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를 끊었습니다만

‘나’라는 중심

by 향작


새해를 앞두고 곧잘 하던 인스타를 관뒀다.


인스타에서 나는 주로 내 아이들의 성장과정 중 기억하고 싶은 날들을 기록하거나 매일의 재밌는 순간을 스토리로 올렸다. 아이와 무언가를 할 때마다 핸드폰 카메라부터 들이밀고 찍었으며 곧장 스토리로 올리는 일을 무슨 사명처럼 해왔다. 작은 아이가 노래 부르는 걸 놓쳐서 못 찍으면 조급해하며 다시 부르라 재촉했다. 그마저도 말을 안 들어 안 부르면 지나치게 아쉬워했다. 마치 일파만파 퍼트려 자랑하고 싶은 내 아이의 귀여움이 담아내지 못하면 그대로 사라져 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찍지 못한 핸드폰 카메라를 거두며 속상해했다.

다른 누군가의 여행 간 스토리나 피드를 보고 나도 아이를 데리고 가보리라 마음먹고 저장을 하고, 소위 인친이 하는 공구를 눈여겨봤으며 그중 몇 가지는 구매도 했다. 비슷한 개월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인스타에 곧잘 올리는 제 자식 소식들 대부분을 자랑으로 받아들였고 그중 내 아이와 비교되는 구석이 있으면 마음에 어떤 조바심이나 시기가 열등감처럼 솟아났다.


공구로 구매한 아이들의 로션이나 영양제 따위는 실제로 만족스럽기도 했고 나의 피드를 보다 보면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으며 지난 스토리를 한데 모아놓은 것은 육아일기나 다름없어 기억하기 좋았지만 나는 이제 그 일을 하지 않는다. 가볍게는 지겨워졌고 조금 더 깊게는 내 마음에 어떤 균열이 생겼기 때문으로.




틈만 나면 핸드폰을 켜 인스타를 보는 습관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내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모습이 무엇보다 심기 불편했다. 이 심기 불편한 일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될 리가 없었다. 좋다는 영양제는 내 아이도 먹여야 할 것 같고,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한글을 배운다거나 숫자를 읽고 쓰고, 알파벳을 한다 하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큰 아이는 왠지 뒤처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 만 세 살의 노는 게 마냥 좋은 아이인 데다, 말도 잘하고 소근육이나 대근육 발달도 좋은데 인터넷 너머로 보는 세상에 갖다 대면 그저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무언갈 하염없이 더, 조금 더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런 마음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나 배려, 아량과 존중은 좀먹고 욕심과 허세, 조바심이나 불만 따위를 키웠다.


이런 내 모습을 알고 있음에도 SNS를 쉽게 그만두지 않았던 이유는 내 아이를 마치 의도한 적은 없었다는 듯 툭, 자랑하고 싶은 것과 굳이 깊은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온갖 가십거리들이 그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가 다른 엄마들의 제 자식 이야기를 고까워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다른 아이들에게 하는 진심 어린 칭찬에는 야박하고 내 아이 칭찬은 남에게 잘하지도 못하면서 속으론 제 자식 잘한 일을 이야기하는 엄마들을 잘난 체한다고 느끼며 못마땅해한다는 사실을.

그저 남들과 비교하며 시기 질투하는 못난 마음이 내 아이에게까지 뻗치는 것도 모자라 다른 아이와 부모에게까지 번진다고 생각하니 스스로가 참 보잘것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중심에 있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내가 SNS에 올리는 아이에 대한 소식들을 보며 제 아이와 비교하거나 그래서 마음에 어떤 균열이 생긴다면 그 중심에 있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 생각도 올바른지 모르겠다. 누군가 제 자식을 내 아이와 비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그 기저가 어쩌면 교만한지도 모르겠다. 하나 내가 다른 아이와 내 아이를 비교해 오던 일들이 다른 아이가 내 아이보다 더 낫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은 아니었다는 것. 존중받아 마땅하고, 존재 자체로 소중한 두 아이를 그저 내가 내 마음대로 남과 비교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 세우기 시켰다는 것. 유익하지도 이롭지도 않은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것뿐이다.




이건 일기로 적기에도 굉장히 부끄러운 이야기다. 나의 두 아이에 대한 사랑이 과연 이 좁디좁은 마음 안에서 자랄 수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정도다. 일기로 쓰자 마음먹고도 누구나가 공감할만한 이야기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만큼 나만이 가지고 있는 수치 같고, 허물 같다. 심어선 안 되는 씨앗 같다. 그럼에도 굳이 기록하는 이유는 묻어두기보단 드러내서 재차 다짐하기 위함이고 내가 옳다고 믿는 중심을 다시 바로잡기 위함이다.

내겐 오래전부터 이런 마음이 있었으니 훗날 또 내 아이를 다른 누군가와 비교를 하게 된다면 다시 되돌아보라는 의미이며 미리 쓰는 반성문이고 낙인이고 박제이다.



오늘 이 일기를 쓰게 될 줄 몰랐다.

글을 쓰게 될 줄 몰랐다.

컨디션이 조금 안 좋을뿐더러 다른 할 일도 쌓여있는데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게 될 줄 몰랐다.

일기가 잘 써진 건지도 모르겠다.

무슨 글을 쓴 건지, 내일이나 내일모레쯤 다시 읽어보면 후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종이라면, 갈기갈기 찢고 싶을 정도로 못 썼다고 한탄할 지도.

그래도 이런 일기도 있는 거겠지. 이 정도 수치의 기록은 괜찮겠지. 정돈되지 않은 글이라도 괜찮겠지.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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