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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 Nov 05. 2021

헤어지고 앨범을 정리했다

오늘은 3주년이다.

앨범을 정리했다. 이 오묘한 기분을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쓴다. 마지막으로 앨범 정리를 한 지가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앨범엔 오래된 포켓몬 고 사진이 듬성듬성 있었다. 이렇게 앨범이 너저분한 건 사실은 사진을 예전보다 덜 찍게 되어서기도 하다. 사진을 찍는 데 집중하기보다, 내가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해서다. 대충 1300장을 추려 앨범에 넣고 클라우드로 보낼 채비를 마쳤다. 어떻게 보내는 진 모르지만.


사진을 보다 보니 내가 많이 변했구나 싶다. 원래 나는 애인일지라도 내 시간만큼은 철저히 지켰다. 얘를 만나기 전 7년 동안 오로지 나의 내면만 들여다본 습관이 남은 탓이다. 내가 충전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은 정말 중요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내 시간이 얘 시간이고, 얘 시간이 내 시간이 되었다. 주말엔 같이 있었고, 같이 음식을 시켜먹고 넷플릭스를 새벽까지 봤다. 좁은 고시원 1인용 침대에 둘이 구겨져 잠들어도 잠은 잘만 왔다. 연애가 이렇게 내 버릇을 바꾸더라.


그래서 앨범 곳곳에 남아있는 사소한 것들이 마음 한쪽을  저릿하게 만든다. 그건 나에게만 보이는 것들이어서다. 자기   정수 물을 떠놓는 다던지, 아이스크림을  끝까지 핥아서 먹어야 하거나, 나보다 사격 실력이 좋다던지 따위의 것들이다. 당시에 당연했던 것들이 지나고 보니 사소한  하나마저 그립게 만든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두렵고 힘들게 느낀 건, 세상에 혼자 컬러로 있던 사람이 회색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나의 힘으로 되돌릴 수 없어서 더 힘이 들었다. 충동적으로 예전에 만났던 친구에게 연락해 만났다. 나는 내 생각이 틀린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우리 연애는 그렇게 평범해지고 마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그 친구를 만나고 1시간이 채 안되어 깨달았다. 내 생각이 틀렸다고. 10년이 지나도 그 친구는 반짝였다. 그때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사람은 반짝일 거다.


우리가 계속 만났다면 오늘은 3주년이다. 이 글을 쓰는 충동이 왜 들었는지 날짜를 보고서야 알았다. 그러나 슬프거나 힘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정말 지난 시간 동안 열심히 사랑했다는 걸 기억하고 있어서다. 시작과 끝이 있어야 완성이 되듯, 나 역시도 연애를 완성시키는 중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한 연애다. 성숙하게 이별하려는 노력. 나의 이별에는 그런 대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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