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면

작은 아이의 입원일지 1

by 향작

캄캄한 밤,

아이의 안부를 묻는 연락 외의 다른 알림이 불쑥 나를 깨운다. 브런치의 글쓰기 약속을 응원하는 알림이다. 원래 마음가짐대로라면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나는 브런치에 글을 써야 한다. 하지만 지난주부터 힘들어진 몸과 마음은 가장 먼저 나와의 약속을 저버리게 했다. 그런 와중에도 놓지 않는 정체성, 이성의 끈은 육아하는 엄마라는 사실.




지난 평일 이틀을 남편이 휴가를 내서 처음으로 친정부모님 그리고 조카네와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1박뿐인 여행은 마치 11박은 한 것 같은 짐으로 시작해 아이들의 병치레를 낳았다.

첫 아이가 일요일에 구토를 하더니, 나아갈 즈음 작은 아이마저 증세가 발현됐다. 큰 아이는 그래도 약도 잘 먹고, 먹는 수액도 주는 족족 맛있다고 냠냠인데 반해 작은 아이는 보리차면 보리차, 먹는 수액이면 수액, 약까지 모조리 게워 올렸다. 소변을 잘 보지 못했고, 평소보다 처졌다. 결국 나는 도리를 알 수 없어 119의 도움으로 응급실로 향했다.


대학병원의 응급실이라는 곳은, 응급하지 않다 생각했는데도 발길이 닿으니 내 아이가 굉장한 중증 환자가 된 것만 같았다. 노로바이러스로 의심되는 장염 진단을 받고, 항구토제와 관장 처방을 받았다.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하며 변비가 오고 약을 먹은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변비를 제대로 잡아주지 못한 탓에 아이의 장염이 큰 아이보다 심한 것일까, 하지 않아도 될 관장까지 하게 해야 한다니, 자책의 시간이 흘렀다.

아이는 처음 느끼는 고통에도 우는 법을 몰랐다. 파리해진 얼굴에 눈만 동그랗게 뜨고는 놀란 듯 나를 바라만 봤다. 안쓰럽기 그지없는 이 아이 앞에서 내가 울면, 아이마저 불안함에 무너질 것 같아서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아이는 항구토제마저 게워 올렸고

결국 수액 링거바늘을 연결해야만 했다.

단단히 부여잡은 마음은 아이의 작디작은 발등에 바늘이 꽂히며 한 번, 그런데도 울지 못하고 축 처져있는 모습에서 두 번, 꺾이고 말았다.




아이들과 다녀온 여행은 즐거웠다. 워낙에 여행 이력이 보잘것없는 나로서는 짐을 싸는 것부터 굉장한 노동인 데다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지만 부모의 여행이란 본디 아이들 웃음을 사기 위한 것 아닌가. 그 값진 것을 보기 위해, 온전히 마음으로 느끼기 위해 떠난 여행이니만큼 힘든 건 온당했다.

다만 다녀온 뒤 아이들이 줄줄이 아픈 것은 마음이 쓰이는 일이다. 왜 나의 부모들이 자식 대신해서 아프고 싶다 버릇처럼 말하는지 알 것도 같다. 허나 그렇다고 대신 아파줄 수도 없는 노릇. 큰 아이도, 작은 아이도 아픈 동안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더 없을지 쉼 없이 고민했다. 구토를 해도 당황하지 않고, 우는 아이를 달래며 괜찮다 일러주는 일은 그중에서도 가장 쉬운 일이었다. 더 이상 게울 것이 없어 위액을 올리며 얼굴이 새빨개진 작은 아이를 바라만 보는 일은 가장 힘든 일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아이가 아프니 내가 나를 찾으려고 시작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있다 생각했는데 실은, 아이가 나에게 뭐든 해주고 무엇이든 되어주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냉장고 소음마저 잠잠해진 캄캄한 이 밤, 소아과병실에서 잠든 아이의 오르내리는 배를 어루만져주는 일이 지금 내가 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라는 사실은 내가 엄마도 그 무엇도 아닌 그저 나약한 인간일 뿐이란 걸 일깨워주고 만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밤이 오고 아이가 뒤척인다.

오늘 하루 잠은 다 잤지만 어쩐지 잠들기 전 아이가 웃어준 일 덕분에 버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