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모습이 제일 예쁜 건 아이들의 숙명
환절기다.
비가 온 뒤 맑은 어느 날의 하루는 미세먼지가 극성이었다가 또 차츰 좋아졌다가를 반복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 그런지 마스크 없이 걷다 보면 얼굴이 건조해지고 목이 칼칼하다.
유치원 하원 버스에서 내린 너를 와락 안아 건강하게 잘 다녀와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웃으면서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일만으로도 네게 너무 감사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같은 동에 사는 아이와 조금쯤 투닥거려 혼이 나는 바람에 입을 삐죽이긴 했지만 그마저도 귀여웠다.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가 친구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이유를 조곤조곤 설명했다. 미안하다고 하는 게 실은 제일 용감한 마음이고, 이기는 행동이라고 일러줬다. 사과하는 게 어떻게 그런 일인지 의아한 눈초리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너를 보니 그래도 엄마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된 큰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 돌아와 손을 씻고 참외를 깎았다. 최근에서야 싱싱한 참외의 속 씨앗까지 처음 먹어본 너는 그동안 먹었던 참외는 참외가 아니었다는 듯 꿀맛 같다 말했다. 동생과 맛있는 걸 두고 경쟁하듯 이거는 내 거 이거는 동생 거, 하는 모습이 아직 어린아이인 네가 동생을 챙겨야 하고 나눠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게 기특도 하다. 그럼에도 제 몫으로 더 크고 알찬 걸 고르는 게 야무져 예쁘다. 동생도 그런 너를 닮아 행동 하나하나가 야무지고 똑 부러진다지. 하염없이 예쁘기만 한 나의 두 딸들.
언젠가 동생 몫으로 더 크고 알찬 걸 남겨두는 언니가 되어가는 걸 본다면 또 어떤 마음이 들까.
참외도 밥도 요플레도 뚝딱 잘 먹은 후 돌연 춥다고 하는 게 수상해 열을 재보니 미열이다. 코가 꽉 막혀 숨 쉬기 힘들다고 하더니 증상이 미미하던 감기가 환절기 바람에 물러가질 못하고 더 심해진 모양. 내일은 나의 일정도 꽉 들어차 있어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부담이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예전 같았으면 어린이집을 안 보내고 가정보육을 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한 무언가를 빼앗긴 듯, 어딘가에 발목이라도 붙잡힌 듯 속이 상하고 허탈했는데(내 자식을 내가 돌보는 건데도 그랬다) 아이가 이만큼 크니 실은 조금 설레기도 한다. 딸아이와 데이트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열이 나지 않고 컨디션만 좋다면 더 바랄 것도 없겠다. 내가 카페에서 잠깐 일을 하는 동안 아이는 낙서를 하든 영상을 보든, 그러면 되겠지.
사실 나만 보아 줄곧 방해가 되더라도 화내지 않고 예뻐만 해 줄 각오가 되어 있으니 아프지 말아라.
졸리다고 하는 아이를 조금 일찍 방에 눕혔다. 코가
막혀 숨이 안 쉬어진다 하고 열이 나서 그런지 머리가 아프다더니 금세 잠이 들었다. 다행히 잠에 들자 마법처럼 코가 뚫린 듯 숨소리가 나쁘지 않다.
아이의 체온을 재야 한다는 알림이 울린다. 이마를 만지니 송골송골 땀이 조금 맺혀있는 게 느껴진다. 어쨌든 자는 동안엔 열은 내릴 모양이다. 그래도 밤새 깊은 잠은 못 들고 주기적으로 아이를 살피긴 해야겠지만, 눈을 감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게 오늘 유독 황홀하다.
잠든 네 얼굴을 보다 황홀한 마음에 불현듯 일기가 쓰고 싶어진 것이다. 별 것 아닌 일상에 그저 그런 내용일 수 있지만 너로 가득한 일기만큼 빼어난 것이 있을까.
세상 처음 맛본 싱싱한 참외의 꿀맛 같은 너를 품었기에 나만이 쓸 수 있는 일기다. 오늘 내가 써낼 수 있는 가장 달콤한 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