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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writer Dec 11. 2020

내가 목포에 갔던 이유

<생활감성 에세이, 애도 에세이, 살아남은 한 인간으로서의 연대기>



모든 여행지에는 여행과 결부된 책이 있다.

지난해던 2019년 3월, 떠난 목포여행의 나의 테마는 ‘섬’이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여행을 말할 때, 흔히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왜 그럴까?

아래는 내가 지난해 떠난 목포 여행길에서 인상 깊게 읽은 장 그르니에 <섬>의 몇 구절이다. 이를 통해 나는 내가 ‘목포에 갔던 이유’와 목포에서도 ‘특정 여행지’를 선점해 가려 했던 이유,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역시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잠정적으로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일 것이다.

이런 경우, (…) 몇 가지의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여러 날 동안 바르셀로나에 머무르면서 교회와 공원과 전람회를 구경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로부터 남는 것이란 (…) 풍성한 꽃향기뿐이다.

기껏 그 정도의 것을 위하여 구태여 여행을 할 가치가 있을까? 물론 있다. (…) 

그러나 그보다도 오히려 발길 가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분숫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여인들과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편이 더 좋다. (…) 나는 철책을 한 창문들이나 분수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안뜰, 그리고 요새의 성벽처럼 두껍고 높은 벽들을 오랫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 저 방벽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불가능한 일-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여행은 하나의 수단이 된다.


인간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통과해 가야 하는 저 엄청난 고독들 속에는 어떤 각별히 중요한 장소들과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마치 위대한 음악가가 평범한 악기를 탄주하여 그 악기의 위력을 자기 자신에게 문자 그대로 <계시하여> 보이듯이, 우리들 영혼을 뒤흔들어놓는다. (…) 즉 잊었던 친구를 만나서 깜짝 놀라듯이 어떤 낯선 도시를 앞에 두고 깜짝 놀랄 때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다.*


* <섬> 중에서도 ‘행운의 섬들’. (민음사, 1997, 이후 인용도 동일함.)






이는 장 그르니에 <섬>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한데, 낯선 것으로 인생을 새롭게 보고 새로운 것을 만나고자 하나, 결국 익숙함(=나)의 추구일 뿐이라는 얘기다. 정말 낯선 것을 만나고자 한다면 죽음을 목전에 두는 것밖에는 별도리가 없다. <섬> 중 ‘상상의 인도’에 나오는 구절*을 조금 변용하자면, “살아남는 것이 약속된 채 행해지는 여행은 결국 자신을 강화시키기 위한 구실일 뿐”이다. 진짜 새로움으로의 여행은 삶 이후에나 가능하다.**


* “살아남는 것을 믿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신앙이 필요하듯이 저들에게는 생명이 꺼지는 것을 믿기 위해서 신앙이 필요한 것이다.” - <섬>, 「상상의 인도」, 153p. (여기서 ‘저들’이란 인도인들을 일컫는다.)

** “때때로, 그 투박한 사내의 눈길 아래서 대지가 고동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 <섬>, 「부활의 섬」, 117p. (여기서 ‘투박한 사내’란 죽음을 앞둔 사내이다.)





정리해 보면,


내가 목포에 갔던 이유:

그곳이 도심에 사는 내겐 일종의 ‘섬’ 같은 곳이며, 근대 역사의 편린을 통해 섭식할 수 있는 나로부터의 해방***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가뭇없음을 내 인생의 가뭇없음에 대한 치환으로, 시민들이 이뤄낸 성과를 마치 내가 이룬 해방인 양 목도하고 대리 만족하기 위해서다.


목포에서도 특정 여행지를 선점한 이유:

이 부분은 그곳에 있는 줄 몰랐으나 우연히 만난 후 인상 깊었던 두 곳으로 대리해야 할 것 같다. ‘목포근대역사관(구 일본영사관)’ 뒤뜰에 별도로 마련된 방공호와 서고다. 친구들과 함께 몰려 역사관에 들어갔으나, 왜인지 얼마 후, 나는 따로 떨어져 밖으로 나와 홀로 홀린 듯 뒤뜰로 향했는데, 저물녘 한 줄기의 빛이 창살처럼 그 뒷공간을 홀연히 메우고 있었다.****

‘방공호’는 잘 알겠지만 일제가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한반도 전쟁을 대비해 만든 전쟁시설이다. 당시를 재현하는 방공호 안에서는 계속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잠시 들어갔던 것뿐인데 안은 사람이 머물기엔 너무도 춥고 컴컴했다.

그 옆에 위치한 ‘서고’는 본래 일본영사관이 목포부청으로 변하면서 부청 개청(1910.10.1.) 이후, 부청의 서고로 건립된 것이다. 건물만 보면 그리스의 어느 뒷골목이 연상될 정도로 신비하며, 마치 포도주의 신이라도 뒤편에서 나올 듯한데, 건립 당시의 모습을 간직했으며, 붉은 벽돌집인 본관(현 목포근대역사관)과는 심히 대비된다. 

“정면 중앙의 박공면은 페디먼트 형식으로 처리하고 지붕 처마 하부에는 코니스 형상으로 정연하게 다듬은 석재를 수직으로 돌출시켜 마무리했다. 창고를 석조로 만든 것은 근대기 일본의 영향이며 돌 표면은 혹두기로 되어 있으나 전면 양측 모서리만은 둥글게 잔다듬으로 처리하였다”라는 설명문을 읽고서 혼자서 한참을 실제 건물의 모습과 맞춰 보았다. 마치 나의 그간의,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다양하게 다듬고 깎아 인생이라는 이 생면부지의 ‘얼개’에 합리적으로 맞춰 보이기라도 하듯.


*** 그러나 이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

**** 이때, 나를 홀리게 한 것은 빛일까, 아니면 나 자신일까? 무언가 나를 부른 것만은 분명하다. 어떤 한순간이 아니다. ‘내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당시 여행기에 적은 아래의 말로 대신한다.


“무언가 배우러 간 것이 아닌 데도,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감정들이 있었다. 말로 풀어 설명하기에는 오묘한.”





                                                                                       :::



음습한 방공호와 뒤 터에 고요히 자리 잡은 서고. 사람이 머물기엔 너무도 춥고 컴컴했던 그곳을 나는 왜 그토록 꼼꼼히 보았을까. 또, 아무도 구경하지 않는 서고 앞에 서서 왜 설명문에 쓰인 건축 자재의 양식과 건물에 실질적으로 구현된 요소의 합일을 그토록 꼼꼼히 살폈을까?* <섬>의 마지막 챕터인 ‘보로메의 섬들’에서 그르니에는 새로운 것을, 마참맞은 세계를, 자신이 발견했다고 믿었으나 그 역시 “그저 일상적 감정의 가장 노골적인 표현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말하는 것이다.




나는 가장 가까운 것 속에서 피난처를 찾지 않으면 안 될 모양이었던 것이다.***




내가 목포에서 만난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의 모습, 전체인 편린이었다. 내가 만나고자 그토록 애쓰며 즐거이 계획한 건 고작 ‘나 자신’이었다. 결국, 사람이란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작 그것, 오직 나, 오직 그것인, 나 자신으로 회귀하기 위해서만 여행을 한다.

그러므로 결국 희귀함의 체험이란 나 자신일 뿐이다. 내가 잃어버렸던 나이며, 여행이란 나 자신이 각별히 중요한 장소이자 순간으로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 그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 여기서 새로운 것이란 고작 '섬'이라는 칭호를 딴 꽃가게의 상호였다. <섬>, 「보로메의 섬들」, 117p. 

*** <섬>, 「보로메의 섬들」, 1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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