잘해줄 거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느 엄마들처럼 조금은 걱정하고 이따금 긴장도 하면서 오랜만에 만끽하는 자유를 오롯이 느끼며 지냈다. 아이의 하원 버스를 기다리면서는 울컥하는 마음보다 정말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 간절히 보고 싶은 마음을 느꼈다. 단순히 보고 싶단 마음보단 가슴이 좀 더 들뜨고, 설레서 좀처럼 붙잡아둘 수 없는 흥분 상태를.

아이가 만약 보고 싶었다고 울거나,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면 뭐라고 달래야 할까, 이것도 저것도 못하게 내게 껌처럼 달라붙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등 온갖 상상에 긴장감도 얹어졌다.

노란 버스가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고, 창문 너머로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아이가 나를 발견하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로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치잉- 버스 문이 열리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내려 내 품에 와락 안긴 아이의 첫마디는,

‘버스에서 잤어’


울음 하나 내비치지 않고 불쑥 잤다고 말하는 아이가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어구 잤구나. 내 새끼가 피곤했구나. 그랬구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아이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이 내가 보고 싶었다는 말. 그래서 반을 옮겨 방과 후 수업을 들을 적에는 조금 울었다는 말. 참고 싶었는데 못 참았다는 말. 선생님이 달래주고 진정했지만 이후에 친구들 보기가 조금 부끄러웠다는 말.


어쩜... 이 아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잘 커주고 있구나.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나 잘 알고 표현할 줄 아는구나. 내가 보고 싶다고 마냥 안 가겠다고 떼쓰지 않는구나. 이제 나와 떨어져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아는구나.

오늘도 나만이 아이를 부족하게 알고 있었다는 생각에 괜스레 미안하고 또 고맙고 대견했다.




첫 아이의 유치원 생활에 덩달아 내가 긴장하느라 둘째 아이에겐 조금쯤 소홀했다. 원래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반만 바뀔 뿐 달라질 게 없어 신경이 덜 쓰이는 것도 있었지만, 큰 아이 때를 생각해 보자면 작은 아이도 달라진 반 분위기에, 더 늘어난 친구들에 등원 거부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아이는 이미 저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엄마에겐 없다는 걸 아는 것처럼.., 안쓰럽게도 혼자 어린이집 생활을 너무 잘해주고 있다. 새로 온 친구들에게 장난감도 건네고 예쁘다고 볼도 만져주며 먼저 가는 친구들 가방 지퍼까지 닫아주는 친절함을 보인다고,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은 매일같이 감탄을 한다. 그 알림장을 읽고서야 큰 아이의 적응만 신경 쓰느라 작은 아이에겐 칭찬 한 번 제대로 해준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토록 무심한 엄마에 이토록 기특한 너희들이라니.

엄마는 원래 이처럼 미안함을 가슴에 쌓아두고 살게 되는 걸까. 아이들에게 느끼는 사랑을 빼고 나면 미안함만 남을 것 같다. 그런데도 초라해지지 않는 건, 아이들이 내게 품는 사랑 덕분일 것 같고.


양 옆으로 두 아이가 자고 있다. 두 아이의 숨소리가 내 마음을 안온하게 만든다. 이따금씩 내가 이 아이들에게 무한한 사랑인 것이 아니라 이 아이들이야말로 내게 지극한 사랑이고 구원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런 충만한 마음을 어디에서 느껴볼 수 있을까. 감히 언제 이런 사랑을 꿈에나 그려볼 수 있을까.




아주 오랜만의 일기다.

역시 엄마라는 정체성으로 쓰는 육아일기.

가만 보니 엄마가 아니었다면 브런치도, 일기도, 그 어떤 글도 난 못 썼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감사할 일이 이렇게 또 하나 는다.



매거진의 이전글복싱과 운전면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