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주년이다.
앨범을 정리했다. 이 오묘한 기분을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쓴다. 마지막으로 앨범 정리를 한 지가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앨범엔 오래된 포켓몬 고 사진이 듬성듬성 있었다. 이렇게 앨범이 너저분한 건 사실은 사진을 예전보다 덜 찍게 되어서기도 하다. 사진을 찍는 데 집중하기보다, 내가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해서다. 대충 1300장을 추려 앨범에 넣고 클라우드로 보낼 채비를 마쳤다. 어떻게 보내는 진 모르지만.
사진을 보다 보니 내가 많이 변했구나 싶다. 원래 나는 애인일지라도 내 시간만큼은 철저히 지켰다. 얘를 만나기 전 7년 동안 오로지 나의 내면만 들여다본 습관이 남은 탓이다. 내가 충전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은 정말 중요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내 시간이 얘 시간이고, 얘 시간이 내 시간이 되었다. 주말엔 같이 있었고, 같이 음식을 시켜먹고 넷플릭스를 새벽까지 봤다. 좁은 고시원 1인용 침대에 둘이 구겨져 잠들어도 잠은 잘만 왔다. 연애가 이렇게 내 버릇을 바꾸더라.
그래서 앨범 곳곳에 남아있는 사소한 것들이 마음 한쪽을 더 저릿하게 만든다. 그건 나에게만 보이는 것들이어서다. 자기 전 꼭 정수 물을 떠놓는 다던지, 아이스크림을 꼭 끝까지 핥아서 먹어야 하거나, 나보다 사격 실력이 좋다던지 따위의 것들이다. 당시에 당연했던 것들이 지나고 보니 사소한 것 하나마저 그립게 만든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두렵고 힘들게 느낀 건, 세상에 혼자 컬러로 있던 사람이 회색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나의 힘으로 되돌릴 수 없어서 더 힘이 들었다. 충동적으로 예전에 만났던 친구에게 연락해 만났다. 나는 내 생각이 틀린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우리 연애는 그렇게 평범해지고 마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그 친구를 만나고 1시간이 채 안되어 깨달았다. 내 생각이 틀렸다고. 10년이 지나도 그 친구는 반짝였다. 그때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사람은 반짝일 거다.
우리가 계속 만났다면 오늘은 3주년이다. 이 글을 쓰는 충동이 왜 들었는지 날짜를 보고서야 알았다. 그러나 슬프거나 힘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정말 지난 시간 동안 열심히 사랑했다는 걸 기억하고 있어서다. 시작과 끝이 있어야 완성이 되듯, 나 역시도 연애를 완성시키는 중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한 연애다. 성숙하게 이별하려는 노력. 나의 이별에는 그런 대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