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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writer Nov 04. 2020

인생이 늘 축제 같았으면

<생활감성 에세이, 애도 에세이, 살아남은 한 인간으로서의 연대기>





핸드폰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아주 예전, 내가 편의점에서 일했던 때 발급받은 대출확인증에 남긴 메모와 그를 촬영한 사진을 발견했다. 당시 내가 일했던 편의점은 도서관 바로 옆으로, 발자국으로 표현하면 스무 발자국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주 1회 일요일,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도서관에 들러 당연하다는 듯 집에서 백수로 지낼 한 주 동안 읽을 책을 한 아름 빌려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은 내게 가장 행복하며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그때처럼 글을 쓰지도, 그렇기에 글 때문에 아주 불행하지도 않지만 나는 여전히 이렇게 생각한다. ‘좋은 예술은 영혼을 건드려야만 한다’고. 그러니 부디 ‘하루를 버티는 삶 말고, 삶 전체를 꿰뚫어 나가는 삶을 살자’고. 


                                                                    :::





연이어 발견한 또 다른 과거의 사진 속에서, 나는 친구와 야외음악회를 즐기고 있다. 이날 난 컨디션이 안 좋아 공연 내내 고개를 수그리고만 있었다.


그 시간들을 거쳐 지금은 저 먼 사진 속 화려한 불꽃처럼, 이제야 보았지만 분명 그 공간을 수놓았으며 그날 함께 존재했던 우리 모두의 열망을 대리한 폭죽처럼, ‘인생이 늘 축제 같았으면’ 자그맣게 열망하는 새벽이다.

일종의 관조로, 수없는 실패를 통해 한걸음 겨우 떨어지는 여유가 생긴 셈이다. 하나, 그날의 나와 오늘의 나는 어쩐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나는 변하지 않는다. '회귀'한다. 우리 모두 그렇듯.


조만간 나는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랑"이라며 남겼던 메모와 같은 사유를 하는 삶으로, 생각할 여유와 쓸 시간과 읽을 공간이 확보되는 ‘그곳’으로 돌아가려 한다. 나는 (영원히) 회귀한다. (= 반복한다.) 그 끝이 행복일지 불행일지 이제는 거의 모르겠다.*

그렇지만 스스로 선택해 향유할 그 시간이 세상 누구가 아닌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자명하고 깨끗한 성질의 행복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형형한 행복은 그저 잠깐의 가정(假定)일 뿐이라도 만나기 쉽지 않다. 그러므로, 글과 함께하는 한 나는 행복하다. 당장 쓸 수 없더라도, 아마 ‘조금은’ 불행하지 않다. 언젠가 다시금 내가 이곳으로 돌아오리란 걸 잘 알기 때문에. 여기, 이곳에, 영원히, 내가 있기 때문에.


* 과거, 그것이 나에게 지당한 행복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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