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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writer Feb 05. 2021

욕망과 망각

<생활감성 에세이, 애도 에세이, 살아남은 한 인간으로서의 연대기>



신용카드를 잃어버렸다.

나름 우여곡절이 많은 카드였다.


통신사 요금할인 때문에 발급받았는데 많은 사람이 쓰는 카드는 아니었고, 제조적인 문제인지 얼마 사용 안 했는데 자꾸 IC칩이 고장 나 근시일에 2번 더 발급받았다.

재발급 상담원에게 “다른 카드는 괜찮은데 유독 이 카드만 몇 번째 IC칩이 고장 난다고, 혹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상부로 건의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담원으로 일해 봐 그런 요청이 얼마나 성가실지 알지만, 이 직원은 나와는 같은 문제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진취적인 사람일지 모른다는 희망 하나와 이게 정말 특정 카드 결함이라면 보편적일 문제가 널리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후로 잘 사용하다 내 부주의로 카드를 잃어버렸고, 횟수로 4번째 카드를 무탈히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 3, 4번째 카드를 잃어버렸다 찾은 적은 많다.

어느 날은 회사 관리인이 방금 떨어뜨리고 갔다며 들고 사무실로 쫓아왔고, 내가 하늘이 무너져도 찾고 말겠다며 금방 다녀온 장소를 역추적해 찾기도 했다. 카드는 카멜레온의 보호색처럼 자신과 비슷한 색상의 화장실 보조대에 얌전히 놓여있었다. 카드 한 장을 덜렁덜렁 손에 들고 다니는 습관 탓이었다.

그러나 내가 4번째 카드에 준 마지막이자 가장 큰 시련은 카드를 아치형으로 만든 것이다.



                                                                                       :::



추웠던 1월, 카드를 손난로, 핸드폰, 초콜릿과 함께 주머니에 넣고 뮤지컬을 관람했고, 인터벌 시간에 알아채니 손난로의 은근한 열기에 초콜릿은 다 녹고, 카드는 둥글게 굽어있었다.


그 후, 함께 다니는 내내 카드는 내게 귀염둥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카드를 건네받은 상인들은 한마디씩 건넸다.


“세상에! 카드가 왜 이래요?”
“카드가 많이 휘었네요! (웃음)”


비슷한 반응이었는데, 유일하게 날 놀라게 한 건 대뜸,


“난로랑 놨나 보다.”


라던 한 정형외과 여직원의 말이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나도 이렇게 됐었거든요.”


반문하니 이렇게 답해, 함께 웃었다.

카드를 두고 나눈 멘트로 놀라고 즐거웠던 건 이 말이 유일할 만큼, 나는 내 카드를 보며 사람들이 왜 즐거워하는지, 왜 꼭 한마디씩 건네는지, 의아하고 신기했다. 내가 생각보다 더 그 반응들을 신기하게 여겼다는 생각이 지금 다시 새삼스럽다. 어느덧 나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활시위처럼 등이 말린 카드에 익숙해져 왔던 것이다.


하지만 어제, 굽은 후로는 처음이지만 또 카드를 잃어버렸다. 이로써 지금은 전혀 귀염성 없는 5번째 카드를 아무 기대 없이 기다리는 중이다. 분명 바지 주머니에 꽂고 카페로 갔는데, 음료를 주문하려 보니 사라지고 없었다. 바지에 꽂고 손으로 짚었을 때의 감촉이 선연한 것으로 가져오지 않은 걸 착각했다고 볼 순 없었다.



                                                                                       :::



몇 시간 뒤 카페에서 나오며, 나는 집으로 가는 모든 길목길목에 카드가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200m 정도는 눈에 불을 켜고 사냥개라도 된 듯 살폈다.

그러다… 언제나 그랬듯, 곧 딴생각들을 했다.

언제 시작했는지, 정확히 무슨 생각들이었는지…, 쓸쓸하거나 미묘한 생각들, 복잡하거나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들…, 내 카드를 찾는 일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중요한 생각이 아니었다. 벤치에 앉아 뽀뽀하는 아이와 엄마를 보며 코로나를 떠올린 기억…, 거리의 무수한 강아지들…….


‘카드를 찾겠다고 해놓고 딴생각을 해버렸네….’

카드 생각이 났다.

늦지 않았으니, 지금부터라도 다시 찾자고 생각했다.

‘만약 카드를 찾는다면, 그런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힘들었지만 그래도 완벽한 하루였다고, 힘든 삶이지만 그래도 살 만하다고, 역시 난 운이 좋다고, 농담 삼아서라도 겨우겨우 말할 수 있을 텐데….’


그 생각도 잠시였다.

‘외식하러 나온 사람들이 정말 많군…. 여기 새로운 스테이크집이 생겼네? 양이 적어보이는데 지금 이곳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은 맛집을 미리 검색하고 온 것일까, 딱히 메뉴를 고르지 않은 채 거리를 거닐다 끌리는 아무 곳을 선택해 자유롭게 들어간 것일까?’

그러다, ‘앗! 카드를 찾겠다고 해놓고 딴생각을 해버렸네.’

같은 생각.

‘이미 지나온 길에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바보.’


이렇게 정확히 같은 타박과, 같은 깨달음과, 같은 다짐을 반복하며 걷다 보니 진심으로 카드가 그리웠다. 살며 그 어떤 카드에게도 가져보지 못한 작은 애착 비슷한 감정이었다. 그 싱숭생숭한 여운을 지닌 채, 과거의 한때 좋았지만 그리 좋게 끝내지 못한 추억이 담긴 한 건물 앞을 지날 때다.


‘이미 난 너무 많은 길을 다른 생각을 하며 걸었고, 여기서부터 집 앞까지에서는 카드를 찾을 확률이 희박해. 아마 길 위에서 잃어버렸다면 이미 지나온, 이 이전의 길에서였을 거야.’


불현듯 생각했다.


‘왜, 내가 흘린 흔적인데 다시 주워 담을 수도, 흘린 그대로 수집할 수도 없는 걸까?’


모든 추억 앞에서 난 작은 흔적일 뿐이었다.

그것도 내가 그 당시의 나를, 혹은 어떤 타인이 그 당시의 나를 잠깐 생각해 줄 때에만 스치듯 존재하는 ‘흔적’. 그래서 그 흔적은 대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또 지나치게 부끄럽거나 오만했던 순간만을 돌이켜 집중적으로 생각해 보면, 통째로 인생을 반납하고도 싶게 만드는 ‘흔적’. 그러자 더 내 카드가 찾고 싶었다. 변질된 오기였다.


‘내가 분명히 어디엔가 흘린 흔적인데, 그대로만 있어 준다면, 존재하는 거라면, 내가 못 찾을 리가 없을 텐데, 마땅히 찾아야만 맞는 것일 텐데….’

논리는 그것이 온전하다고 말하지만, 세상이라는 우연은 그 실현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리무중.’



                                                                                       :::



다음 날 체계적인 카드사의 시스템은 내게 자꾸만 전화를 걸어왔다. ‘분실 신청’에 이어, ‘재발급’까지 하란 전화일 테지. 인정할 때가 된 듯해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같은 카드를 신청하고 나니, 익숙한 반복 앞에서도 그 우아하게 등이 굽은 내 카드만의 곡선의 감촉이 새삼 그립다.

하지만 한때 내게 무척 중요했던 이 욕망과 애착, 거리 위 상심과 녹슨 물처럼 뚝뚝 끊기던 생각의 편린마저, 늘 그랬듯 쉽게 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카드를 녹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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