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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writer Jan 31. 2021

나도 안다, 인스타그램엔 절망이 없다

<생활감성 에세이, 애도 에세이, 살아남은 한 인간으로서의 연대기>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라는 책을 읽진 않았는데, 최근 길을 걷다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책의 목차도 본 적 없지만, 제목을 들은 순간 제목이 말하는 바를 알 것 같았고, 정말 인스타그램은 절망이 없는 곳이고, 그러한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 책이 나온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나 역시 그런 곳이라고 생각해 하지 않다, 직접 시작해 놓고도 늘 그렇다고 생각해 왔으니까.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참은 것이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편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현재의 나 역시 인스타그램이라는 세계 안에선 절망이 없다. 뒤집어 생각하면 인스타그램이란 정말 이상한 세계인데, ‘절망 없는 삶’도, ‘절망 없는 순간’도 가능하지 않다는 삶의 속성과의 대비 때문일지 모른다. 미시적으로 우리의 생활 속 좌절과 울분, 슬픔과 다독임 등의 수차원의 감정을 나눠서 들여다본다면 말이다. 유독 이 ‘인스타그램’에는 인간의 삶에 산재한 절망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 절망 없는 곳에 ‘절망 없지 않은’ 우리는 왜 자발적으로 들어와 있는 걸까?



                                                                                       :::



내가 신뢰하는 말 중 하나가 “행복은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임에도, 나 역시 모순적으로 그곳에 나의 행적을 여실히 적고, 타인의 소식에 하트를 누르고, 잘 살아있다는 스스로의 안부를 부단히 남긴다.* 행복을 명받아 일하듯.

난 인스타그램의 이 속성을 알고 ‘자발적으로 들어감’을 선택했고, 그건 절망 없는 ‘그곳’과 ‘그곳’의 특수성을 이겨내려 각오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 정확히 그런 각오로 들어와야만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인스타그램이라는 세계의 특수성이기에, 선택했다면 이겨야 한다. 스스로 절망 없는 곳에 들어와 마치 새로운 사실이라도 발견했거나 문득 낯설어졌다는 듯 “이곳엔 왜 절망이 없지?!”라고 소리칠 수는 없으니까.


난 SNS의 배척자 아닌 배척자로, 그간 스스로 할 필요성을 못 느꼈고, 사실 그건 욕망이 없고 SNS 자체가 싫었다기보다, 그걸 이용하는 특정 사람들의 모습에서 받은 인상과 관련 있어서, 내 삶의 골목 요목조목 대목처럼, 트위터에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으로 이어진 SNS 채널의 세대적 마중물 앞에서 단 한 번도 그 일에 동참하거나 그들을 맞이한 적 없는, 사실은 동참하지 않기로 결정한 편에 가까운, 이를 꺼릴 에피소드를 지닌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내게 마치 영원히 피안 같던 ‘그’곳에 있다. 이제야 ‘절망 없음’이라는 이곳만의 룰을, 받아들이기로 택해서다. 그것은, 단지 이곳의 룰일 뿐이며, 우리는 모두 잠시 꿈꿀 뿐이다. 절망 없는 세상을. 인스타그램엔 절망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테지만, 그것은 인스타그램의 잘못도 우리의 잘못도 아니다.


가끔은 냉정하게 ‘들어왔으면 견뎌야지’ 격려한다. 

입술을 꾹 깨물며 길을 나서듯, 인스타그램을 켠다.

오늘 거리에서처럼 스스로 하나의 작은 좌표이면서도 이런 생각을 문득 한다. 이곳에 참여한 다들 암묵적으로 ‘절망 없음’**의 상태적 룰을 지킬 뿐, ‘절망 없는 인생’은 없는 법이라고. 모두 이 룰 뒤에 펼쳐지는, 우리가 감내하는 인생을 알 것이라고. 모두 어제 오늘 내일, 매 순간 조금씩 각자의 이유로 힘들고 어려울 거라고. 그것이 인생인 거라고.


내게는 그걸 이해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채 이해 없이 있다, 문득 그 사실에 낯설어지는 일이 아마 다를 것 같다. 어쩌면 피안 같은 ‘이’곳에 있을 수 있어서 우리 모두 잠시 잠깐이나마 행복한 상태인 건지도 모른다.


* 물론, 잘 살아있다고가 아닌, 잘 살아있는 ‘모습’들로만.

** 슬픔과 절망은 다르다. 우수에 찬 분위기와 절망은 다르다. 힘들다는 토로와 절망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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