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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writer May 02. 2021

관습적 죽음과 일장춘몽

<생활감성에세이, 애도 에세이, 살아남은 한 인간으로서의 연대기>



올해(2020년) 5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5월 6일부터 어버이날인 8일까지 삼일장을 치렀다. 장례식 참석 자체는 두 번째지만, 가족원으로서는 처음 치른 장례였다.


그것이 돌연사여서였을까, 아니면 친구에 대한 마음의 빚 때문이었을까.

몇 해 전, 한 번 뵌 적도 없는 친구 어머니의 돌연한 죽음 앞에서 기나긴 저승의 통로라는 충격파를 미리 맞은 덕인지 죽음 자체가 주는 메시지는 크게 낯설거나 예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화를 느꼈다고까지 말하면, 좀 무례하거나 놀라운 사람처럼 보이려나?


사실 외할아버지는 좀 독특한 사람이었다.

좋게 표현하자면 말이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나를 포함한 사촌들 사이에서도 크게 슬프지 않을 정도로, 외할아버지는 세상과 담을 쌓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던 분이었다. 평생 일 한 번 안 하셨고, 365일 집 안에 앉아 술만 드셨다. 알코올 중독으로 당연히 주사가 있으셨다. 1930년 대생이란 걸 감안하지 않고도 키가 꽤 크셨으며, 보릿대처럼 빼빼 마르셨다. 명절 때 모이면 밥 몇 술을 뜨시는 듯하다가, 이내 검정 봉지에 든 소주를 마트에서 사 와 소주만 드시기 시작했고, 수숫대 같은 입으로 내뱉는 말이 부쩍 많아지셨으며, 우리가 각자의 가정으로 떠난 후로도 365일 할아버지와 집 안에 단둘이 남겨지는 할머니는 ‘같은 말’의 지옥에 빠져 살아야 했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 그 할머니는 지금 아무런 언어도, 이야기도, 메시지도, 이미지와도 상응할 수 없는 ‘망각’이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다. 할아버지가 죽었다고 아무리 말해도 ‘자신의 남편이 죽었다’는 의미를 이해할 수 없으셨겠지만, 코로나 때문에 요양원 밖으로의 출입이 제한돼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셨다. 엄마나 삼촌, 이모 중 슬픔에 크게 동요해 비틀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슬픔은 있었겠지만, 죽을 듯한 슬픔이나 해석할 수 없는 세계나 그 진리에 대한 원망은 결코 아니었다.

엄마와 작은삼촌은 어둠이 가라앉은 쪽방 소파에 앉아 “실감이 안 나. 너도 그렇지?”, “응…” 정도의 말만 속삭였다. 어떤 면에선, 마음이 가장 여린 작은이모와 엄마만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네는 과정에서 얕은 눈물을 훔쳤다. 그 눈물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삼일 째 아침, 나는 입구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하느라 온몸의 수분이 모두 증발돼 아기처럼 작아졌다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영면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누구 하나 가슴 에는, 가슴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통한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 상황에서 죽음이라는 동체와의 접점에서 한 발 차로 또 한 번 가까스로 빗겨난 나와 그러지 못한 (할아버지의 영면한 모습을 본) 다른 사촌들은 그제야 조금은 동상이몽을 겪는 듯했다.

한마디로 한 존재자로서 할아버지의 죽음 자체가 주는 슬픔과 상실보다, 죽음에 급습당한 ‘사람’의 모습에서 오는 충격과 슬픔이 그걸 보지 못한 나와 사촌들 사이를 갈라놓았다고 나는 느꼈다.


장례가 끝난 후, 날씨가 너무 맑고 좋아 “이토록 좋은 날에 할아버지를 보낼 수 있어 너무도 기분이 좋다”라고 한 어른은 말씀하셨다. 더할 나위 없이 떳떳하고 쾌청한 목소리였다.



                                                                                       :::



어떤 이의 죽음은 생각보다 주변 사람에게 큰 자상을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을 감사하고 보편적인 일처럼도 느끼게 한다. 한 술 더 떠, 나는 집에 돌아와 ‘관습적 죽음, 일장춘몽’이라는 지금 이 글의 대략적인 얼개와 제목을 미리 구상했다. 그 당시 작성한 간략한 아이디어 메모 속에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너무 많은 걸 배웠어. 사랑하는 마음, 사람의 소중함, 귀함, 인연들, 만남, 사회와 관습을 아끼는 마음들.”


알다시피, ‘일장춘몽’이란 ‘한바탕의 봄 꿈’이라는 뜻이다. 이는 내게는 ‘삶’을 말한다. 나아가 죽음을 ‘관습적’이라 표현한 건, 돌아보니 오히려 죽음을 평화롭고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는 뜻인 듯하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내가 배운 건 죽음의 혼돈, 무질서, 공포보다도 삶의 목가성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각 가족의 지인들, 유쾌함, 작은 싸움, 떠들썩하고 조용한 이합집산, 유유함, 위로, 작별, 마무리…. 모두들 그동안 바빠 보지 못했거나 엊그제도 보았을 정도로 가까운 지인들을 맞이하는 작은 연회장이었다.

내가 조의금을 받는 그곳의 카운터를 지키며 느낀 건, 죽음이 어차피 도래하는 것이라면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어떠한 삶이든 따뜻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또한, 그곳은 앞으로 더 무차별적으로 내게 닥칠 무수한 이별들을 대비하는 고도의 훈련장이자 연습장이기도 했다. 더 진솔히 얘기하면, 나 스스로에게 미션이나 모드 같은 것을 부여한 듯하다. 이건 나이가 들어가며 어릴 때는 그게 무엇인지 모르고, 짐작조차 할 수 없던, 지금 역시 감히 가닿을 수 없는 죽음을 주변 사람을 통해서건, 뉴스를 통해서건, 차츰차츰 접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산다는 것이 곧 나든 타인이든 많은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 그 자체라는 걸 이해하게 되어서는 아니었다. 즉, 어떤 인식적 성과를 이루기 위한 노력이나 결과였다기보다는 결정적으로 죽은 이가 누구였느냐에 따른 자연스럽고 한산한 부산물이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 어떤 이의 죽음은 생각보다 주변 사람에게 큰 자상을 남기지 않으니 말이다. 죽음이 있다는 것이 나 자체의 영생이 지겹기 때문만은 아니라, 때로는 꽤 감사한 일이라는 걸 느끼기도 하며 바라기도 하는 게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곧 다가올 먼 미래”에 진짜 내게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덜 슬프고 덜 흔들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당시 읽은 한 책에서는 ‘적은 슬픔을 느끼는 것’, 혹은 ‘아예 느끼지 않는 것’과 ‘부재 인식’은 별개의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전철을 타고 문에 기대어, 서로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내가 내릴 역에 전철이 도착해서 그럼, 이라 말하고 헤어졌다.

문이 열리고 홈으로 한 걸음 내려선 순간, 어떤 힘이 뒷머리를 잡아당겼다.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인종으로 보이고, 주위에는 온통 위화감만 가득했다.


“하나코 씨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리고 동요했어요,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런데 카츠야 씨는.”

전부인은 일단 말을 끊고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찾는다.

“충격은 받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짐을 덜은 것처럼, 편안하게 보였어요.”

“그럼, 안 되나요?”

나는 물었다. 나 역시, 하나코가 죽어 편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략)

하지만 하나코의 부재는,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하나코의 부재.

소름이 쫙 끼쳤다. 비록 순간적인 일이었지만, 내 의식이 하나코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에쿠니 가오리, <낙하하는 저녁>, 232, 239p






예화에서 보이듯 이분법적으로 나누자면, 즉각적으로 도래하는 감정인 ‘슬픔’과 이성적 영역인 ‘부재의 인지’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다. 하지만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할아버지의 죽음에서 내가 그다지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는 장례 이후로도 부재를 ‘인지’하며 슬픔이나 싸늘함, 충격을 느낀 적은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할아버지 자신의 삶에 있어서나, 내 삶에 있어서나, 구태여 따로 인지할 만한 그의 역할이나 영역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술만 마시고, 헛소리만 하다 잠들고, 다시 일어나면 헛소리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술을 찾는 할아버지의 자리는 손주들에게는 처음부터 이 세상에서 없는, 비어 있는 자리였으니까.

그렇다고 딱히 그 죽음이 좋다거나 감사할 것도 없지만(어쩌면 이 편이 더 무책임한 걸지도 모른다), 나면 자라는 것이고, 오면 가는 것이니까, 그 순리를 그저 고요히 지켜보는 것이다. 또, 오랜 음주 습관으로 이미 건강이 많이 망가진 상태라 오늘내일하는 상황이 연신 이어지고 있었기에 충격이 그만큼 반감된 부분도 있다.



                                                                                       :::



며칠 전(2020년 7월 9일)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사망했다.

사망의 이유와 관련해 갑론을박이 많고, 앞으로 더 쏟아질 테지만, 왠지 긴 ‘부재 인식’의 과정을 건너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을 정치인으로서 무척 존경했고, 지금으로서는 대체할 다른 인물을 떠올리지 못하겠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죽음의 사유와 관련한 보도가 실추시키는 명예 때문에, 죽음의 슬픔보다 남겨질 시정에 대한 아쉬움과 막막함이 더 컸다. 허무하고 화도 났다. 이렇게 허망하게 떠날 거면서, 어떤 이유에서든 결국 삶을 포기할 거면서, 왜 자신을 지지해 달라며 그토록 목소리를 높이고,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며 선봉에 나섰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비밀들과 속내들을, 버스를 타고 가다 만난 차창 밖 나무를 숲속의 나뭇잎을 세듯 헤아려 보며 아득해했다. 이미 내 삶이 시작됐을 때부터, 아니 그전부터, 무수히 흩날리고 있었을 그 비밀이자 생명인 잎들을.


그러곤 곧 지금 나에게 소중한 많은 사람을 떠올렸다.

그들은 날 알지 못하더라도,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언젠가 나도 그렇겠지만, 그들 모두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큰 이변이 없다면 지금 내게 심적으로 정말 소중한 사람들은 대부분 나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의 존재였고 자리였다고 생각하는 곳에도 그와는 다른, 또 너무도 비슷해 이전의 그를 떠올리게 하는 또 다른 대체할 수 없을 사람이 금방, 성큼성큼, 물밑 자리를 찾듯 들어설 테고, 역사적 인물로서 그들의 유전자는 기억될 테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미물인(사실 이 표현도 과분하다) 나는 영원히 잊힐 것이다. 마치 한 편의 짧은 꿈인 듯한 그들의 일생을, 함께 자라오며 감히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거나 한 번 옆자리에 앉아본 적조차 없지만, 공유하던 일상을, 세계를, 감각을, 관념을, 가끔씩 눈앞에 그려보며, ‘그래. 그런 사람도 있었지…’, ‘그런데 진짜 있었나?’ 되물을 것이다. 그렇게 특정한 ‘누군가’의 부재보다도, ‘부재’ 자체를, 그 ‘일상성’을 ‘인식’하는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때로, 이미 떠나지 않은 사람의 일생 앞에서도 그 ‘부재’를 느끼고 미리 걱정하며, 그러면서도 눈을 떠 아침식사 거리를 찾고 매일을 이어갈 것이다.


내 기준에 이제 산다는 일은 ‘부재의 절대성’을 ‘인식’하고 그 절대성과 ‘타협’하는 일이다.

특정한 누군가의 삶도 다른 타인의 삶보다 어떤 이유에서든 조금도 더 고결하다거나 추잡하지 않다. 죽음은 모든 것을 가져가고, 그것은 ‘죽으면 끝이네, 다 해결되네?’ 식의 편리한 개념이 아니라, 이 세상을 기획하고 만든 그 누군가의 필사적이고 눈물겨운 자정 행위다.

자연의 순환처럼, 모든 삶에는 끝이 있다.


할아버지 일로 장례 문화를 처음 경험한 동생은 말했다.

“근데…, 난 믿기지가 않아. 난 진짜 오래 살고 싶거든. 근데, 이렇게 죽는다는 게…, 죽음이라는 게… 이해가 안 돼. 못 받아들이겠어.”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우리는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난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언젠가 내게 던져질 이러한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럴 수 있어. 그런데 있지. 이건 자연 같은 거야. 꽃이 피고 지고, 나무도 자라고 잎이 나고 지고. 우리가 그걸 보면서, ‘왜 저러지? 너무 슬프다’라고 생각하진 않잖아. 굉장히 자연스럽게 생각하잖아. 우리는 자연인 거야. 그것처럼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거야. 인간이 곧 자연 그 자체인 거니 크게 슬퍼할 이유가 없는 거지. 그렇게 우리가 가면 다음 세대가 오는 거고…… 자연………….”


할아버지나 박 시장 외에도 죽음의 소식은 도처에서 사이렌을 울린다. 음주운전자의 과속으로 건강한 신체를 단련하려던 마라토너 몇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고, 불이 나고, 또 다른 곳에서 불이 나고,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인과관계 속에서 원흉을 찾아 나선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성 씨와 괄호 안에 멈춘 나이를 듣고 보며, 아득한 생의 개념을, 혜안을 얻으려 잠시간 애써 본다. 정말 부끄러운 얘기지만 돌출하는 내 삶의 갖은 시련 앞에서, 인생을 꽃피우지 못하고 아스라이 죽음의 소동에 실려간 사람들의 수많은 부고를 동시에 접하며, 내 삶을 다시 일으킬 힘을 반추하기도 한다.


바로 지금 소중한 가족을 잃은 사람, 오래전 신념을 지키고자 목숨을 바친 사람, 과거에 위기를 겪은 사람, 앞으로 큰 위기를 겪을 사람, 신념을 부르짖다 칼날 앞에서 돌아설 사람, 지금은 살아 있지만 곧 죽게 될 모든 인간들을 떠올리고, 떠올린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동등하다.

점차 흔들리지 않는다.


더 이상 ‘모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행복한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와 같은 생각은 하지 않고, 너무도 불가능한 바람이라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는다. 내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나와 내 주변이라는 울타리로 엮인 ‘우리’가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면, 지금 고통받는 타인의 삶에 대고 우리는 어떠한 말을 감히 건넬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신에게.


물론 삶은 전부 고통이라거나 허무한 것이라고 한쪽으로 치우쳐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무사와 안녕을 습관처럼 바란다. 그러면서도 ‘부디’ 하고 말한다.

‘오더라도 조금만 천천히, 조금만, 더, 천천히.’

점차 흔들리지 않는다. 올곧게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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