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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향 Apr 17. 2024

꽃이 뭐라고

꽃을 꺾지 마세요

벚꽃이 피고 지더니 아파트 단지 내 철쭉이 제법 폈다. 유치원에서 진달래꽃을 관찰하고 화전까지 해 먹은 큰 아이는 진달래와 닮은 철쭉이 친근한 모양. 한 번은 먹으면 안 된다고 일러두고 함께 꽃구경도 했다.

오늘 아이는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며 꽃이 예쁘다고 따 달라고 말했고, 나는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울면서 유치원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단지를 벗어나는 동안 힘차게 흔드는 내 손짓을 아이가 받아주지 않았다.



작은 아이가 탄 유모차를 끌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며, 내가 잘한 짓인가 싶었다. 꽃이 뭐라고. 그거 하나 꺾어주지 않아 아일 울렸을까. 꽃을 꺾는 일보다 더 한 것도 하고, 나무들이며 환경이며 죄 오염시킬 행동들만 하고 살면서 꽃 하나 꺾어 아이를 웃게 하는 일이 뭐 그리 대단히 그른 행동이라고 끝내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을까. 어릴 적 엄마가 들꽃을 서로 엮어 팔목에 걸어주고, 반지로 만들어 준 일이 추억이기도 하면서, 왜 내 아이에겐 꽃을 보면 꺾어주지 않아 울었던 기억만을 심어주려 한 걸까.

꽃을 꺾어주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 단순하고 간단하다. 꽃이 아파해. 예쁜 건 눈으로만 보는 거야.

큰 아이가 작은 아이만 했을 때에도 꽃은 따준 적이 없었다. 눈으로 보고 코를 가져다 대보고 향을 맡겐 했어도 따게 하진 않았다. 그땐 아이가 꽃을 안 따준다고 운 적이 없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두 돌을 앞둔 작은 아이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에너지가 넘쳐 걸어서 등하원을 하는 날이면 진땀을 뺀다. 바닥에 떨어진 돌이며 솔방울을 두 손 가득 주워 들고, 들꽃을 꺾어 달라 그 자리에 주저앉아 빽빽 소리를 지른다. 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작은 아이의 손에는 아주 쉽게 꽃을 꺾어 쥐어준다. 꽃이 아파하건 말건, 예쁜 건 눈으로만 봐야 한다는 가르침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같잖고 하찮은 것이었다는 냥.

신념이랄 것도 없다. '꽃을 꺾지 마세요.'와 같은 가르침이, 상황에 따라 편의에 따라 이리 꺾이고 저리 꺾이는 내 마음 따위가 신념이라거나 가치관씩이나 되진 않는다. 그래서 더욱이 큰 아이 손에 꽃을 쥐어주지 못한 게 못내 걸린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그 순간 꽃을 꺾어주지 않은 게 나의 지나친 고집이었다는 것을. 아이를 울리고 챙긴 위선이자 꼬장꼬장한 자존심이었다는 것을.


유치원 버스 애플리케이션에 아이가 원에 도착해 하차했다는 알림이 울린다.

내가 평소 유치원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아이의 소식이다.

아이가 울음을 그쳤는지, 지금 마음이 어떤 지, 속상해서 하루 종일 침울해 있지는 않을지, 많은 것들이 궁금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꺼끌 거리는 이물감과 같은 불편함을 가슴 한가득 품고 하원을 기다리기로 한다. 미안하단 말과 들꽃 한 송이를 꺾어 하원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 품에 안겨주려 한다.

아마도 아이는 엄마를 이미 용서하고도 남았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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