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숫자를 확인해야 하는 작업도 고단하고, 길게 선 차 행렬도 지겹다. 숫자 합계가 안 맞으면 심장이 쿵쾅 뛰다가, 다시 확인하면 그 심장이 잦아드는걸 하루에도 몇 번씩 느끼면서 일한다. 날은 따듯해졌지만 내 마음은 시궁창에 박힌 거 같다. 아침에 눈뜨면 '또 아침이네'라고 일어난다. 잠들 때는 '또 눈뜨면 아침이겠네'하며 잠든다.
위안을 주는 게 없다. 인생이 끊임없는 반복이란 걸 알면서도, 그래서 산을 꾸역꾸역 올랐으면서도 이제는 그 의미마저 무언지 모르겠다. 그래서 요샌 점심때 그냥 집에 온다. 집에 와서 식사 준비하고 설거지하면 시간은 지나 있지만 '또 회사에 가야겠네'라는 감정이 앞선다.
최대한 회사에 가고 싶지 않아서 쇼팽의 발라드를 연습한다. 어디에 나가서 연주할 것도 아니면서 틀리면서 친다. 계속 나아지고는 있는 거 같은데 그 속도가 더디어서 답답하다. 주식창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코인을 바라보는 것도 마음의 평화를 깨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그걸 안 하면 찾아올 무료함에 충혈되도록 보고 있는다.
곡을 완성하면 '그래도 한곡 쳤네'라는 성취감이 오지만, 또 틀린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모르겠다. 아침에 눈뜨면 이마를 짚고 한참 동안 일어나지 않는 것도, 내가 하는 일이 나를 빛나게 하는 게 아니라 남을 빛나게 하는 일이란 것도. 그럼에도 책임감 때문에 부여잡고 있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 부정적인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았는데 참을 수 없어서 토로하듯 쓸 수밖에 없다. 수많은 에세이들이 말하는 ‘그럼에도 희망을 가져야 해’라는 글들은 이제 남루하다.