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제 : 식민지의 어둠(1권), 해방과 전쟁(2권), 폐허의 잡초처럼(3권), 폭력의 근대화(4권), 생존의 상처(5권), 억압과 욕망(6권), 변혁과 미완의 출발(7권), 나와 너(8권), 위태로운 일상(9권), 너에게로 가는 길(10권)
엮은이 : 황석영
출판사 : 문학동네
출간일 : 2015년 1월 30일
사 양 : 4460쪽(전 10권) / 140ⅹ210mm
불은 태운다. 세상 것들을 태워서 없앤다. 물에 젖으면 말릴 수 있고 바람에 날리면 되찾아 올 수 있지만, 불에 탄 것들은 재가 되어 바스라진다. 들불이 산으로 번지면 어미 새는 자신의 전부였던 새끼를 잃고, 화마가 집을 덮치면 사람은 삶을 지탱한 추억을 잃는다.
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조차 태운다. 사람들이 건조한 시절에는 마음이 쉽게 타 버린다. 가장 끔찍한 불은 희망을 태워 버리는 불이다. 희망이 타면 절망의 재만 남아,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불이 무언가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름다울 때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불꽃’이라 부른다. 불의 꽃. 혹은 꽃 같은 불.
한국문학의 토양은 예나 지금이나 거칠고 험난하고 척박했다는 것이다. 어려운 조건과 환경 속에서 이렇듯 들꽃처럼 피어나 다양한 색깔과 형상을 이루어낸 우리 문학의 생명력에 절로 눈물이 고이는 감동을 느꼈다. (5쪽)
불꽃은 태워 없애지 않는다. 불꽃은 핀다. 그래서 불은 감상(感傷)적이고 불꽃은 감동적이다. 아파트 화단에 줄 맞춰 심어 놓은 꽃은 예쁘다. 그러나 거친 아스팔트 그 작은 틈 사이에 핀 이름 모를 꽃은 감동적이다. 바위절벽 한가운데 한 줌의 흙을 붙잡고 피어오른 그 작은 꽃은 예쁜 것이 아니라 감동적인 것이다.
불꽃은 피어서 밝힌다. 불 또한 빛을 내뿜지만, 결국엔 더 짙은 어둠을 남길 뿐이다. 불꽃은 밝혀서 어둠에 저항한다. 저 작은 촛불을 보라. 모든 어둠을 없앨 수는 없지만, 그것으로 어둠은 결코 모든 것을 빼앗지 못한다. 밖으로 나가 하늘을 한번 보라. 너무나 빽빽한 밤 속에도 별 하나쯤은 반드시 떠 있지 않는가. 이것이 불꽃이고, 희망이다.
이 작품과 작가들을 보라.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 인생을 문학에 바쳤다. (8쪽)
여기, 101개의 불꽃이 있다. 지난 백 년 이 땅의 칠흑 같던 어둠 속에서, 사람 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밝혀 온 불꽃들. 작가들은 그 뜨거운 가슴으로 해를 대신하여 뜨거운 꽃을 피워 냈다. 그들의 가슴이 뜨거운 이유는, 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그들은 불꽃의 삶을 산다. 그래서 그들의 삶 또한 감동적이다.
이 불꽃들을 황석영 선생이 모았다. 그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선생은 불꽃이 피어오르도록 바람을 막아 주었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불꽃이 옮겨갈 수 있게 씨앗을 뿌렸다. 시들어가는 불꽃에게는 스스로 거름이 되었으며, 그것이 아니면 스스로 불꽃이 되어 어둠을 조금씩 살라먹었다. 각 작품 뒤로 이어지는 선생의 글은, 그리하여 곡진하다.
모든 이의 가슴은 꽃을 피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의 가슴속에 불꽃 하나쯤은 품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가장 단순하면서도 현명한 길은, 불꽃에 최대한 가까이 가 붙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