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의 첫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유도분만을 한 번 실패하고 이틀 뒤 다시 시도한 유도분만에서 반드시 성공하리라 마음을 먹은 터라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에 후련함이 더 컸다. 다만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그리고 시아버님을 너무 빼닮아서 꽤 놀랐던 것 같다. 지금 그 아이가 만 세 살의, 다섯 살 언니가 되어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요목조목 따져보면 첫울음 울던 때의 얼굴이 보일까 싶지만 그저 제 아빠를 쏙 빼닮은 귀여운 여자 아이이다.
유치원 버스에 아이가 처음 오르던 날, 마냥 기특해서 일기까지 썼던 그날이 무색하게 아이는 그 이후 연달아 3일을 깊은 잠에 들지 못한 채로 종종 악을 쓰고 울며 깼다. 눈은 뜨고 있지만 잠은 깨지 않은 상태로 엄마를 찾고,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악을 쓰고 자신을 데려가라고 그렇게 울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면서도 한 해가 지나 반이 바뀌고 담임 선생님이 바뀌었을 적에 등원 거부가 있었던 터라 유치원을 보내놓고도 짐작을 못한 바는 아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었지만 막상 잠도 깊이 못 자고 우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굉장히 쓰렸다. 안쓰러움 뒤에 고작 세 살짜리 아이의 단단하지 못한 마음을 탐탁지 않게 여긴 일도 숨기진 않겠다. 속상한 마음을 덮어두고 나면 아이가 좀 더 단단할 순 없는지를 생각했다.
유치원에 간 첫날 같은 반 친구가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고 했고, 며칠 전엔 나란히 서서 손을 잡고 하원 버스를 기다리던 오빠는 ‘이 새끼’라고 했으며, 오늘은 밥을 먹는데 친구가 제 말을 안 듣는다며 나쁜 애라고 놀렸다고 했다.
그래서 00이는 뭐라고 했느냐고 묻는 내게 아이는 모든 상황에서 모조리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했다.
자라다보면 친구가 아이에게 소리 좀 지를 수 있고, 이름도 모르는 오빠가 하는 ‘이 새끼’는 사실 아이에게 한 말이 아닐 수도 있다. 설령 그게 내 아이한테 한 말이라고 하더라도 ‘이 새끼’쯤이야. 친구가 제 말을 안 듣는다고 아이를 놀린 것도 놀다 보면 놀림을 당할 수도 도리어 놀릴 수도 있지 않나, 가벼이 치부하고 넘길 수 있다. 다만 이 모든 걸 아이가 소화를 잘 시켰다면 말이다. 아직 너무 어린아이니까, 제 감정이 어떤 건지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유치원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툭 던져졌으니 낯선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건 당연하다. 이해를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이 쌓이는 게 어째선지 경계가 되는 건, 나를 닮은 아이로 자랄까 봐서일까.
사실이 그랬다. 어린 시절 누군가 나를 오해하는 모습이 있어도,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심지어 내가 타인에 의해 기분이 나빠지더라도 스스로를 잘 변호하지 못했던 것처럼 내 아이는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아이라서 여리고 마냥 울어버리는 것으로 제 속내를 표현하는 것에도 조바심이 일었다. 착하다면 착하다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모든 행동, 태세들에 착한 건 싫다고, 안 착해도 좋으니 할 말 하며 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아이가 할 말을 못 해 혼자 끙끙 앓거나, 속이 상하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심각하게 말한 것도, 울면서 말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가볍게 툭, 이야기한 것뿐이다. 마치 갑자기 생각나는 일화가 있어서 ‘이 이야기 어때?’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뒤로 어떻게 하면 제 속을 말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지금 내가 아이에게 어떤 도움과 가르침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로 친언니와 한 시간이 넘는 통화를 하다 돌연 작은 아이가 깨서 엄마를 찾는 바람에 해답은 없이 끊어야 했다. 내일이 되면 별 일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고, 아이에게 재차 물어봐도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겠지만 나는 나를 닮은 아이가 마음이 쓰인다. 좀처럼 아픈 손가락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전에 없이 뭉클해진다.
손바닥만 한 눈덩이를 굳이 굴리지 않으면 커지지 않는 것처럼 굳이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쉬이 넘길 수 있는 수준의 일들이다. 하지만 나는 눈덩이를 굴리기로 마음먹었고 그 눈덩이가 눈사람이 될지, 눈싸움이 될지는 굴리고 나서야 알게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